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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11년 암 진단, 4기, 전원, 첫 번째 수술, 좌절

암삶 15 -암 사이즈 15cm “빨리 수술합시다!” 단, “로봇수술은 안됩니다.”(2011년)

by 힐링미소 웃자 2021.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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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러한 말,
“당신 암 크기가 15cm야!”
“당신 콩팥 암 덩어리가 당신 콩팥보다 더 커!”
그런 말들과 함께
그 교수님의 표정이 변해갔다.
그림자 깊게 드리운 나무 아래 누운 채
어린 새끼들과 헛발질하던 수사자가
쓰러지는 듯 다리 저는 사슴을 본 듯,


앉아있던 도베르만이
주인이 던진 허공에 뜬 공을 본 듯,
눈빛이 분명 해지며 날 쳐다봤다.
짧지만 강렬하게, 그렇게.


그리고... 그 교수님은 고개를 돌려
타이핑 중이던 직원을 향했다.
“이 선생!”
“예.”
“나 다음 주 스케줄?"
“다음 주요?”
“......”
“예. 꽉 찼습니다.”
“그래?”
“......”
'참 내. 뭐 새삼스러울 일도 아닌데...'
그 간호사는 눈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간호사와 그의 대화를
사자 발밑의 숨 끊어지는 사슴의 눈빛으로
난 그저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때 그 교수님 말투, 인상, 스타일은
내가 그를 처음 봤을 때의 그것들 과는
너무도 달랐다.


늦은 점심 후
뒷짐 지고
나무 이쑤시개로
이 이빨 저 이빨을 쑤시며
완보하던 템포였던
그의 말투는
지금은 허공으로 치솟는
막 발사된 단거리 유도탄 같았다,
거침없고 빠르게 내 말과 표정을 쫓아오는.


그런 속도로 그 교수님은 말을 이어갔다.
“이 선생, 다음 주 목요일
이 환자로 바꾸세요!”
“예?”
“이 환자 안 되겠어요. 급합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수술은 잡혔다.
그리곤 그 교수님의 대화는
이제는 명령이 되어,
“자, 나중에 밖에서 안내되는 대로 하세요.”
“예? 그럼 제가 빨리 수술할 수 있나요?”
“예. 당신 급해! 자 빨리 수술합시다.”
난 예기치 않은 수술 결정에 뛸 듯이 기뻤다.
정신없기는 매한가지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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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나는
마땅히 놀 게 없었다.
아마 열 살 전후?
이상하게 그때는 언덕에서
뛰어내리는 시합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 따분해지면
모내기 철
물 넘실대던 도랑을 건너뛰는 걸로
스릴의 정도를 높여가던 때,
마지막 차례였던 나는
도약과 동시에
‘아차! 이게 아닌데... 빠진다!’하는
예감이 스치면서
반대편 도랑 둑이 너무도 멀게
보였던 적이 있었다.
친구들은,”쟤 빠진다. 빠져 떠내려간다!”
나는 그 소릴 들으며
허공에서 너울대던 내 몸을 봤었다.
하지만 곧,
“야아! 쟤 발 하나만 빠졌다.
야~ 대단하다!”란
동무들의 소리와 함께 기절했던 적이 있었다.
아주 빠르게 짧은 순간 동안!
아마 너무 기뻐 잠깐 정신을 잃었거나
못 차렸었거나,
혼이 빠졌었거나......


그 교수님의 ‘자, 빨리 수술합시다!”
란 말을 들었을 때.
왜 하필
그때
그 일이
떠올랐을까...


너무 기뻤다.
진료는커녕 얼굴도 못 보고
집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던 나는,
진료도 받았고 또 "수술하자!"라는 말에,
‘아! 이젠 살았다!’란 생각과 동시에,
“교수님,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하여간 커! 당신 거 참 커.”
그렇게 빠르게, 예상외로 돌아가는 상황이
꿈인 듯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제 하나만 확인하면 되겠구나. 휴! 살았네.’하며
그 교수님을 우러러봤다. 그리고 물었다.
“교수님, 그런데 로봇수술은 많이 비싼가요?”
“로봇수술?”
“예!”
“누가 당신 그 암덩어리를 로봇으로 수술한대?”
“예?”
“당신 건 안돼 “
“.....”
“로봇으로 하기엔 너무 커”
“그럼?”
“배!”
“예? 그 교수님은 로봇으로.,,”
“무슨 말하고 있는 거야?”
“......”
“당신 건 무조건 열어야 해!


‘열어’? 연다?’
나는 다시 멍해졌다.
‘열어?
뭘?’
배를 열어?


열 손가락에 붙어 있는 모든 손톱을
그냥 다 뜯어먹고 싶었다,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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