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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11년 암 진단, 4기, 전원, 첫 번째 수술, 좌절

암삶 2-봄, 응급실로-안 좋은 예감(2011)

by 힐링미소 웃자 2021.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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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갈 때마다 안 보려야 안 볼 수 없는 변기 속의 핏덩어리를 보면서 더 이상 참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혈뇨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몸 안의 기운이란 기운은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현기증이 났다. 나는 틈나는 대로 시계를 봤다. 정해진 시간까지는 일을 해야 했다. 나의 그런 일에 대한 태도는 입사 3년 만에 나를 부책임자로 만들었고, 4년 만에 최고책임자의 위치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나는 막연하게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태도가 나의 몸에 무언가 불길한 이상을 가져왔는지도 모를 거라는.

나는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실성한 사람 마냥 응급실로 향했다. 버스를 탔다. 지금도 나는 이해를 못하고 있다. 그렇게 정신없고 다급한 입장에서 왜 택시가 아니고, 119가 아니고 태평스럽게 버스를 탔을까?라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간이란 게 결정적인 순간엔 너무도 비합리적인 판단과 결론을 내리나 보다.

나는 터미널 근처에서 내려 집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 쪽으로 가는 또 다른 버스로 갈아탔다. 혹시 사타구니쯤에서 피라도 쏟아지면 어쩌지? 갑자기 혈뇨가 또 나오면 어쩌지? 하면서. 사실은 그와 반대였는데도 말이다. 며칠간의 혈뇨를 겪으면서 시간이 갈수록 소변이 점점 더 잘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애를 쓰고 또 써도 소변은 잘 나오지 않았었다. 아랫도리가 묵직했고 부담스럽고, 거북했었음에도 소변은 나오지 않았었다. 그렇게 참다 참다 화장실에 가면 마치 지사제에 억눌린 설사가 어느 한순간 폭포나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듯이 핏덩이 가득한 오줌이 솟구쳐 나오곤 했었는데, 4~5시간 간격으로 그런 일이 생겼었다. 고역이 따로 없었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대학병원을 향해 쓰러지듯 걸어갔다.
내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몸은 기진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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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의사 선생님의 이러저러한 질문이 이어졌다. 그의 대답의 요지는 이랬다.
"자전거 탔다.
소변에 선지 같은 핏 덩어리가 나왔다.
다음엔 안 나왔다.
그런데 또 나온다...
그렇게 3일이 흘렀다.
여기 혈뇨 사진이 있다...."
사진? 그는 매번 그 끔찍한 변기 속 혈뇨를 폰카메라로 찍었었다. 사진 찍을 당시엔 아마 그냥 일회성이거나 "며칠 그러다 말겠지?" 하는 심정이었음에 틀림없다.

시니어 의사를 바랐지만 현실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느 병원이든 그때나 지금이나 응급실엔 주니어 의사 선생님들 뿐이다. 내가 최초로 접한 의사는 아마 1년 차 같았다. 난 놀랐지만 그분은 태연했다. 난 급했지만 그분은 여유만만이었다. 그는 한참 후에 오더를 내렸다. 그분의 지시에 따라 그는 엑스레이에... CT에...
그런 검사를 받았다. 그런 후 특별한 말이 없이 진행되던 검사와 사무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비명을 지르듯 오가는 119 엠뷸런스와 가끔씩 들어오는 술에 가득 취해 셔츠에 핏물이 데칼코마니처럼 물들인 사람들이 들어왔고 그들을 따라 어김없이 경찰들이 들어오는 도떼기시장 같은 응급실 한쪽 구석 간이침대 위에서 그는 천장을 바라봤다. 잠이 들고 싶었다. "내가 딴 세상에 있는 것 같아. 이게 꼭 꿈을 꾸는 것 같아." 그는 중얼거렸다. 분주히 오고 가는 사람들 너머엔 간호사들과 인턴과 레지던트들이 머무는 공간이 있었고, 그곳 벽에는 커다란 시계가 있었다. 그는 시침과 분침을 넋 놓고 보고 있었다. 벌써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다.

며칠 굶은 거위처럼 목을 길게 빼고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새벽 1시가 다 될 무렵,
"그냥 가세요.
다음날 비뇨기과 예약 잡아드릴게요."

나는 응급실을 향하면서도 식구 누구한테도 자세한 설명이나 얼마나 기진맥진 상태였었는지를 말하지 않았었다. 그저
"그냥 병원 좀 들렀다 가야겠으니 먼저 자!"
라고, 했었을 뿐이었다.

싱겁고 너무도 남의 일을 말하는 듯 퉁명스럽게 말하는 의사 선생님을 말을 뒤로하고 집으로 오는 길이 무슨 끝이 안 보이는 암벽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발이 앞으로 나아가지 질 않았다. 발바닥에 무슨 영원히 안 떨어지는 접착제가 묻은 듯했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전봇대 하나하나가 목포지점이었다.
우선 "거기까지 가서 좀 쉬자."였다. 그렇게 다음 전봇대까지... 또 다음 전봇대까지......
"일단은 집에 가자. 어떻게든... 그래도 빨리 집에 가자. 가서 좀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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