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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23년 4기암과 13년째

아이러니, 장수하시는 아버지의 불평

by 힐링미소 웃자 2023.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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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장수하시는 아버지의  불평의 내겐 아이러니다. 

 

아버지께서는 91 세 시다. 어머니께서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뒤부터 날 보실 때마다 가끔씩 하시더니, 어머니께서 세상을 뜨신 후부터  나를 보실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생겼다.

 

오래 살아서 뭐 하냐, 오래 살면 고생인데.

 

내가 왜 그런 말씀하시냐고 반문이라도 하면 그럼 오래 살면 뭐가 좋으냐라고 오히려 반문하신다.

 

난 아버지의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숨길 수 없다.  난 아직 60이 안 됐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 연세만큼 살려면  30년 넘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30년은커녕 앞으로 내가 몇 달을 더 살지, 몇 년을 더 살지 모른다. 난 13년째 4기 암 투병 중이다. 그중에서 삼 년을 뺀 나머지 10 년, 그 세월 동안 표적 항암제를 통한 생명 연장을 추구해오고 있다.

 

심한 설사, 백발, 온통 새하얀 체모, 위장 손상, 갑상선저하증 등 갖은 부작용과 실랑이를 벌이면서까지 독한 항암제를 먹는 것은, 신장 하나를 통째로 잘라내고, 폐 한 엽을 잘라내고, 대퇴골을 두 번씩이나 잘라내는 대수술을 해오고 있는 까닭은  오로지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서 이다. 그거 말고 또 무슨 이유가 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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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처지에서 91년을 살고 계시는 아버지 그 표현, 

 

오래 살면 뭐 하냐? 고생만 하는 걸...

 

그 말씀이 내게 주는 파장은 크다. 서운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그 무엇이다. 서운하다는 건, 40대 중반이라는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4기 진행성전이암을 진단받았고, 갖은 애를 쓰면서 생존을 추구하는 아들을 앞에 두고 하시는 말씀이라서 그렇다. 

 

안타까운 건 60년을 함께하신 배우자를 떠나보낸 입장에서는, 더더군다나 90세가 넘으신 단계에서는, 거기에 더해 남자인 까닭에 우울증이 더 심하시리란 걸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을 듯해서다. 환경 또한 영향이 크리라 생각한다. 요즘 농촌에 사람들이 거의 없다시피 한다. 젊은 사람은 더더욱 없다. 내 고향만 해도 제일 어린 사람이 50이란다. 더군다나 아버지께서는 국민학교(초등학교) 동창분들을 다 잃으셨다. 겉마음이 됐건 속마음이 됐건 떨어놓고 대화할 친구가 없다는 뜻이다.

 

 

나야 15세에 집을 떠나 길바닥에서 뒹굴면서 살아온 인생이라 딱히 어느 한 인간에게 의지할 일은 없었다. 대신 친구들은 엄청 많았었다. 빨래도 내가 해 입고, 밥도, 반찬도 내가 해 먹으면서 살았다. 설거지니, 손 많이 가는 요리도 마찬가지였다. 거처도 30군데 넘게 옮겨 다녔다. 그러니 아버지께서 살아오신 역사와 내 삶의 역사가 같을 수는 없을 일이다. 그래도 나나 아버지나 인간으로서의 일반적인 특성은 공유하리라 생각한다. 그건... 나이가 들어갈수록 약해진다는 것, 총기도 흐려진다는 것, 몸도 젊을 때와 달라 거동조차도 힘들어질 거란 거...

 

 

그렇지만 여전히... 나름 장수하시는 아버지의  불평의 내겐 아이러니다. 내가 아버지일 수 없고, 아버지께서 자식인 나 일 수가 없는 까닭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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