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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14년 표적항암제 시작

암삶 55-암 덩어리들의 급속 축소와 최소량 400mg 처방_암 표적치료 효과_2014년

by 힐링미소 웃자 2021.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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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교수님?”

“아! 어서 오세요.”

“교수님, 그간 건강하셨지요?”

“아, 예.”

나의 주치의는 잠시 멈칫하는 듯했다. ‘누가 누구의 건강을 걱정하는 거야?’라는 듯. 하지만 난 오랜 기간 병원에 오고 가면서, 이들이 얼마나 높은 강도의 업무환경에 노출된 채로 근무 중인가! 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해오고 있던 터였다. 새벽부터 미팅에, 수술에, 진료에, 강의에, 입원환자 회진에….

“자,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약이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

“…….”

“3개월 전과 비교하면 암의 크기가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

“아주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고맙습니다, 교수님. 그럼 어느 정도나 줄어들고 있을까요?”

“크기, 볼륨 등….”이라고 말하며 그의 눈은 컴퓨터 모니터로 향했다.

그의 책상에는 2대의 모니터가 올려져 있었다. 특이하게도 여전히 오래된 운영체계가 깔린 컴퓨터인듯했다. 다빈치 수술이니, 화학항암제니, 표적항암제니, 면역항암제니 하는 첨단의학의 일선에 서 있으면서도 책상 위 컴퓨터는 고풍스러운 수준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저도 좀 놀라고 있습니다만, 거의 3분의 1 크기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후유, 고맙습니다.”

“우리가 800밀리로 하다가, 부작용과 체중감소로 해서 약을 600밀리로 줄였었지요?”

“예, 교수님”

“이번 달부터로 400밀리로 줄여도 될 것 같네요.”

“휴~우”

 

소리의 경연을 펼쳤던 매미들이 자지러질 듯 마지막 팡파르를 내 지르며 여름 무대에서 퇴장하던 시간, 난 기쁜 마음으로, 고마운 마음으로, 그렇게 400밀리로 감량한 표적항암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내 몸은 약이 감량됐다는 기별을 즉각적으로 보냈다. 설사가 돌연 멈췄다. 아마도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내 몸이 깜박 속았었음이 틀림없는 듯했다. 하지만 내 몸이 바보가 아닌 이상, ‘약이 멈춘 게 아니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설사가 멈췄던 건 며칠 동안이었을 뿐, 또다시 시작되었다.

다행히도 예전과 비교하면 강도는 훨씬 약해졌다. 설사가 잦아들었고, 간격도 멀어졌다. 덕분에 운전 중, 운동 중, 도보 중 화장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한 후, 거기에 맞춰서 거리나 시간을 조절해야 하는 팽팽한 긴장과는 작별을 고해도 됐다. 한결 여유로운 인생이 되돌아온 것이었다.

나의 주치의께서는,

“자, 세 사이클만 약을 더 해보고, CT를 찍어서 확인해봅시다”

라고 말했었다. 여전했던 설사와 속 쓰림, 밀가루를 뒤집어쓴 듯한 새하얀 머리와 온몸의 털들, 분을 바른듯한 창백한 얼굴과 피부, 거의 10킬로가 빠진 몸…. 이것들이 한 세트가 된 채로 추석을 보내고, 단풍을 맞이하고, 오동잎이 떨어지는 걸 보게 됐다.

시간은 지나야 만 빠르다는 걸 느낄 수 있음이 분명하다. 그건 내가 탄 시간이란 열차에 내 몸과 마음이 찰싹 붙어 있어서였음에 틀림없다. 내가 거기서 내리고, 열차가 나를 두고 저 멀리 산모퉁이를 돌아 나갈 때쯤 되어서야, 날은 저물어 가고 플랫폼엔 나 홀로 서 있음을 안다.

"내가 떠난 후…. 나와 함께 했던 가족, 친구들은 산모퉁이를 휘돌아 멀어지는 내가 탄 상여를 얼마나 오랫동안 보고 있으려나?"

설사가 끝날 때마다 화장실 속의 거울 속에 사는, 수염 더부룩해지는 채로 낯설어져만 가는 얼굴을 보며, 그렇게 되뇌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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