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째,
시간이 빨리도 흐른다.
어떻게 갔는지 모를 16일간의 시간.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는 통증,
그 통증이 이제는 대여섯 시간에 불과한
내 수면을 서너 번씩이나 방해하기에 이르렀다.
조만간에 방사선 치료든 수술이든
해야 한다.
이대로 뒀다가
더 커지고, 딴 데로 가면
그때는 걷잡을 수 없다.
연휴 중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결심,
조용한 장소를 찾기 위해 새벽에 길을 나섰다.
내가 즐겨 찾는 영종도.
내가 이곳을 찾기 시작한 건 20대 중반부터다.
당시, 인천항에서 잠깐 배를 타고 가면
건너편에 도착했었다.
거기서 한참 기다리면 버스가 출발했고,
멀고 큰 갯벌을 지나 마을을 돌았었다.
그곳에서 구불구불 좀 더 가면
을왕리해수욕장이 나왔었다.
지금은 아니다.
인천공항이 들어섰고
전철이 놓였고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옹기종기 아니면 띄엄띄엄 있었던
마을들의 흔적은
이제는 옛 사진 속에나 있을 장면들이다.
가는 길에 비행기가 여러 대
내 차 앞 또는 머리 위를 날았다.
내가 한때 꿈꾸던 생활은
저런 비행기를 타고
여기저기 다는 것이었다.
영종도 바닷가에 도착했다.
바다와 관련된 사연들이 내겐 많다.
그중 가장 강렬한 추억은
제주도 바닷가에서 이루어졌던 3년이다.
20대 초반 난 제주도에서
군대생활을 했다.
쫄병 시절,
해안초소에서 근무했었다.
낮엔 자고 밤에 근무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수면 시간이 짧았던 난
오후의 중간,
고요히 바다를 바라보는 것을 즐겼었다
잔잔한 날이든
태풍에 온 바닷물이 요동치던 날이든
나의 그런 취미는 멈추질 않았다.
바다는 네게 저~머얼리 어디
끝도 없이 가다 보면
내가 한 번도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신기한 것들, 낯선 것들로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찬 신비의 세계가
있을 것 같은,
그런 세계로 날 안내할 양탄자처럼
보였었다.
상념은 계속됐고,
그간 내 곁을 스쳐간 시간들이 얼마며
지금 내 나이가 얼마인가를
남은 삶이 얼마인가를 생각해 봤다.
내가 만약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이제는 그 후로 수술 한 번도 못해보고
죽을 운명인지,
내가 만약 다리뼈 절단 재수술을 받으면
절단의 고통에 몇 날 며칠
고통 속에서만 살다 죽는 것인지
그런 생각들을 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들 저런들
내가 백 년을 더 살 것이냐?
천년을 더 살 것이냐? 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도
누군들 백 년을 더 살 사람
어딨으며
천 년을 더 살 사람
어디에 있을까!라는 생각에
나 같은 무지렁이는 하루라도 더 사는 게
잘 사는 거다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낫다더라! 는 옛 말도 떠올려 봤다.
그런 상념 중에 아침 커피를
걸렀다는 걸 새삼 떠올렸다.
길을 돌렸다.
이 카페 저 커피숍을 아무리 둘러봐도
아직 오픈 전이었다.
길을 아예 돌릴까 하다가
한 집만 더 찾아보기로 했다.
통유리를 통해 보이는
괜찮은 인테리어를 한 한 집,
바지런한 여 사장님인 듯
어느 분께서 막 문을 여는 게 보였다.
맛난 모닝커피를 했다.
둘러보니 인테리어에 신경 꽤나 썼다.
소품들이 참 아기자기….
가격표가 요즘 사악하지 않은 데가 없다.
물가가 장난 아니다.
돌아오는 길 하늘이 참 맑았다.
이날 따라 뭉게구름 둥실둥실
초심으로 돌아가자
다시 시작하자! 는 생각
저 비행기 타고 어디라도, 한 번이라도
더 가려면?
방사선 치료가 좋을까?
수술이 좋을까?
방사선 치료하면 현재 상태는 유지 가능한데,
나름 걷고, 여행가방 메고... 할 수는 있는데...
돌아오는 길,
여의도에서 3년 만에 불꽃 축제한다는 내용과
길바닥에 차 바쳐놓지 말라는 엄포가 담긴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려 있다.
100만 명이 모일 거라나 어쩐다나...
동네에 들어오니
누군가 어느 의자 위에
둥근박과 표주박, 호박 등을 올려놨다.
가을... 핼러윈... 추수...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하다.
가을은 국화의 계절,
국화 없는 가을은...
여의도 인파와 차량 지옥을 피하기 위해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3명의 절친들이 일산 한적한 교외
한정식집으로 날 초대했다.
이런저런 맛난 음식... 먹었다.
한사코 돈을 내겠다는 날 한사코 말렸다.
이 친구들과는 긴~ 세월 우정을 간직하고 있다.
많이 응원해주는 친구들이다.
식사 후 2층으로 갔다.
농담, 조크, 어려운 얘기, 좋은 얘기...
남편들 욕했다가 은근히 자랑했다가... 하하하
밤늦은 시간까지 함께 했다.
난 귀갓길,
여의도 불꽃 생지옥 피하려고 일부러
늦게까지 일산에서 머물렀다.
마지막으로 스벅으로 갔고...
그곳에선 내가 샀다.
나름 비싼 메뉴로...
만나자마자 많이 여윈 것 같은데
얼굴은 왜 그리 부었냐며,
몸무게가 너무 빠진 것 같다며
안부를 묻던 친구들,
내가 웃기만 하자
대답을 추근 했던 친구들,
그들에게 말했었다.
식사 다 끝나고 나서...
그 식사 끝나고
차 마실 때도 난 말을 안 했다.
좋은 분위기, 그걸 깨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3차, 스벅에서는
더는 피할 수 없었다.
사실을 말했다.
두 친구... 막 울었다.
한 친구는 내 손을 잡고
고맙다며 울었다.
여적까지 살아줘서.. 함께 해 줘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하자며..
맞은편 친구는 너무 울어
두 눈이 빨갛고.. 부었다.
힘내라고... 몇 번이나 말하면서...
집에 들어가서 그 친구들 부은 눈 본
남편들이 많이들 걱정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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