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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13년 전원, 두 번째 수술, 폐 절제

암삶 34-통제 불능 암덩어리들 볼륨 그리고 세 번째 병원으로 전원(2013년)

by 힐링미소 웃자 2021.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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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병원에 발을 디뎠다. 원발암 진단을 받은 첫 번째 병원에서 즉각적인 수술을 권했고, 일사천리로 입원절차가 끝났었다. 그러나 폐 전이 4 기암이라는 진단에 대한 강한 부정은 확인 진료를 위해 내 몸을 두 번째 병원으로 향하게 했고, 거기에서 운 좋게 급행으로 원발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2년여 년 기간 동안 추적관리의 연속이었고, 엄청난 양의 방사선이 분사되는 영상검사의 연속이었다. 항암제나 그 어떤 대안도 없이 흐른 2년여 시간 동안 암의 개수와 크기는 놀라 자빠질만한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

난 하다못해 같은 병원의 흉부외과 진료를 부탁했고, 그 양쪽 폐에 포진하고 있는다발성 폐전이암 덩어리들의 규모와 분포가 도대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치료는 언감생심에 그냥 내 몸, 소중한 내 몸속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바람과 부탁과 요구는 희화화의 대상이 되었고, 묵살당하기 일쑤였다. 큰맘 먹고 여러 번 부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왜? 내 몸이니까! 그들의 몸이 아니고 내 소중한 몸이니까. 우여곡절 끝에 만난 폐 교수님의 폐 수술 계획에 난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이 날 억눌렀다. 이판사판! 마지막 시도를 해보자. 삼세번! 그 단어를 되뇌며 전원, 병원을 옮기기 위한, 진료의뢰서를 부탁했으나 역시 조롱만 받았다. 그러나 그럴수록 난 단순해지기 시작했다.

"자, 안 해본 것을 해보자."
"이제와는 정 반대로 해보자!"

그래서 세 번째 병원에 도착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예.”
“우선 가져오신 서류와 영상 자료를
확인해보겠습니다.”
“......”
“ 진료의뢰서 있고...,
영상 자료인 CD도 가져오셨고...”
“......”
“이 CD들은 나중에 입구
지정된 곳에 넣으시고요.”
“......”
“그럼 진료예약을 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혹시 원하시는 선생님이 있으신지요?”
“예. xxx 교수님을 원합니다.”

접수하시던 분이 놀라움과 의아함이
교차된 표정으로 되물었다.
“xxx 교수님이요?”
“예!”
“잠깐만요... 그 교수님은
좀 기다리셔야 하는데...”
“기다리겠습니다. 여러 가지로 친절하게
안내해주셔서 고맙습니다만...”
“아닙니다. 힘드실 텐데…
아 그 교수님은 다음 달에는 가능하십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메이저급 병원에서,
그것도 소위 빅 5에서 진료받기가 이렇다.
하늘의 별따기다. 급한 사람들은...
의사 얼굴도 못 보고 죽을 판이다.


“예약이 꽉 찼나 보군요. 그런데 선생님,
제가 여기로 오기까지 참 힘들었습니다.
폐로 전이된 암들은 걷잡을 수없이 커지고
개수도 20여 개가 넘는다고 하고,
제가 애들도 어리고,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교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더 바랄 것도 없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는 현재의 제 상태를 압니다.
이 병이 낫는다든가, 5 년이고 뭐고
더 살 보장이 없다는 것도 압니다.
그저 제가 하루라도 더 어린아이들과
보낼 수 있도록
이 교수님께서 가이딩 해 주실 수
있으리란 생각에 찾아왔습니다."
“그러시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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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절실하고 솔직한 저간의 사정에 대한 설명과 그분의 공감은 뭔가를, 소중한 인연을 암시하는 듯했다.
“이 교수님은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여기저기 병원에, 기사에, 전문자료에,
블로그에... 검색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셨군요.”
“제가 판단하기에 이 교수님께서는
훌륭한 논문들도 많이 쓰시고,
환자와의 피드백을 중시하실 거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

그 설명간호사 선생님은 조금은 딱딱한 인상이었지만, 한편으론 아빠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분의 책상 앞엔 비뇨기과 교수님들의 스케줄이 빼곡하게 적힌 책상 달력이 2개나 놓여있었다. 컴퓨터 모니터도 2대가 있었고,  환자용 의자 1 개와 보호자용 의자 1 개가 있는 사무실이었다.

그분이 앉은 왼쪽엔 창이 있고, 그 창으로  그날따라 유난히 파란 하늘이 보였고, 저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 등이 보였다. 또 창가 좌우로 간혹 간혹 보였다 사라지는 막 피어오르는 새싹들이 미풍과 대화라도 하는 듯 끄덕이고 있었다.


그걸 보며 잠깐 동안 내 처지에 대해 생각했다. 피어나는 둘의 얼굴이 내 왼쪽과 오른쪽 뺨에 겹쳐 보였다.
"아 봄이 오나 보구나."

그분의 탁상 달력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찬찬히 그날의 날짜를 더듬었다. 벌써 3월 말이란 걸 알게 되었고, 그 날짜 밑에 그 교수님의 이름이 보였다. 오전 수술, 오후 세미나 참석, …
'바쁘시구나!'.
나의 단상은 거기에서 멈췄다.

“아 어쩐다?”
“선생님, 그 교수님을 하루라도 빨리 뵐 수만 있게 해 주신다면 제가 너무 행복하겠습니다만…”
“환자분은… 부탁이… 좀… 과하시군요.”
“제가 안고 있는 이 암덩어리들의 무게도 제게 너무 과해서 그럽니다.”

그 선생님의 양쪽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스쳐지며 지나갔다. 눈에도 호기심 넘치는 화사함이 피었다 졌고.

“이해가 갑니다. 제가 기록을 살펴보니...
심각하시군요.
2기도 3기도 아닌 4기 시군요.
거기에 상당한 볼륨의
암덩어리를 절제하셨고,
말씀하신 대로 양쪽 폐에
무시하지 못할 볼륨의 암 결절들이
보이고 있고요.”
“......”
“제가 알아보는 동안 기다리실 수 있으세요?
조금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럼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쯤에서 나의 시선은 다시 창밖으로 향했다. 밝고도 맑은 파아란 구름이 끝도 없이 퍼져나가고 있었고, 하염없이 주유하는듯한 뭉게구름들이 서두를 것도 없이 노닐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많아 보였던 짙고 두꺼운 뭉게구름은 불현듯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피어오르는 향기처럼 스르르 나타난 듯 어느새 새털 같은 가벼운 구름들이 너울대며 내 쪽으로 흘러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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