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간의 연휴,
90세 아버지께서 시골집에
덩그러니 앉아 계신 걸 알면서
나만 고기에 상추쌈
싸 먹고,
밖에 나가 카페에 들러
커피 마시기가
이젠 맘이 편치가 않다
그래서 시골집에 내려갔다.
엄마가 떠나시기 전에는
맘이 상대적으로
편했었다
내가 굳이 내려가지 않아도
두 분 서로
때론 말 상대, 때론
언쟁 상대가 되셨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내가
내려간다 해도
뭐 하러 내려오냐 하시곤 했다.
그러나 이젠 겨우(?) 2주 만에
내려간다 해도
“그럼 그래야지…”
하신다.
이번 연휴 비가 예보됐다.
특히 아버지 계시는
내 고향,
특히 비가 심할 거라 했다.
언제 일기예보가 맞은 적 있더냐 했지만
이번 비는
심상치 않아 보였다.
그래도 내려갔다.
얼굴 보며 밥 두세 끼
힘께 하는 것이지만
만나지 않고,
얼굴보지 않고,
말을 섞지 않으면,
부대끼지 않으면 정이란 게
쉽게 쌓이지 않는다.
내려가는 길은 험난했다.
아침 7시에 출발했건만...
이수교로터리부터 막힌다.
길을 틀어 교대 앞 스벅에서
언제가 누군가 보내준, 마감 임박 쿠폰...
커피 한 잔 뽑았다.
경부를 탔다.
이것도 장난이 아녔다.
천안까지 얼마가 걸렸는지 모른다.
도저히 더는 차 안에 처박혀있을 수 없었다.
직산역 역전 앞에서 밥 한 끼 먹었다.
역시 겁나는 물가....
돈 값 못하는 음식 퀄...
한심...
맘에 안 든다...
아침을 걸렸기에
늦은 아점...
어쨌든
배는 채우고...
공주를 네비에 찍고
강행군!
그러나 여전히 막힘!!!
다시 네비에 청양을 찍고...
아!
시골길 시원한 바람~
여유 있는, 상대적으로, 도로 사정.
커피 한 잔~~
어차피 가야할 길.
카페를 뒤로하고
청양을 찍고...
부여를 찍고...
그렇게 갔다.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직산역 밥집 30분,
사양 카페 30분,
나머지는 드라이브...
지독한 밀림!
그날밤은 피곤해 잤다.
그리고 다음날=오늘
아버지 읍내 바람 쐬드릴 겸,
읍내에서 돈 쓰시는 재미도 느끼실 겸
11시경 나가
비싼 삼겹살 샀다.
아버지께서 씨 뿌려 놓으시면
무심한 듯 자라는
상추 몇 포기를
뽑았다.
솎지 않은 이유는…
그냥 솎기만 하면
자식이 와서 당신이 기르신
상추를 먹었다는 표가 안 날 거라는
생각?
그러면 아버지께서
다시는 상추를 거기에 인 심으실 거라는 것?
그런 생각에서였다.
드문드문 이 빠진 듯해야
자식이 먹은 줄 아실 거라는…
이 상추가 있던 이 자리에
오랫동안 볏짚이 쌓여있었다.
그 앞에는 뒷간이 있었다.
내가 아마 10살 무렵까지?
그러던 게
꽃밭으로 변했었다.
그렇게 한 10년…?
이제는 상추밭이 돼버렸다.
아버지께서는
굳이 거름을 안 주신다 했다.
안 줘도 너무 잘 자란다고
그걸 바깥마당 수돗가에서 잘
씻었다.
우물에서
퍼 올린 수돗물,
그걸 세게 틀면
웬만한 흙은 다 닦인다.
하기야 흙이
다 내 몸을 이루고
상추를 이루고 …
뭐 빠득빠득 닦을 일이…
그 위에 아버지께서 사신
비싼 삼겹살,
그 위에 풋고추,
그 위에 고추장,
그 위에 흰쌀밥 얹는다.
흘끗흘끗 아버지 모습을
훔친다.
맛나게 잡수신다.
하지만 젓가락이
고기한테로는 많이 가지 않는 모습…
아버지께서는
90이 넘으셨다.
내가 떠나면
넓은 집
홀로 계실 시간들…
난 노후대책을 생각할 입장은 아니다.
4기 암에 무슨
노후대책일까!
망상이고
부질없는 꿈이다.
행담대교 위
땅 향해 떨어지던
비가
도로 위 빛을 수놓는다
물은 사물을 투영한다
세월은 삶을 투영한다.
얼마가 남았 건
감사하게
즐겁게 살 일이다.
사는 일, 곧 삶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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