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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국내여행

서천 무창포 옆 흥원항, 1000년 넘은 고찰 부여 무량사

by 힐링미소 웃자 2023.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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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잘못됐다. 춘장대해수욕장 옆이 더 정확하다. 

 

서천 홍원항은 두 가지로 유명하단다. 하나는 지형이 빈도라서 한 곳에서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물 좋은 수산물을 좋은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것.
 

 

 
막상 가보니 그런 듯하다. 내가 수산 전문가는 아니지만 바로 옆에 갑판장 겸 입찰 경매 장소가 있다. 배가 들어오니 경매가 시작되더라니... 앞집 사장님들 한 판, 두 판씩 끌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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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오징어 데쳐 먹으면 맛나겠다. 회로도 먹고... 냠냠
 

 

 

 

사진 속 산 밑에 갑판장과 수산물 판매점들이 가득 찬 건물이 있다. 그런데 가게들 내부에 식당이 없다. 놀라서 물어보니 2층이 요리해 주는 곳이란다.
 
 

 
방금 잡은 싱싱한 멍게 3마리에 10,000원이라는데, 그 2층에 올라가면 한 명당 7,000 원식 받는단다. 그럼 만 원어치 사서 3명이 가면 다듬어 주는 데만 21,000원이다. 이건 현명한 소비가 절대로 아니다, 멍게만 먹자고 한다면...

 
 

 

좀 더 나가면 방파제가 있고, 산책로가 나있다. 더 가면 전망대 비슷한 게 있다. 거기에 마치 스카이워크 같은 시설이 있어서 망망대해를 볼 수 있다. 바다멍에 딱인 듯했다. 그런데 내가 간 날은 안개가 짙게 껴 꽝이었다.

 

 
 

차가 들어갈 수는 있지만 유턴이 안 된다며 거꾸로 나와야 한다고 했다. 후진이다. 방파제에서... 위험한 일이나 자신 없는 일은 안 하는 게 상책이다.

 
 

 
 

먼 길을 헤매다 우리는 지주가 될만한 사람, 의지할 만한 사람을 찾는다. 아니면 이정표가 필요하다. 망망대해를 떠돌다 필요한 건 뭘까? 아마 해? 산? 낮에는 그게 가능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달도 없는 깜깜한 밤엔 어떨까? 아니면 비바람 몰아치거나 눈보라 몰아치는 오밤중엔?

 

 

 
 
등대! 왜 그런 게 필요한지 알만 한 이치다.

 
 

아래 갈치 진짜 크다. 서천 근해에서 잡힌다니 놀라운 일이다. 제주도 같은 데에서 은갈치구이 한 접시 먹으려면 지갑 다 털어내야 한다. 그런데 저런 크기에 저런 값이면, 당장 사다가 튀겨먹고, 호박이나 감자 넣고 조려 먹고 싶다.

 

 

위 사진 왼쪽, 상어가 3만 원이란다. 거기 여사장님께선 나한테 사가라고 하시는데, 내가 그날 집으로 곧장 갈 거였음 아마 샀을 것이다. 근처에서 잡은 거란다. 그럼 어미 상어도 분명 곁에 있었을 것이지... 하, 수영할 곳은 못 되려나? 바로 옆이 모래 좋고 해변 좋은 춘장대 해수욕장인데...

 

장소를 옮겼다. 드라이딜이 좋은 부여군 외산면 길이다.
 

 

장소를 옮겨 부여 무량사로 들어왔다.

 

 
 

 이 고찰은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절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고려 때 번성했다고 한다. 임란 이후 대대적 중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 절이 잡리잡고 있는 웅장한 산은 만수산이다. 만수산, 이름이 참 예사롭지 않다.

 

두 독일 친구들, 이곳 너무 평회스럽고 자연스럽단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거의 다 부쉈다고 한다. 하여간 이 사람들...

 

 

우리 전통 주택은 바람길은 만든 게 많다. 자연을 어길 생각이 없는 듯... 요즘 고층빌딩이 너무 많다. 그래서 모질어지나?

 

 

문을 들어서면 메인 건물인 대웅전이 나온다. 

 

 

이 고찰, 부여 무량사는 가람 배치가 참 자연스럽고 안정적이다.

 

 
 

각도를 달리해보면 무량사 대웅전 지붕과 왼쪽에 보이는 산의 조화가 아름답다.

 

 

이 나무는 몇 년을 큰 걸까?  저 고목은 얼마나 오랜 시절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지켜봤을까? 인간은 나무보다 훨씬 짧은 삶이다. 인간의 생이 저 나무에 비해 얼마나 짧을까를 헤아리다 보면 자연 속 미생의 삶으로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이 가람이 얼마나 넒었을까를 짐작하게 하는 빈터들이다. 옛날엔 50여 채의 건물들로 이뤄졌었다고 한다. 부여 무량사가 아주 큰 사찰였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임진왜란이며 크고 작은 사변들에 의해서 파괴됐다고 한다.

 

 

고찰의 옆으로 흐르는 시내가 맑은 걸 보며 흐르는 물은 섞지 않음을 본다. 아랫물은 윗물에 의해 밀려감도 본다.  부여 무량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김시습을 생각해 본다. 그의 삶은 얼마나 길었을까!

 

 

생명력, 생차기 속에서 가지가 나고 있다. 가만 놔두면 볼만 할 듯하다.
 
현재의 무량사 동편의 넓고 편평한 땅은 이 고찰의 규모를 말해준다. 저 위 사진 속 계곡을 사이에 두고 요사채등이 있었을 거하고 한다. 참으로 한 규모 했었을 역사와 문화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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