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암/2023년 4기암과 13년째

내일 죽어도 아까울 게 없는 삶

by 힐링미소 웃자 2023. 6. 7.
반응형

*아래 글은 저의 또 다른 블로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난 4기 다발성 폐 전이암도 부족해 진행성 전이암 진단을 받은 후 한동안 해머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삶을 잠깐 살았다.

 

그러다 맘을 고쳐 먹어 내일 죽어도 아까울 게 없는 삶을 살기로 했다. 

 

안 입던 옷들도 다 버리고, 책도 고물상에 몇천 권 넘겼다. 30cm x 40cm 두 칸엔 속옷과 티셔츠, 바지를 넣었다. 그래도 공간은 남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 겨울용 자켓 하나, 봄 가을용 하나, 여름용 남방 하나를 걸었다. 모두 다 해서 60cm x 80cm, 그거면 충분했다.

 

초등학교 이후, 왜 보관했을지 모를, 상장들이며 편지와 엽서들, 인화된 사진들도 다 스캔해서 1개의 하드디스크에 넣었다. 50년 삶을 넣는데 그렇게 큰 용량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발견하곤 놀라면서.

 

인간관계 또한 내가 관리할 수 있는 숫자로 줄였다. 내가 4기 암 진단에 개털이 되고, 빈털털이가 된 걸 알면서도 내게 꾸준히 연락해오는 관계들은 살렸다. 

 

먹는 것도 1식 3찬 정도로 했다. 고기가 있던 자리에 야채가, 스낵이 있던 자리엔 과일이 차지했다.  점심은 가벼운 과일이나 스콘과 아메리카노 한 잔 정도로 단순화했다. 

 

투자도 단타를 넘어 초단타 영역인 스캘핑으로 먹고, 입고, 쓸 돈을 벌었다.

 

그렇게 소유물과 인간관계와 먹는 걸 최소한으로 줄였다. 더 이상 뭘 줄일 게 없는 듯했다. 그래서 내일 내가 죽어도 아까울 게 없겠다 싶었다. 그때 내가 예상했던 최대의 삶은 4년 전후 쯤 됐었다. 

 

그 숫자는 내가 창조한 숫자가 아녔다. 진단 받았던 첫 번째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 안 하면 죽는다고 했었고, 개복 후 원발암을 떼냈던 두 번째 병원 저명한 교수님께선 계속 커지고 많아지는 4기 전이암 시한폭탄을 갖고 있다며, 더는 해줄 게 없다고 하셨다. 그러니 기껏해봤자 내가 계산 가능한 잔여 수명은 4년? 그 언저리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절망 속 최후수단으로 여겼던 세 번째 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4년보다 더 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면서 소유와 소비, 그 두 가지에서 탐욕과 과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동네 신문 발행 등을 위한 기기들을 필요 이상으로 구입하기 시작했고, 내가 사는 동네와 동, 구에서 감투를 쓰기 시작했다. 상도 받기 시작했다. 알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동네 감투 하나씩 쓴 사림들을 알게 됐고, 동장과 밥 먹게 되고, 구청장을 만나고, 지역 정치인, 지역 기반 정치인들과 말 몇 마디 나누고, 구 예산 과정에 참여하게 됐고, 전국단위 어느 세미나 정기멤버가 됐다. 

 

그러면서 내 분수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늘어만 갔다. 한몫하면서 어깨에 힘 넣는 사람들이 어떻게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지를 보고, 경험하면서 그 가운데 있는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난 먼 발치로 물러나 나 자신을 다시 보기 시작해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 발은 걸치고 있었다.

 

옷가지가 늘기 시작했다. 각종 모임이나 식사자리가 늘었다. 야채와 과일 대신 식당밥이 내 끼니를 대체했다. 스캘핑에서 단타로, 초단위 보유에서 일 단위로, 주 단위로 보유하는 기간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신경써야 할 것들, 관리해야할 것 등이 늘기 시작했고,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곤함이 늘기 시작했다. 그런 삶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런데…그 결과는 참혹했다. 

 

양쪽 폐 속 전이암들의 볼륨이 커가기 시작했고, 약의 내성이 보이기 시작했고, 한 번 전이됐던 육종성 변이에 의한 뼈 전이암이 더 커진 형태로 내 다리 한쪽을 갉아 먹고 있었다. 남아있던 다리뼈를 다시 자르고…결국엔 항암제 내성 판정이 내려졌다.  

 

이제 난 다시 내일 죽어도 아까울 게 없는 삶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옷가지들을 다시 정리하고 있다. 읽은 책들을 중고상에게 넘기고 있다. 기기들을 단순화하고 있다.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있다. 톡도 거의 안 하고 있다. 최소한의 지역 봉사 일로 공동체 기여를 한정하고 있다. 몇일 보유, 몇주 보유를 버리고, 다시 몇 분의 시간만 투자해 커피값, 밥값, 약값 등을 벌고 있다. 새로운 일로 농사꾼의 길에 한 발을 내딛고 있다. 

 

고민과 걱정을 멀리하고 있다. 나쁜 것들만 있고, 나쁜 것들만 가져오는 걱정을 내가 애써 할 이유가 없다. 스트레스의 근원인 고민을 내가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단순하게 말하고 바보처럼 웃고 있다. 

 

다리를 거의 못 쓰게 된 지금, 지팡이에 의지해 절뚝거리는 날 여전히 찾는 이들에게는 오래도록 그리고 많이 듣고, 심플하게 말하고, 솔직한  맘을  드러내고, 감사를 담아 바보 푼수의 웃음을 보내고 있다. 내일 죽어도 아까울 게 없는 삶을 위해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