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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22년 4기 암 12년째, 코로나 감염

시한부 48개월을 125개월로 바꾸다(업데이트)

by 힐링미소 웃자 2022.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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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병원 검사와 진료에 대한 소감


2021년 말! 연말에 병원 검사와 진료가 있다면 누구든 좀 서글픈 일일 것이다. 나는 묘하게도 연말에 여러 개가 걸린다. 작년 말뿐이 아니라 그 전 해에도, 그 전전 해에도 그랬다. 성탄절과 연말 분위기를 즐기는 건 내게 딴 나라 얘기일 수 있다.

하필 그런 축제 시즌에 일부러 병원 진료를 잡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망칠 생각은 아녔다. 애초에 그렇게 시작했다. 아픈 데나 아픈 걸 검사하는 걸 100% 내 맘대로 할 수는 없다. 뭐 1월 3일 날 아프고 싶다고 해서 아플 수 있는 게 아니다. 또 내가 아무리 VIP나 VVIP라 해도 원하는 날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의사로 검사나 진료 예약을 잡을 수는 없다. 특히 서울에 있는 소위 ‘빅 5’는 더더욱 그렇다.

흉부외과가 부담이 덜한 이유


열심히 3개 과를 들락날락했다. 흉부외과 진료를 받을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흉부외과를 먼저 들르는 건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 항상 그렇다. 이분이 직설적이라서 그렇다. 이분이 몇 살이신지 모르겠다. 어떤 땐 60대, 또 다른 때는 70대, 또 어떤 땐 80대... 팔색조 같으시다. 그런데 분명한 건 물리적 나이는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이분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는 사실이다.

“뭐하러 그런 걸 물어?”
“네?”
“앞으로 그 암덩어리들이 어떻게 될 건가? 커지나? 커진다면 어쩌야 하는지... 그런 것들 말이야.”
“그래도 궁금하니까요?”
“궁금? 알아서 어쩔 거야? 그리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교수님은 명의시잖아요.!”
“하! 다 쓸데없어요. 앞 날에 어떨 건지, 그런 거 알면 그게 다 또 다른 스트레스가 돼요.”
“그럼?”
“뭐가 그럼이야? 그냥 그때 돼서 생각하고 대처해도 안 늦어요.”
“......”
“그때까지 되도록 재밌게 사는 거지. 안 그래?”

흉부외과 석좌교수님_미소 띤 백전노장 석좌교수

이 양반께 내가 진료시간에 뭘 좀 물으면 이 분의 오래된 레퍼토리가 그렇다. 또한 이분의 항암 지론이 항상 그러함을 알 수 있다. 다행인 것은 이 양반께서 설령 비관적인 검사 결과를 말씀하실 때 조차도 이 분의 얼굴엔 웃음이 항상 머문다는 것이다.

나보다는 어쨌든 최소 15년은 더 되셨을 법한 분께서, 그것도 이 분야 최고라고 평가받으시면서... 학술원 정회원쯤은 진작에 되신 분일뿐더러, 인생의 대선배이시면서 이 분야에서 최초로, 일단 연 가슴을 안 닫고 칼질을 시작하셨다는,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이시니... 내가 이런 분들의 경험과 지혜를 안 빌리면 누구의 그런 것들을 빌릴 수, 빌려야 될까!

낙관적인 흉부외과 검사 결과


그날 들은 말은 아주 간단했다.
“3달 전 그 과에서 검사한 것에서 뭐 달라진 게 없어!”
“네?”
“안 커졌어.”
“아, 네. 감사합니다.”
“뭘! 자, 이제 내년에 또 보자고.”
“네...”

그분은 그런 말씀을 하시며 일어나셨다.
그리곤 옆방으로 향하셨다.
그 문지방을 넘으시면서,
“참 다행이다... 다행이다...”
누구 들으라는 얘긴지 모르게,
날 향해선지,
허공을 향해선지...
그렇게 말씀하시며 옆방으로 사라지셨다.

흉부외과를 나오며 난 심호흡을 크게 했다.
“다행이다"라는 말씀은 내게 묘한 여운을 남겼기 때문이었다.
이어질 주치의 교수님의 진료는 봐도 안 봐도 그만이었다.

4기 암_진행성 암_전이성 암_시한부 선고

 


2011년 벽두에 터진 4기 진행성 전이암 판정 사태는 내 인생에서 ‘사태’였었다.
그로부터 11년을 다 보내고 들은 그 ‘다행’이란 단어는
내 눈가에 다시 눈물이 핑! 하는 감상을 가져왔다.
순간적으로 그랬다. 사실 좋아서 미소, 아니면 소리라도 쳤어야 됐을 순간이었건만.

햇수로 11년째 마지막 날에 들은 그 말,
“다행이다.”
난,
“4기 암환자가 지치면 진다”는 말의 의미를 첨에는 잘 몰랐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하루만 더 지나면 햇수로 12년째로 들어가면서... 만 11년도 끝나간다.”
그날 난 그 말을 속으로 속삭이며
가슴속 묘한 어떤 덩어리가
이리저리 쿵쾅거리며
내 맘을 격랑에 휩싸이게 한다는 걸 느꼈다.

시한부 진단은 사형선고인가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2월 초.
이제 난 꽉 채운 11년을 멀리 기억의 저 편으로 보내고 있다.
그리고 12년으로 들어가고 있다.
2014년 맥시멈 48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그 48개월을 보내고도 안 죽은 게
2017년 말이었다.
죽어야 할 순간을 넘기고 4년을 더 살고
이젠 5년으로 들어간다.

이게 내 삶에 주는 의미는 뭘까?

*오리지널 포스팅=202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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