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다시 병원에 왔다. 9일 전에 왔어야 할 걸 이제야 왔다. 코로나 땜이다. 하필 결과 볼 당일 확진이라니! 했었다. 9일 전, 그것도 이제 보니 옛일이 되고 있다. 물론 아직 잔기침에 마른 기침에 가래에 코막힘은 여전하다. 그래도 인후통과 근육통 그리고 기운 없음이 사라진 게 어디냐!
오늘은 결과가 조금 묘할 것 같다. 코로나 사국 땜 운동도 많이 못 했다. 거기에다가 잦은 설사로 항암제도 일주일에 이틀 꼴로 건너뛰다시피 했었다. 그렇다고 내가 지난 세월 변함없이 지켰던 싱싱 채소와 싱싱 과일을 먹었냐? 그것도 아녔다. 크기나 개수가 좀 커졌다!라는 말을 듣기에 십상이다.
그렇다고 몸이 좀 편했었나! 화려했던 배역을 뒤로하시고 무대 뒤로 퇴장하실 준비를 하시는 어머님 덕분에 두 달 동안 왕복 500여 키로를 8번이나 갔다 왔다 했었다. 시골집에서 하룻밤 잔 적도 없이 당일 새벽 당일 밤중 귀경, 그렇게. 몸에 그렇게 썩 좋을 조건은 아니었다. 다행이라면 과속을 안 하고 고속도로 규정속도로 오고 갔다는 것, 휴게소마다 30분 이상씩 푹 쉬면서 오고 갔다는 것 정도?
면역력 유지의 최적 조건은 몸과 마음의 편안!이라고 내 주치의와 협진 교수님들께서 강조하셨었다. 먹는 거나 운동 부족으로 육체가 항상성을 잃어도 안 되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아서 평정 내지는 안정이 무너져도 안 된다 했다. 그 조건이 바로 온갖 염증과 부작용이 시작되는 필요충분조건이라고들 하셨다.
내 폐를 잘라내신 노 교수님께선 그중 압권은 오지 않은 미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통제 불가능한 성격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라고 했다. 그분 말대로라면 앞날에 대해선 좋은 것만 기대하고 나쁜 생각이나 느낌, 추측, 예측 등은 멈추고 미뤄 두라는 것이었다. 그게 어쩔 수 없단다. 암 4기에 몇 군데 전이가 발생하고, 그게 그런 부위들을 잘라낼 정도면 몸에 엔간히 다 퍼진 상태란다. 그러니 뭘 어쩌겠냐는 말씀이다. 오히려 과도한 걱정은 못된 암세포들에게 자양분을, 터버 엔진을 달아 주는 것과 같단다.
천하태평! 내가 어릴 때 내 귀에 많이 들리던 말들 중에서, “그 사람 참 천하태평이야!”라는 표현이 있었다. 당시엔 그게 뭔 뜻인지 몰랐었다.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느리고, 부드럽고, 관용하는 것, 제 분수를 아는 것... 그런 것들을 의미한다는 것.
대략 90여 분 뒤면 주치의를 뵌다. 오늘은 조그만 책자 하나를 가져왔다. 그분께 선물할 요량이다. 내가 만든 자료집인데 평가가 나쁘지 않다. 문화원, 도서관, 구청, 구의회 등에서 추가 요청이 많다. 100부를 인쇄했는데, 더 부탁해야 것 같다. 내 이야기가 나온 건 아니다. 우리 동네의 역사와 문화와 유/무형의 유산을 정리한 게딱지만 한 책자다. 그분께서 잘 리딩해 주시고 있는 까닭에 지역공동체 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분의 애써주심에 보답하는 아주 쬐그만 선물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웃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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