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암 환자의 행복한 아침
오늘 또 새로운 날을 맞이했다.
감사하고도 기분이 좋다.
창밖은 아직 구름 가득 하늘이다.
비 온 뒤 신록은 더 푸르다.
오늘은
고등어감자조림,
쌈밥,
원두커피,
밥 짓기 얘기다.
어제 산 고등어다.
7,500원 가격표 붙은 한 팩이다.
난 두 팩 샀다.
생물이다.
하지만 어제 못했다.
샛별 방 문제 매듭지어야 해서였다.
밤 1시 넘어 끝났다.
그래도 오늘 아침 5시 반에 일어났다.
미뤘던 요리를 했다.
감자 5개, 화분 속 대파 1개, 고등어 2마리, 고추장, 간장, 고춧가루, 매실 약간, 찧은 마늘이 전부다.
내 스타일로 차례로 프라이팬에 놓았다.
난 저 레이어가 좋다.
밑에 무를 쌓았더라면...
아침을 먹었다.
남겨 뒀던 채소다.
난 채소 색감이 좋다.
맘이 편안하다.
아침 먹을 때면
농촌 바깥마당 텃밭에서 어릴 때
야채를 뜯어오곤 했었다.
할아버지가 열심히 기르셨던...
그때 느낌이다.
비록 할아버지, 할머니는 살아 있으셔서
나와 한 상에서 식사 같이 못하시지만...
내가 좋아하는 열무김치를
쌈에 같이 올렸다.
난 겉절이 수준이 좋다.
저건 내 선호상태는 아니다.
너무 익었다.
하지만
익은 김치는 그 나름의 맛이 있다.
밥을 했다.
잡곡밥...
난 무농약 백미, 고향집 아버지께서 지으신 팥,
아버지께서 지으신 검정콩,
아버지가 논 한 귀퉁이에 지으신 찹쌀...
그렇게 밥 해 먹는다, 대부분.
이제는 내 차례일 것이다.
아버지 연세 91...
난 4기 암 13년째...
머잖아 많지는 않으나 적지도 않은 논과 밭에
내가 들어가야 할 것이다.
어머니 가신 뒤
난 이미 농지 소유자가 돼버렸다.
이제 농민으로 돌아갈 듯하다.
그게 올 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
하지만 이미 시작됐다.
내가 논둑에서 기른 검은콩과
내가 재 넘어 밭에서 기른 팥을
딸에게 보내줄 날이 오겠지?
??????
4기 암을 넘어 5기, 6기, 7기 암까지
함께 갈 수 있다면...
아마?
ㅎㅎㅎ
아침식사 후 갈아 내린 커피 향은
내게 안식과 평화를 준다.
첨 날 품에 안았던
그 사랑 따스한 가슴 안에서 이랬었지...?!
나보다 4살 위였던...
더운 날 여름
2시간 흙먼지 속 버스를 타고
땀 흘리며 도착했던
그 넓은 목장 그 집 누나...
아~~
난 원두를 산다.
늘
그걸 간다.
정성 들여 깔때기에 담고
정성 들여 물을 붓는다.
아, 이 커피 향~~
딸의 초기 시련이 어젯밤으로 끝났다.
20 갓 넘긴 딸이
8,400여 Km를 날아가
얼간이 플랫 메이트들 속에서 스트레스받은 지
10일이 지난 후다.
피로, 성인지감수성 제로 플랫 메이트들,
수강,
연휴기간 수 시간 기차 타고 피신여행,
견딤,
새 방 알아봄,
혼자 한 일이다.
맛나게 아침 먹고,
올려 놓은 고등어 조림
인덕션 위,
보글보글 소리 들으며,
커피 마시면서 생각한다.
"하늘은 일을 맡기기 전
그의 근골을 시험한다."
그래도 마지막,
5월 방세 필요한데 어젯밤 인터넷 이체해도
트랜스액션 완료까지는 3~5일 소요,
이번 주말에라도 옮기고 싶어하는 딸...
돈은 입금되어야 하고...
난감한 마지막 관문!
그때 또 도움의 손 내민
내 30년 지기,
현지인 친구의 호의였다.
그와 그 파트너와
딸이 지금 있는 곳에 사는 그들의 절친...
그들 덕분에...
넘겼다!
날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 중...
친구가 누군지 모르겠다면,
가장 어려울 때 같이 하는 친구
대가 없이 다가오는 친구...
난 그 친구가 이 친구란 걸 알았다.
며칠 후 온다.
반달 넘게 있을 여정이다.
곧이어 6월엔 또 다른 친구가
15시간 넘게 비행 후
온다.
내 추억도 온다.
그리고
새 추억이 쌓인다.
내 삶이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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