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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늦을 때란 없다

4기 암 환자 지역사회 데뷰-인사동 나들이 1

by 힐링미소 웃자 2021.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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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모처럼만에 인사동에 갔다. 사실 모처럼이라고 할 순 없겠다. 10월에 한 번 가고 이번에 갔으니 두 번째라 해야겠다. 오늘은 몹시 췄다. 마치 겨울 예행연습 같은 분위기였다. 존경하는 두 분과 점심을 같이 하고 귀한 얘기를 들었다.

인사동은 내 20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정말 많이도 갔었다. 혼자서도 갔었고, 친구와도 갔었다. 때론 외국 손님들과도 갔었다. 20대 어느 한 토막, 대략 5년 여를 국제 NGO 서울 코디네이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외국에서 온 손님들한테 전통과 상업이 어우러진 장소로 그만한 데가 없다는 생각에 소개해주곤 했었다.

그 NGO는 시도 때도 없이 세계여행을 즐길 만한 재력이 있는 부자들의 클럽이었는데, 빈털터리였던 내가 어떻게 그 그룹에 꼽사리 꼈었는지 모르겠다. 살다 보면 그렇게 생각지도 않던 순간들이 오기도 한다.

돌아보면, 그때 인사동은 참 가볼 만한 곳이었다. 한적하고, 나름 고즈넉하고 그랬었다. 물론 30대 때에도 갔었다. 하지만 20대 때만큼은 아녔었다. 그리곤 그 후부터는 1년에 한두 번 갈까... 였었다. 그러다 지난달에 한 번, 오늘 한 번 해서 근래 두 번이었다.

둥글고 근세적인 건축물들이 반듯반듯 네모난 건물들로 바뀌었고, 찻집과 막걸릿집들이 있던 곳들은 수도 없을 카페들로 대체된 듯했다. 전통마저 초현대식 건물에서 팔고 있었다. 오늘 날도 찬데 거길 간 이유는 어느 한 분을 모시고 또 다른 분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내가 사는 동네 주민 단체 한 분과에서 올 초부터 총괄을 맡게 된 난, 동네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깊이를 더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총괄하게 되었다. 4기 전이암 환자로선 좀 뜻밖의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항암제와 정기적인 방사선 검사, 조영제 부작용, 몸뚱이 여기저기 도려내지고, 잘려나가는 꼴을 보며, 더 늦기 전에 내 고장을 위해, 그곳에 사는, 살게 될 내 새끼들을 위해서도 뭔가를 하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그 프로그램을 위해 여기저기 소문난 분들을 모시기로 했다. 그중의 한 분이 오늘 점심을 같이 먹고, 한담을 나눈 분이시다. 이분은 역사를 전공하셨고, 서울 주요 대학교의 인문대학 학장을 하시다가 올 9월에 정년 퇴임하셨다.

현재는 명예교수와 전국 각지 특강과 감춰진 역사를 발굴하시기에 바쁘시다. 이분이 긴 대학교수 생활을 정리하기에도 바쁘실 때 내가 부탁을 드렸었는데, 흔쾌히 수락하셨는데, 명성이 자자하신 분이니 만큼 이 분을 프로그램의 간판으로 하기로 작정했었다.

그 밖의 많은 분들을 섭외했는데, 그 과정이 꽤나 바빴었다. 모시기로 한 분들 모두가 내 부탁을 승낙하시니 나름 신나 했었다. 내친김에 한 개 구의 문화예술을 총괄하는 문화원과도 협력관계를 맺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욕심! 꿈만 꾼다고 이뤄질 욕심은 없다. 그러니 시도했다. 관련 문화원 사무국장님을 뵙고, 대화를 하고... 결국은 책임자인 문화원장님도 뵙게 됐다.

그런저런 준비 과정을 몇 개월에 걸쳐 진행하고, 프로그램을 실행하다 보니, 거기에 참여하는 주민분들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많은 분들께서 열정을 갖고 참여하셨는데, 거기다가 과한 칭찬을 보내시는 분들도 계셨는데, 그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입장에서 난 기뻤다.

그런 분들 중 유독 나에게 분에 넘치는 관심과 응원을 보내시는 한 분이 계셨는데, 밥도 몇 번, 커피도 몇 번 같이 할 기회를 얻다 보니, 서울 어느 국립 대학교 총장님을 아주 오랫동안 하신 분이란 걸 알게 됐다. 그분을 태우고 그 인문대학장님을 만나러 오늘 인사동 나들이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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