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암/2014년 표적항암제 시작

암삶 49-표적치료(항암)제를 처방받다(2014)

by 힐링미소 웃자 2021. 9. 26.
반응형

해를 넘긴 어느 날, 난 흉부 CT와 복부 CT를 찍었다. 그리고 혈액검사용 피를 뽑았고, 검사용 소변을 제출했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나서 그 결과를 보고, 주치의한테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갔다.

비뇨기과가 있는 층에 내리면서 그 전문간호사가 생각이 났다. 본래는 그때 그를 볼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나의 발길은 그의 상담실로 향했다. 그의 상담실 문은 열려있었다. 난 그 열린 문을 노크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나도 그날의 순서를 알긴 했다. 원칙 같은 게 있었다. 우선 표적치료제를 일정 기간 복용한다. 그 후 각종 검사-흉부 CT, 복부 CT, 혈액검사, 소변검사, 심전도 검사 등-를 한다. 그 결과를 보면서 표적항암제의 부작용을 면밀하게 점검한다. 그와 동시에 (나 같은) 환자가 느끼는 불편한 점이나 특이사항을 전문간호사에게 알린다. 그러면 그런 것들을 종합한 후 내 차트에 기록한다. 그리고서 나는 나의 주치의를 만난다. 그 주치의는 내가 약을 계속 복용할 건가, 아니면 중단할 건가에 대한 의견을 말한다. 그러면서 환자인 나의 의견도 듣는다. 마지막으로 나와 주치의가 합의점을 찾는다.

그러니 항암제를 한 알도 복용한 적 없는 내가 그 전문간호사를 볼 일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복용할 표적항암제에 대해서 궁금했고, 또 복용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이 궁금했다.

“안녕하세요? 사실은 오늘은 저를 보실 필요가 없으신데….”
“예. 압니다. 하지만 궁금하고... 두렵고...”
“첨엔 다들 그렇지요. 저라도 그럴 겁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하하~”
“xxx 씨는 참 잘 웃으시는군요.”
“하하~”
“전에 어느 정도 말씀을 드린 걸로 기억하는데... 뭐가 또 궁금하세요?”
“처음엔 약을 얼마만큼 먹나요? “
“글쎄요~”

라고 말하며 그는 웃었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는,

“그건 교수님이 말씀하실 사항이지….”

라며 대답을 머뭇거렸다.

나는,

“예, 알았어요.”

라고 말하는 것과 동시에,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는 나의 그런 움직임들을

찬찬히 보는 듯했다.

내가 문을 향해 나설 때 그는 한마디를 더했다,

“제 몸속 어딘가에도 암이 자라고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또 지금이 아니라 해도 앞으로 언제인가 생기지 말란 법이 있겠어요…?”

나는 잠시 그를 돌아봤다.

그가 겸연쩍게 웃고 있었다.

난 속으로,

"무뚝뚝해 보여도 잔정이 있는 분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입으론,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를 위로하시는군요. 하하~”

라고 말하며 그의 방문을 닫았다.

전문간호사의 방을 나온 후 나는 빙 돌아서 나의 주치의가 계시는 진료실 앞, 길게 늘어선 의자들 중에서, 한 의자에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5 각형을 이룬, 회랑과도 같은 복도를 기준으로 왼쪽엔 진료실들이, 오른쪽으론 텅 빈 공간이 있었다.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계속 걸으면, 멈추지 않고, 5분이면 다시 그 엘리베이터 앞으로 돌아올 수 있는 독특한 모양을 가진, 그런 건물 구조였다. 나는 "이거 꼭 도넛 모양이네. 그런데 누군가 엘리베이터 쪽 셔터를 내려버리면,... 난 갇혀버리겠네’’라고, 좀 재수 없을, 혼잣말을 했다.


진료실 앞 의자에 꽤 앉아있었다.

아마 30분?

하지만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나는 진료실 문을 흘끔흘끔 쳐다봤다.

