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전을 받았다. 약국으로 가는 길은 멀게 느껴졌다. 연이어 늘어선 약국 중에서 맨 앞에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더 걷기가 싫었다. 표적치료 항암제 약값도 어마무시했다. 그리고 표적항암제 때문에 본격적인 부작용의 시작되는 게 아닌지, 응급실과 허혈성 뇌졸중이 연결된 건 아닌지 등 단상이 들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때론, 느낌과 현실이 다른 것들이 종종 있다. 그것들 가운데 약국도 한 자리 차지할 만하다. 그날 그 약국을 향해서 갈 때 분명 지나는 사람 중에서 어쩌다 한두 명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막상 들어왔을 땐 언제 어디로 들어왔는지 모를 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건, 분명한 착시!
난 그들을 보며,
“이런! 이 사람들이 다 언제 어디서 온 걸까…?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은가?”
라고 혼잣말을 했다. 한편으론,
“아니지.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어딨을까!
라고 중얼거리며, 약국 계산대 옆 벽에 걸린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봤다.
영락없는 외계인 모양이었다.
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쳐다보는 시간이 흐를수록
거울 속의 얼굴은 낯설고 아련해져만 갔다.
그 얼굴은 이제는 이 세상이 아닌
딴 곳에 있어야 할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런 내 의식의 흐름은 외마디에 전복됐다.
“xxx 씨!”
“예!”
“계산하세요.”
“얼마…?”
“십 이만 원요?”
“한 달에요?”
“예.”
“왜 이리 비싸요?”
“손님, 비싸게 느껴지세요?”
“그럼요. 안 비싸요?”
“이게 무슨 소화제나 감기약이라고 생각하세요?”
“무슨 말을 그렇게…?”
그분의 말은 참 그랬다.일종의 직업병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은 상대가 분명한 경우, 분명... 기승전결... 뭐, 그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먼저 상대방이 어떤 경우인지를 아는 노력을 하는 것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걸 떠나서 자신을 배려하는 일이 아니까 한다. 만약 고약한 상대방을 만나면... 그런 경우 심각한 반격이 예상되기도 한다.
“이게요, 환자분은 중증환자로 등록된 경우라서….”
“중증환자!”
“그래서 5%만 부담하시게 되어있어서,”
“그래서?”
“이게 5% 룰에서 제외되면,”
“되면?”
“4주 복용에, 대략…. 240만 원쯤 됩니다.”
“한 달에 2-4-0-만원요?”
그 계산원은 ‘목청 터져라!’고 강조하는 듯했다. 그가 실제로, 설령, 보통의 목소리로 말했다 하더라도 내겐 천둥소리 같았다. 그 약국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다 내게로 오는 듯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내 대꾸는 서서히 작아져만 갔다. 빨리 약봉지 속에라도 내 얼굴을 처박고 싶었다.
그런 경험을 했음에도 난 그 약국을 번번이 이용하고 있으니...
첨 먹어보는 항암제에 흠뻑 취하기를 얼마, 날 좋은 4월 어느 날, 그 강렬한 향기에 주변 그 어느 꽃내음도 묻혀버리게 만드는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핀 날, 나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지나는 길에 응급실을 스쳤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응급실은 마치 전쟁터와 같은 분위기다. 119에 실려 들어가는 환자나,
그 환자를 맞이하는 의료진 그 누구도 시급을 다툰다.
난 응급실 신세를 몇 번 졌다. 여기 이 병원만 하더라도... 폐 수술 후 뭔가 잘못돼 한 번 졌고, 그 해 1월에는 더 심각한 일로 응급실 문을 두드렸었다.
허혈성 뇌출혈! 사람 잡을 병이었다. 그로서 원투 펀치에 이어 어퍼 컷을 한 방 맞는 듯한 기분이었다. 뇌출혈! 말로만 듣던 뇌출혈! 그게 내게로 왔었다.
자, 그쯤 되면... 4 기암! 진행성 전이암! 폐 전이암! 무언가 안 좋은 것들이 무대 뒤 장막에 대기하고 있는 듯,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몇 년 사이에 그런 절망의 폭우가 한 사람에게...!
내가 경험했던 응급실은... 때론 절망에 울부짖는 가족들도 많았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넘지 못할 강을 건넌 이를 목놓아 부르는 소리였으리라.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그 모퉁이를 돌아갈라치면 나의 남은 생에 대해서 생각해보곤 한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그는 그 큰 키로 해서 언제나 고개를 숙이며
이쪽 방으로 넘어오곤 한다.
“좀 어떠셨어요?”
“예, 설사가 심합니다.”
“예~”
“또 혈압도 좀 오르고요.”
“예. 그러시군요. 그런데…. 머리가 많이 하얘졌네요.”
“그렇지요, 교수님?”
“다른 분들은 간 독성이 심하신데…. 간 수치는 괜찮으시고, 설사와 모발 변식이 문제가 되고 있군요.”
머리털 변색이야 스타일링이라고 치부해도 될 일이었지만...
설사는 내게 그렇지 않았다.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교수님, 그런데 설사가 그냥 넘어가기에는 그 정도가 심합니다.”
“하루에 몇 번씩이나 하시나요?”
“예. 심할 땐 6번가량 됩니다.”
“제가 같이 처방해드렸던 지사제를 드시고 계시지요?”
“예.”
“지금이 4번째 사이클이고... 또... 최대치인 800밀리를 계속 드시고 계시기 때문에…. 몸에 부담이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요.”
“…….”
“하지만 혈액검사와 소변검사에서 보여주는 수치가 괜찮으니까…. 한 달 정도 더 지금처럼 계속 800밀리로…. 한 번 더 가보시지요?”
“예. 그럼 한 달을 더 지금 상태로 가는 거군요?”
속으로는 그 교수님께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나는 매일 체중을 기록하고 있었다. 설사만 심한 게 아니라 체중도 많이 빠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타났던 급작스러운 체중의 감소는,
"표적항암제를 계속 먹는 게 과연 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걸까?"
라는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의 주치의의 의견은 나와 달랐다.
“이 정도면 참을 만하신 겁니다. 아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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