본문 바로가기
삶/늦을 때란 없다

4기 진행성 암 환자-동네 봉사활동과 밥벌이 2

by 힐링미소 웃자 2022. 11. 15.
반응형

나의 동네 봉사활동
1. 20여 세대 반장
2. 주민 대표조직의 한 개 분과 총괄 책임자
3. 마을 소식지 편집장 및 총괄 디렉터
4. 마을 역사와 문화 관련 모임 디렉터
5. 구 소식지 명예기자
6. 구 몇몇 위원회 자문역
7. 세미나 고정 멤버

어울림

2번 봉사활동을 내려놓으며


내가 해오던 봉사활동 중에서 2번을 그만두기로 했다. 아직 연임 한 번 더해서 2년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할까 말까 고민할 정도였었다.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그랬었다. 하지만 싸늘하게 식었다. 회장이라는 사람이 하는 짓이 아주 고약했다. 동네 여러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자기 자랑만 늘어놨다. 사실 난 이 사람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이 물러날 때를 보면 그가 한 일을 할 수 있다. 폼만 잡고 다녔다.

사실 내가 사는 동네를 더 좋아지게 하는 건 정부나 시, 구청이 아니다. 주민 스스로가 당사자다. 난 우리 동네를 좋아한다. 내가 이사 올 때보다 인문학적(?) 장점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내가 사는 부분은 아직도 살만하다. 23년 전 이사 올 때만 해도 아파트라고는 한강변 쪽 두 단지와 좀 들어와 두 단지, 저 뒤쪽으로 조그만 단지 하나, 그렇게 해서 5개 단지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사는 쪽을 제외하고는 다 아파트 단지로 변했고, 변하고 있다. 이건 내가 바라는 삶터가 아니다. 게다가 이쪽도 재개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참... 내... 그래도 쉽게 이사 갈 것 같지는 않다. 추억도 그렇고 내 이런 건강에 이사는 좀 무리다.

살기 좋은 동네 만드는 일


난 아파트에서 잠사 살았었다. 그러나 촌놈의 DNA로 똘똘 뭉친 내 몸은 그런 환경을 거부했다. 문 열면 산이나 들, 하늘이 보이는 게 아니라 맞은편 동 베란다들이 보였다. 앞 창문을 열어도, 뒷창문을 열어도 매한다지였다. 난 그게 싫었다. 그래서 나왔다. 난 느낌을 좋아한다. 그래서 차도 둘 다 올드카들이다. 하나는 20살, 다른 하나는 11살. 아마 내가 죽기 전에 차를 바꿀 일은 거의 없을 듯하다. 어쨌거나 난 그 답답한 풍경이 싫어서 아파트에서 나왔다. 지금은? 지금은 하기야... 느낌 때문에 아파트에 안 사는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못 사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돈이 생기면? 돈이 생겨도 아파트는 안 살 것 같다.

어쨌거나 내가 사는 동네를 더 좋은 동네로 만드는 일은 주민 하나하나의 역할이고, 어디서 해 줄 성질의 것은 아니란 생각에서 동 단위 동네 봉사활동을 했다. 그것도 문화와 역사, 미디어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것, 밈 적인 영역에서 역할을 했다. 이런 류들이 눈에는 쉽게 안 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양질 전화가 일어난다. 내가 리딩 했던 활동이 그랬다. 평가가 좋았다. 마을 소식지 다음 호가 언제 나오냐? 이 소식지는 계속될 거지요? 같은 긍정적인 평가 일색였다. 후원하는 쪽에서도 사업의 계속을 제안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 봉사활동의 성공적인 결과가 한 요인인지는 몰라도 내가 지금 속한 주민 대표조직의 대표로 추대하는 움직임이 강하다. 그러나 난 어제로 해서 싸늘하게 식었다.

어제는 정치인들이 왔다. 난 이 사람들 별로 안 좋아한다. 이 사람들이 인사 한 두 마디 씩 하는 건 나도 찬성하는 바다. 그런데 이 양반들 인사가 끝나자마자 임기 한 달도 안 남은 회장이라는 사람이 구걸하듯이 기념사진을 찍자고 한다. 앞에는 주민들이 많이 있었다. 난 그 주민들과 그 지역 정치인들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자기만 찍는 거였다. 그것도 정중앙으로 움직여서. 그런 꼴불견 하고는...

리더의 덕목 : Not One and Only but One of Us


난 그렇잖아도 이 사람 마뜩잖았다. 남들이 힘들여 지역을 위한 활동을 할 때 이 사람은 가방 들고 구 공무원들이랑 밥 먹고 술 먹으러 다녔다. 또 그래다는 게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그런 짓을 하고 다니고서는 딴 사람들이 한 공을 자기가 낚아챘다. 난 이런 류의 사람들을 싫어한다.

물론 내가 더 안 하려는 이유가 오로지 그 사람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내 건강상 이슈가 99%는 된다. 차기 임원을 하든 말든 한 달에 공적 업무가 너무 벅차다. 한 달에 한 번 정기회, 한 달에 한 번 임원회의, 한 달에 최소 한 번 분과별 회의, 다수에 걸친 활동들... 그런데 난 그렇게 형식적이고 틀에 박힌 활동을 할 정도로 여유가 이제는 없다.

내년부터는 시골 농사일에도 관여해야 한다.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님 병세도 아주 위중하다. 또 다른 봉사활동도 기다리고 있다. 그 일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덜 들어가면서도 선한 영향력은 더 크다. 우선은 형식적인 임원회의와 억지 식사자리와 술자리가 없다. 나의 창의성이 존중받는다. 구성원의 생각이 존중받는다. 난 리더로 있는 분과에서 회의할 때마다 탁자를 원형으로 배치했다. 그리고 헤드 테이블은 마을에서 제일 오래 사신 분께 권했다.

난 n분의 1을 좋아한다. 또 one of us/them을 좋아한다. 그 회장처럼 한 조직에서 그것도 위원회 성격의 조직에서 one and only를, 그것도 자기 스스로 원맨쇼 하는 사람을 너무 싫어한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들의 요청이 있었음에도, 내 건강상 이슈와 집안일이 중요함에도 조금의 짬이라도 내서 봉사활동을 좀 더 해볼까 하는 맘이 싹 사라졌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