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암/2011년 암 진단, 4기, 전원, 첫 번째 수술, 좌절

암삶 1-진단 전/하인리히 법칙1(2011)

by 힐링미소 웃자 2021. 5. 31.
반응형

미국을 향해 출발한 비행기에 몸을 실은 나는 그리운 얼굴을 떠올렸다. 고개를 들어 두 눈을 창밖 너머 파아란 하늘로 돌렸다. 12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는 나를 10번도 넘게 찾아왔었다. 그에 대한 첫 번째 답례는 사실 2010년에 있었다. 그때 그는 필라델피아 서쪽 교외 펜실베이니아 어느 전원도시에 살고 있었다. 반갑게 나를 맞았던 그는(그는 나보다 나이가 대략 20 여살 더 많다)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니고 싶어 했었다. 워싱턴 DC,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뉴욕......

여행을 좋아하고 방랑 기질이 넘치는 나였었기에 새로운 풍토, 새로운 풍경, 낯선 사람, 익숙하지 않은 도시와 시골의 스타일을 맘껏 즐길 수 있으려니 했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날이 갈수록 몸이 깔아져 가는 걸 느꼈었다. 재촉하며 여기저기 즐기려는 마음보다는 재촉하며 귀가를 독촉하곤 했었다.

뉴욕에서 하룻밤을 지새운 어느 날 아침, 프랭크는 나를 위해 차이나타운이며 코리아타운을 향해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었다. 프랭크가 나를 향해 오른손을 뻗어 타임스퀘어를 가리키며 둘러보길 독촉했지만 나의 입에서는 뜻밖에 , “이제 그만 돌아가자!”라는 말이 나왔었다. 프랭크는 이해 못할 표정을 지으며 나를 차에 태웠었다.

 

 

반응형


그의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피곤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넓디넓은 야트막한 산, 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산과 이어진 그의 집 뒤뜰에는 그날 늦은 오후, 바비큐 파티 준비가 한창이었고, 그토록 좋아하는 와인이며 럼주며 소주 같은 게 테이블에 가득했었건만 그건 나를 위한 파티가 아니라 그냥 나를 초대한 집주인 프랭크만을 위한 파티가 되어버렸었다.

피곤에 치인 나의 몸은 힘겨운 발걸음에 이끌린 채 화장실로 향했었다. 화장실, 그곳 커다란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있었다. 얼굴은 생기 없는 검은색으로 변해있었고, 이마엔 정체모를 선들이 산만하게 뒤엉켜있었다. 쓰러지듯 위태롭게 서있던 나의 몸은 화장실 문 손잡이에 올려진 오른손에 바드시 의지한 채 기울어져 있었다.

“프랭크, 나 좀 자야겠어.”
“뭐라고? 이제 초저녁이야.”
“......”
“이 쿠바산 럼주며 시가는 어쩌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런 식으로 14일을 보내고 귀국했었다. 아마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여행지에서 그런 기분 나쁜 증상을 경험했다면 귀국 후에 분명히 병원에 갔었을 것이다. 자기 몸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라면 그토록 피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걸 경험한 후에는 분명히 의사의 진료를 받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었으리라. 자기 목숨이 중한 걸 아는 사람이라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생기 없는 흑빛으로 변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 종합검진을 신청했었을 것이다.

나는 당시에 그런 모든 부정적인 증상과 현상을 무시했었다. 나는 나의 그런 비합리적인 반응과 무신경한 대책, 무책임한 행동이 가져올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인 줄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