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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늦을 때란 없다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암 환자 빵 사랑과 길가 풍경 그리고 대배기량 차

by 힐링미소 웃자 2021.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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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른 아침, 시내에 나갔다. 서울역 정도에서부터 세상이 격랑의 세월로 빠져드는 듯 보였다. 간만에 광화문을 통과했다. 이어서 삼청동을 거쳐 도심 속 산을 통과해 성북동에 갔다. 거기서 좋아하는 빵집이며 좋아하는 오랜 친구를 만났다. 돌아오는 길은 광화문이 아닌 조계사 앞을 지나 명동을 스치며 남대문을 지나 서울역을 통과했다. 점심때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길마다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늦가을의 막바지이자 겨울의 초입인 11월 중순, 벌써 뭔가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졌다.

도심을 벗어나니 길 좌우가 확트여 단풍의 향연이…


서울역에서부터 경찰관들과 경찰차량들이 도로 양쪽에 도열해 있다. 시내는 가로수고 뭐고 보이는 게 없었다. 그 긴 행렬은 끊일 줄 모르고 남대문께까지 여전했다. 그러더니 남대문을 스치면서 차선이 한두 개로 줄어들었고, 특이 차량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시청 앞에 오니 정도가 더 심해져서 그 넓은 길이 공원 조성공사로 그렇잖아도 좁아진 광화문대로가 더 좁아져 마치 한 개 차선처럼 보였다. 그건 광화문 앞을 지나 삼청길로 가는 방향은 물론 율곡로로 향하는 곳도 예외가 아녔다.

그런 경찰 숲을 지나 언제나 휴식과 신선함을 주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내 나이 30대 초반에 아주 많이 넘어 다니던 길이다. 주변은 도심의 분위기와는 너무도 다르게 온갖 색깔들로 채색한 거대한 양탄자를 두른 듯 내 혼을 뺏고 있었다. 그러니 내게 예쁘지 않은 계절이란 없다. 그 숲을 지나 성북동으로 들어왔다. 친구를 거기서 보자고 내가 제안했었기 때문이다.

그 오랜 친구와는 어제 전화로 오늘 보기로 했었다. 몇 년 전 팔았던 차가 눈에 어른거려 견딜 수가 없다 했다. 그런데 자기가 매도했던 차가 몇 사람 손을 거쳐 다시 매물로 나와서 급 연락해서 오늘 아침 보기로 했단다. 대배기량이지만 차체는 작은 모델이라 했다. 이 amg는 스피드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로망인가 보다. 이 친구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친구다. 운전을 이동수단이 아닌 스포츠로 본다는 점은 나랑 비슷하다. 대신 그 친구는 현재도 3000cc 대배기량, 난 1800cc 중소형 체급. 그 친구가 한 주 후 재매입할 차량은 5500CC, 난 19년 된 현재 차 11년 더해서 30년 타기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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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때 전세 살았던 성북동을 난 좋아한다. 떠나온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간다. 내가 거기 살면서 추억도 많았지만 여전히 높은 빌딩들이 없어 고즈넉하고 평온해 보이는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레트로를 좋아하는 내겐 딱이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빵집이 게 있다.

 

이 빵집은 유기농 밀가루와 재료를 쓴다고 한다. 유기농 밀가루 포대들이 몇 개 매대 밑 공간에 놓여있다. 만약 빵을 먹으면서 구수하고 깊은 커피가 생각난다면, 이 집에서는 유기농 커피를 주문하면 된다. 좀 비싸긴 하지만 그 깊은 맛을 생각해 보면 한 달에 한 번 호사 못 부릴 이유가 없다. 일주일 내내 8시에 문을 연다. 매 시간 김 모락모락 빵이 구워 나온다. 공장에서 만드는 파*바** 빵과 비교할 바가 못된다. 거기서 그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와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 빵집 주인 눈치가 보여 딴 데로 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그 주인장이 실제로 눈치를 준 건 아니었다. 사실 성북동의 단점은 주차장 시설이다. 나처럼 보행 장애인에게 차는 참 중요한 이동수단이다. 길바닥에 차를 세우고 죽치고 있기엔 다른 통행차량들에게 민폐다. 그래 겸샤겸사 그 가게를 나와 스벅으로 갔다. 그 친구가 스벅 커피 마니아인 까닭이다. 첨 장소는 내 주장이었으니 두 번째는 상대방 취향이어야 하기에.

거기 삼선교 스벅도 주차가 힘겹긴 마찬가지라서 난 그냥 오려했으나 그 친구가 주차비 계산한단다. 그러니 빵값과 커피값에 이어 스벅 커피와 주차비도 그 친구가 다 냈다. 내 손을 너무 뿌리쳤기에... 하지만 담엔 내게도 기회를 달라했다. 어쨌든... 길고 긴 얘기 끝에 담엔 낙지볶음 요릿집 한 번 가지고 약속하며 아쉽지만 헤어졌다. 그도 일이 있고, 나도 3시로 예정된 내가 사는 새둥지의 재건축 관련 회의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간 길의 역순인 게 당연한 일이었으나 오늘은 그게 안 됐다. 성북동을 넘어 삼청동 총리공관쯤 오니 다시 경찰들 바리케이드와 경찰버스들의 도열이 시작되더니 동십자각 앞에 오니 더 심한 바리케이드로 광화문 나가는 길이 장난이 아녔다. 어쩔 수 없이 좌회전했다. 하지만 조계사 방향이나 인사동 쪽도 사정은 매한가지였다. 그런 사정은 조계사를 지나 종각과 을지로는 물론 다시 남대문과 서울역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우리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부작용이나 목숨을 걸고 자율을 넘어서까지 접종을 받고 있다. 오늘은 통행과 보행, 이동의 자유와 모일 자유를 저당 잡혔는데, 공공선이 균형감 있게, 조화롭게 실현되는 바램과 함께한 하루였다. 물론 그 후 재건축 내지 재개발을 화두로 한 2시간 넘는 회의가 날 기다리고 있었고... 이뤄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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