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날 이른 아침, 밖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채 새로운 빛이 밀려오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새순이 돋아오는 나무들이며, 봉우리를 막 터트릴 것 같은 꽃들이, 내 안 가득히 스며들 것 같은 봄날이었다. 성질 급한 목련은 이미 그 꽃들을 거의 다
떨어뜨리고 있었고.
오늘 수술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상상해봤다. 비뇨기과 교수님은 수술이 결정된 어느 날 내게 말했었다.
“큰 암 덩어리들만 똑 떼어달라고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어젯밤 뵈었던 수술 집도의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폐란 거 막 그렇게 헤집고, 떼어내고 그러는 게 아닌데!”
그런 말들을 떠올리며,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뭘까 생각해봤다. 없었다! 그냥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것 이외의 어느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 것 외엔.
내 몸뚱이는 수술실로 인도될 것이고, 눕혀질 것이고, 저 깊은 어딘가로 안내될 강력한 마취제를 맞게 될 것이고, 의식하는 행위가 멈춰질 것이고, 내 입 위에 인공호흡기가 부착된 상태일 것이고, 자가 호흡은 중단될 것이고, 옷은 벗겨진 채일 것이며,
내 몸 위엔 하얀 천이 덮일 것이고…. 그리곤 수 없는 수술기구들이 내 몸 위로, 안으로, 옆으로 왔다 갔다 할 것이고, 마스크와 수술 가운 속의 의료진들이 이 작은 몸을 내려보고 있을 것이고…. 계획대로 무사히 진행된다면, 한 네댓 시간이 지난 후,
더 이상의 마취제도 필요 없이 회복실로 옮겨질 것이다.
계획대로 안 된다면? 더 많은 마취제가 필요해질 것이고, 가슴이 더 크게 열릴 수도 있을 것이고, 떼어내는 게 아니라 잘라내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고…. 7~8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고…. 어쨌든, 끝나면 회복실로 옮겨질 것이며...... 혹시 깨어나지 못할 수도? 무슨 이런 재수없는 상상을 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 것들이 다 내 의지대로 되는 것들일까? 안 되는 것이라면, 그런 생각을 지금 할 필요가 있을까? 이건 완전... 혹시 자기 학대 아닐까? 이런 걸 혹시 방정맞다!라고 하는 게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며, 내 얼굴엔 일그러진 표정을, 머릿속엔 검붉은 주름을 줄 무렵, 병실 문이 열렸다.
시계를 봤다. 아직 6시가 다 되지도 않은 듯했다. 밖은 아직도 어둠에서 깨어나질 않은 듯했다. 혹시, 간호사 선생님? 아니었다!
“환자분 준비 되셨나요?”
“예?”
“수술실로 가시지요!”
“…….”
휠체어에 올라탔다. 두 바퀴 위에 얹힌 나의 몸은 이리저리 휙휙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더니, 어느 엘리베이터에 태워져 아래로 향했다.
그리곤 또 좌로, 우로 방향을 틀며 어는 홀 앞에 멈춰 섰다. 그냥 쏜살같이 붕붕 떠 날아온 듯했다. 네비게이션 없이도 낯선 곳 목적지를 찾을 정도로, 방향감각이 뛰어나다며 자신을 칭찬했던 나 아닌가? 도대체 몇 층으로 내려온 건가?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번에도 역시 수술을 코 앞에 둔 그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 일까?
첫 수술에서는 침상 위에 눕혀졌었다. 하얀 병원 시트가 내 몸 위에 놓인 채 수술실로 향했었다. 그 바퀴 달린 침상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바닥을 훑는 ‘덜커덩~덜커덩~덜컹덜컹-~덜커덩 ~’ 소리는 내 두려움과 긴장감이 내는 소리인듯했고, 나의 웅크려 있던 몸이 네 바퀴에 휘감겨 어디론가 사라지는 듯한 환상을 보았었다.
“환자분, 여기서 잠깐 기다리세요!”
휠체어 위의 날 이곳까지 데리고 온 분은 날 잠시 세워놨다. 그리곤 누군가에게 말했다.
