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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14년 표적항암제 시작

암삶 48-시한부 48개월_청천벽력_표적치료 항암제 긍정(2014)

by 힐링미소 웃자 2021.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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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 선생님은 턱을 괸 팔의 팔꿈치를

다른 팔의 손바닥으로 받쳤다.

이어서 턱에서 손을 뗐다.

대신 엄지와 검지를 n자로 만들어

그의 양 볼에 댔다.

그리고는 검지가 그의 왼쪽 볼을

쉴 새 없이 쓸어내리기를 반복했다.

마치 그의 검지가 자동차의 와이퍼인 양.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나고 있었지만

난 그의 그런 모든 동작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의사로서 이런 때가 제일 난감합니다.”

“…….”

“가장 힘든 순간이지요. 또 대답하기에 가장 어려운 질문이고요.”

“예…. 에”

“이 상태라면, 또 이 상태로 계속 가신다면,”

“간다면... 요?”

“48개월 정도로 봅니다.”

“48-개-월요?”

“예.”

전문가의 입에서,

이쪽 분야에서 잔뼈가 굵고,

실력을 인정받는 분의 입에서

잔여 기대수명이 ‘48개월’이란 말이 나왔다.

내 머리 위로,

내 양어깨 위로,

나의 온몸 위로

무수한 바늘 폭풍우가 쏟아지는 듯했다.

그 하나하나의 날카로운 바늘 끝이

나의 피부 깊숙이 박히는 듯했다.

 

머리는 하얘졌고,

몸은 굳었다.

나의 두 눈은 그의 어깨를 넘어

창밖의 먼 산을 향했다.

창문에 비치는 나의 두 눈에선

동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자, 맥시멈 48개월이란다, 48개월!"

 

난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선명했던 먼 산이,

그 위 하늘에 떠다니던 흰 구름이,

손에 잡힐 듯했던

앞 산의 떡갈나무 마른 잎들이

홀연히 흐려졌다.

 

장맛비 세찬 창가에 기댄 채

흐르는 빗물에 뭉개지는

창밖 풍경을 보듯,

나의 두 눈은 흐릿해졌다.

 

그날 진료실 밖은

맑은 날씨였지만

내 두 눈앞으로는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교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최대 48개월, 그러니까 앞으로 3년밖에 더 살 수가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교수님께서 보시기에?”

그는 침묵했다.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있는,

그래서 다시는 보지 말아야 할 얼굴인 양,

아니면 시린 생채기를 서로에게 줬던,

그래서 다시는 마주치지 말았어야 할

둘의 시선인 양,

나와 나의 주치의의 시선이 서로 엇갈렸다.

 

아니,

사실은 서로의 눈길을 피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은 그렇게 서로에게

너무도 곤혹스러운 순간이었을 테니까!

비록 실제로는 아주 짧은 시간이었으나,

그러나 내겐

영원과도 같았던 순간이었다.

그분에게는?

그의 굳은 표정과

당혹스러워하는 눈길만으로도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의사로서,

"환자분의 최대 잔존 기대수명은 ~개월입니다"

란 말을 하기가 어떻게 쉬운 일이겠는가!

교수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현재 상태가 진행될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

“의학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

“또 젊으시고, 또…. 폐에 있던 큰 것들은 떼어냈고, 옵션이 남아있고,”

“옵션요?”

“예. 표적 치료제, 표적항암제요!”

“그 옵션요?”

“예. 용기를 내셔서 한번 해봅시다.”

나는 그 교수님의 말을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비록 메모지에 쓰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에 아지랑이와 회오리가 뒤엉켜

혼란스럽고 어지러웠지만,

어떻게든 정리를 해서는,

무엇이 됐든 결론을 내야 했다.

 

그의 진료실을 나가기 전까지는.

그 교수님은 말씀은 이랬다.

첫째, 당신에게 폐에 있던 큰 것들을 수술하자고 했다.

둘째, 그런 후에 약을 써보자고 했다.

셋째, 그런데도 당신은 항암제의 부작용을 걱정해서 미루고 있다.

넷째, 그러는 사이 그 폐로 전이된 암 덩어리들의 숫자가 걷잡을 수없이 다시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이즈도 커지고 있다

다섯째, 이런 속도로 암 덩어리들이 늘어나고 커진다면, 아무리 긍정적으로 본다 해도 최대 48개월, 3년밖에 더 살 수 없으리라 예상된다.

여섯째, 그러니 빨리 약을 쓰자.

일곱째, 내성도 생길 것이고, 부작용도 심하다는 걸 안다.

여덟째, 하지만 다른 약들도 개발되고 있고, 또 의학의 발달이 빠르므로 또 다른 방법이 있을지 모르니 희망을 품어보자.

결론, 어쨌든 약을 시도해 보자.

나의 결론도 그랬다.

“교수님, 표적항암제를 시작하겠습니다.”

“결정 잘하셨습니다.”

“그럼?”

“2달 후, 내년 초에 뵙시다. 진료받으시기 1주일 전에 흉부 CT, 복부 CT, 혈액검사, 심전도 검사를 받으시고요.”

“예, 교수님. 내년에 뵐 때까지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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