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나의 소비 패턴에 회의가 든다. 때론 감당하기 힘들다. 돈 액수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삶을 위한 소비가 아니라 소비를 위한 삶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치 소비의 노예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이 기분이 얼마나 역겨운지 마치 금세라도 토가 나올 것 같다. 아니면 MRI 기계의 통속에 내 머리를 옴짝 달짝 못하게 고정한 채 한 시간 넘게 있을 때의 질식할 것 같은 느낌 내지는 극도의 공포감 같은.
이러면 안 된다. 최소한의 소비가 필요하다. 그런 생각만 든다. 그런데 난 도대체 어느 것을 사는가? 어떤 소비를 하는가? 어떻길래 소비에 대한 극단적 역겨움을 요즘에 느끼는 걸까? 난 다행스럽게도 가계부를 쓰고 있다. 요즘 가계부는 항목만 입력하면 통계가 주르륵 나온다. 들여다보면 내가 어디에 소비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걸 보면 내가 과연 소비의 노예인지, 삶을 위한 소비인지를 알 수 있다.
식료품이 가장 큰 카테고리다. 다음이 기름값, 다음이 커피값, 그다음이 각종 통신요금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기름값이 가장 많이 들었다. 그런데 식료품은 살기 위한 최소한이다. 그걸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난 특히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외식을 안 한다. 일주일에 한 번도 힘들다. 병원에 갈 때를 제외하고, 친구들을 만날 때, 고향집 아버지와 중국집을 갈 때를 빼면 거의 없다. 사실 밥값의 경우, 친구들이나 아버지가 낼/내실 때가 더 많다고 해도 그렇게 큰 과장은 아니다. 결국 나를 위한 식비는 몇 십만 원에 불과하다.
기름값의 경우, 작년에 고향집과 어머니 요양병원 그리고 어머니께서 다니시던 대학병원을 자주 방문할 수밖에 없어서 많이 안 나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땐 매주, 어떤 땐 격주로 다녔기 때문에 그 비용이 상당했었다. 그 거리가 대략 왕복 500킬로 내외였다. 그렇게 가벼운 거리가 아녔었다. 덕분에 올해 자동차 마일리지 환급액이 몇만 원에 불과했다. 2년 전만 해도 그 액수가 몇 십만 원은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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