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인연을 맺게 될 교수님은 평균 대비 훨씬 크셨다.
진료실 뒷문으로 들어오시는 걸 본 순간,
"아, 장신이시다!"란 생각이 들었다.
내 친구 중 캐나다 출신이 있는데, 전직 농구선수다.
대략 2m 10cm.
또 다른 친구, 뉴질랜드 출신, 2m 7cm!
그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교수님?”
“제가 자료들을 미리 봤습니다.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고맙습니다, 교수님.”
그 교수님은 먼저 위로의 말을 먼저 건넸다.
그리고서는 내가 바로 전 병원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말씀도 하셨다.
“일단 큰 것들 몇 개가 모여 있는... 어디... 어디...
예... 이 오른쪽 3 엽은 수술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수술요? 그런데 교수님, 양쪽 폐에 여기저기
많은 암 덩어리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쪽만 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예,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전이암의 경우에는
그 원격지에 있는 메인 암 덩어리를 제거하면
그와 연관된 것들이 힘을 못 쓰게 되는
예도 있다고 하고요.”
“…….”
“또 그 오른쪽 폐 3 엽에 있는 3개가
지름이나 볼륨이 그냥 놔두기엔 너무 큽니다.
제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거가 가능하다는 말씀,
그 말씀은 직전 병원의 비뇨기과 교수님한테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말이었다.
또한 직전 병원의 다른 교수님,
그 흉부외과 교수님과
같은 단어들로 만들어진 문장이었으나,
내용은 달랐다.
“교수님, 어떤 식으로 제거하나요?”
“제가 하는 게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수술하시는 선생님께 그 3개를 똑 떼 달라고
코멘트를 남기겠습니다.”
사실 나는 ‘똑 떼어낸다.’라는 의미가 뭔지는
그즈음 해서 알 수 있을 정도는 되었었다.
암 진단 후 2년이 지났고,
분하고 억울함에 몸부림을 치던
세월이기도 했지만,
나름 암에 관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었으니,
암 덩어리란 게 무슨 구슬이나 알밤처럼
간단하게 분리되는 게
아니란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설명의 편의상, 또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환자에게 어느 정도 안심을 시키려는 배려에서
일수도 있겠고,
또 의사나 의료계 종사자가 아닌 환자에게
암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엔
시간 등 여러모로 제약이 있었으리라 짐작해봤다.
사실 하나의 세포가 있다면,
그것에 영양을 공급하는 수없이 많은
혈관이 있으리란 건 틀림없겠고,
암 덩어리란 게, 만약 1cm 크기라 하면,
대략 10억 개의 암세포가 뭉쳐있다고 하니,
그것들에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선
또 얼마나 많은 혈관이 필요하겠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
그 숫자와 길이를 막연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한 집단의 암덩어리와 그것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들은
한 세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암 덩어리로 보이는 것들과
그 주변을 광범위하게 잘라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결론도 나올 수 있을 테고...
어쨌든 그런 나의, 의대는커녕
그 문 앞에도 가보지 않았던,
의학적 사고나 지식은 의사라는 전문가들의
지식과 경험과는 애초에 게임이 되는 게 아니라서,
그저 이러저러한 상식 수준 또는
그보다도 못할 수 있는 수준일 테니,
어찌 암에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하는
말을 할 수 있겠을까만은...
“교수님, 폐 속에 있는 그 자잘한 모든 암 덩어리들 다
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저 일부분밖에 떼어낼 수 있을 뿐인 수술을
제게 권하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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