진료실 문 옆 게시판엔

‘진료 30분 지연 중’이라고 쓰여있었다.

나는,

"다행이다. 내가 이 교수님을 선택했던 건 참 잘했어."

라고 자위했다.

내가 2년여 기간 동안 진료받았던

직전 병원의 교수님 같은 경우엔,

이렇게 진료가 지체되는 경우는

거의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다.

'완전 3분’ 진료였다.

 

뭐 좀 물어볼라치면,

“뭐, 그거 걱정할 거 아녀요. 내가 다 알아서 할 거니까, 다음에 봅시다! 자, 밖으로 나가면 안내를 해 줄 거니까!”

라고 하며, 거의 반강제적으로 그 진료실에서 퇴거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분, 참 나를 비천하고, 비참하고, 초라하고, 무기력하게 만드시는구나. 환자 없는 의사도 있단 말인가!”

라는 혼잣말을 안 했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대우를 받는 환자는 나뿐이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의 환자들이 그런 대우를 받는 듯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만약 어느 환자가 의료진의 그런 태도에 의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부심, 자존감을 잃게 된다면... 어떻게 병과 싸워 이기겠다는 동기부여가 가능할 것이며, 완화 내지는 치료가 가능하겠는가? 특히나 암 환자의 경우엔 이미 어느 정도까지는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상태일 텐데도...... 의사로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xxx 님!”하고, 담당 간호사분이 내 이름을 불렀다.
거의 40분을 기다린 끝에 내 이름을 들을 수가 있었다.
“예!”
“이쪽 진료실에서 좀 기다려 주세요.”

난 텅 빈 방, 빈 의자에 엉덩이를 눕혔다.
옆방에서 그 교수님, 환자인 듯한 사람, 그리고 그의 가족들일 듯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교수님은 2개의 진료실을 쓰고 있었다. 시계 추처럼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이곳으로 왔다 갔다 하며 진료를 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괜찮은 방법 같았다. 그의 처지에서는 한 명의 환자를 끝낸 후 잠시라도 일어서고, 걷고 하는 게 건강에도 좋을 듯했고, 그가 그렇게 잠깐이나마 기분 전환을 하므로 해서, 다음 환자에 좀 더 많은 정성을 기울여 진료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환자의 처지에서도 하염없이 진료실 밖의 의자에 앉아있는 것보다는 진료실에 들어와 기다리는 게 더 편하기도 할뿐더러, 긴장된 마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 병원의 모든 의사가 이분처럼 두 개의 진료실을 쓰진 않았다. 오히려 아주 협소한 공간에서 진료를 보는 의사분들도 많이 봤다.

"부교수님이라서일까? 아니면, 환자들이 많아서 특별 대우를 받고 있는 걸까?"

라며, 난 혼잣말을 했다.

“아,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교수님?”

그는 어김없이 부드러운 미소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맞았다.

그는 자리에 앉으며,

“어떻게 보내셨어요?”

라고 물었다.

나는 그의 안경 너머로 전해져 오는

호기심과 연민을 순간 포착했다.

"어디... 심하게 아파본 적이 있으셨나 보네..."

라고 나는 자문했다.

 

"저 눈빛은 심하게 아파보지 않은 이에게서는 나오지 못할 무엇인데…."

라는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말이 시작됐다.

“800밀리부터 시작합시다. 400을 두 개 드시는 겁니다.”
“…….”
“그리고 4주 후에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를 하고요.”
“예. 그런데, 왜 4주이지요?”
“그걸 한 사이클이라고 합니다.”
“예.”
“이 약은 특히 간 독성이 상당합니다.”
“…….”
“그러니, 4주를 한 사이클로 해서 몸의 변화를 점검해봐야 합니다.”
“그렇군요, 교수님.”

난 그의 진료실을 간신히 나왔다.

내 몸무게만 한 쇳덩이가 내

두 발목에 매달려있는 듯해서였다.

"자,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참으로… 고단함의 연속 인지도 모르겠구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