“다른 분들은 여기에 계셔야 합니다. 안으로는 못 들어가십니다.”
“예.”
"‘이런, 누군가 따라오고 있었잖아?"
라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이건 삶의 아이러니다. 왜 또다른 존재가 병실부터 여기까지 계속해서 내 옆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걸 몰랐을까!
"아, 정신을 차리자. 몽롱해지면 안 된다."
라고 계속 되뇌었다.
“수술 잘 받길... 다 잘 될 거야~”
“어…….”
그 남자분은 목에 걸린 카드를 문에 댔다. 문이 열렸다. 아주 큰, 썰렁한 공기로 가득 찬 큰 홀이 보였다. 안쪽으로 날 밀어 넣은 채 그분은 저쪽 더 안쪽으로 향했다. 그리곤 누군가와 얘기를 나눈 후, 다시 내게로 왔다.
“수술 잘 받으세요~”
“예,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난 주위를 둘러봤다. 나 말고도 몇 명의 환자들이 이미 와 있었다. 모두 다 하나같이 같은 크기, 같은 색의 휠체어 위에 앉아있었다. 같은 옷을 입은 채로...암 유니폼......
홀 안쪽으로 문이 나 있었다. 그 문을 나서면 복도인듯했다. 아주 바쁘게,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의료진이 오갔다.
"이게 도대체 몇 시냐?"
라는 생각에 시계를 봤다. 6시, 그리고 그것의 반이 지난 듯했다. 이렇게 이른 시간, 이렇게 많은 의료진이 깨어있다니! 이들은 도대체 어떤 유의 인간들일까? 잠 안 자는 수술실 유령들? 그들이 오가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내가 있었던 공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거대한 공간들이 반대편에 있었다.
"저곳이 아마 수술실……?"
상념들이 오가는 동안, 누군가가 이미 내 곁에 와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xxx라고 합니다. 환자분께서 수술하시는 동안 제가 곁에 있을 겁니다. 성함은?”
내 이름과 그 밖의 몇 가지에 대한 질문이 오갔다. 그리고 어떤 서류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내게 궁금한 것들이 있으면 물어보란 말이 이어졌다. 그렇게 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절차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난 내 몸이 빨리 수술실로 옮겨지길 원했다. 하지만 그건 내 바람일 뿐이었다. 그 홀이 또 다른 휠체어들로 가득 차기 전까지,
내 존재는 처음 이 홀에 놓였던 그 자리, 그 휠체어 위에 그대로인 채였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하나씩 하나씩 또 다른 휠체어들이 내가 있는 안쪽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하나같이 가족 한두 명씩이 동행하고 있었다. 휠체어 위의 아버지와 두 발로 서 있는 딸, 딸과 부모, 아들과 엄마, 엄마와 딸, 딸과 엄마, 등등의 조합으로.
누구는 휠체어 위에, 누구는 두 발을 딛고 서서. 휠체어 위의 사람이 울고 따라온 사람도 울고, 울고 웃고, 위로하고 울고, 서로 웃으며 포옹하고, 서로 포옹하며 울고, 웃으며 포옹하고, 울며 포옹하고…….
7시가 넘으면서 그 홀은 휠체어들로 꽉 찼다. 그와 동시에 각각의 휠체어 뒤로 의료진 한 명씩 한 명씩 서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그와 맞물려 몇몇 환자들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봤다. 밝은 눈을 한 이들은 없는 듯했다.
아니라면 그건 아마 내 눈이 흐려져서였을지도 모른다. 내 손등이 내 눈물을 다 닦기도 전에 그 앞 쪽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컨베이어 위의 무슨 제품들처럼 하나둘씩 일정한 간격으로 -거리와 시간이- 안쪽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젠 내 앞엔 아무도 없었다. 내 차례가 된 것이었다.
내 휠체어가 움직였다. 직진했다. 그러다 오른쪽으로 튼 후, 어느 문 앞에 섰다.
“어서 오세요!”
그 말 이외엔, 그때 오갔던 그 어느 말도 지금은 기억해 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