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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11년 암 진단, 4기, 전원, 첫 번째 수술, 좌절

암삶 8-암 진단 자체를 의심하며...(2011)

by 힐링미소 웃자 2021.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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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으로 돌아온 후 너무도 급격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아직도 어지럽고 붕 떠 있었다. 우선 사실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난 빨리 다른 병원에서 확인 진료를 받고 싶었다. 물론 난 기본적으로 의사를 신뢰한다, 아주 많이. 하니만 동시에 난 그분들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 생각한다, 나처럼 얼마든지 실수를 할 수 있는. 물론 그분들은 고도의 전문가다. 의대 6년에 인턴에 레지던트에…. 아주 고도의 훈련을 아주 오랫동안 받은 전문가들임엔 틀림없다. 그러니 그들은 생명을 다룰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일 테고. 거의 모든 아픈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명에 관한 중요한 문제를 그분들과 상의하고 그분들의 조언에 따르며 몸을 맡기고, 생명을 의탁한다... 하지만 그분들도 인간. 피로나 착각, 스트레스로 인한 혼돈과 혼동. 그런 것들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거란 생각이다. 그럼 그게 기계이지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요즘, 고도로 발달한 첨단 의료기기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의료가 더는 의사들만의 고유한 영역이 아니라 기계 그리고 프로그램의 영역으로 넘어오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결국 나를 진료하는 데 쓰인 의료장비들이 비의료 분야의 기술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공학자 등에 의해서 개발되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물론 의공학 내지는 전문 의료진들과의 협업은 당연한 얘기겠고...

결국 관건은 엑스 레이니, 전신단층촬영 검사(CT, PET-CT), 엠알아이(MRI), 로봇수술, 초음파 검사 같은 것들, 그것들이 얼마나 잘 프로그램되었느냐, 또 정기적인 점검 및 오류 수정 등이 이뤄지고 있느냐, 또 그 기계들과 그것들을 읽어내는 영상 내지 판독 전문가, 그리고 해당 의료진이 얼마나 그 기계들과 호흡을 잘 맞출 수 있느냐, 또 그럴 수 있도록 계속된 훈련이 이뤄지느냐에 따라서 아주 정확할 수도, 아니면 오진이 나올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또 언젠가 읽었던 어느 보고서가 나의 그런 판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의사는 30%만 알 수 있고, 그 30% 중에 약 70%가 오진의 가능성이 있다!"라는 사실.
그게 틀리든 맞든 한번 내 기억 속으로 들어온 이상 나가질 않았다. 그런데 내가 방금 병원에서 듣고 온 건, "환자분은 독감입니다"가 아니라, "환자분은 4기 중반 이후의 암입니다. 이미 전이도 이뤄지고 있습니다"였다. 이건 "며칠 약 먹고 쉬면 나을 겁니다'와 같은 그런 부류의 것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듣고 온건 당장 거의 실신한 것 같은 청천벽력이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소파 위에 앉아…. 식탁에 앉아…. 일단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곤 뭔가를 해야 했다. 가장 중요한 일은, 무조건 확인 진료를 받아야겠다! 였다. 여기저기 진단 받은 암에 정통한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주요 병원의 비뇨기과를 들여다보고, 그곳들 각각의 장단점을 나름 헤아려 보고, 의료진들의 숫자를 보고 경력을 보고...

혹시 다학제 협진이 있으면 더 좋았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진짜 암 환자로 밝혀진다면, 진료-수술-항암-전이된 부위 담당 진료과... 등의 과정을 거칠 테니 연관된 과들이 협력하여서 한 환자를 유기적으로 치료하는 다학제 협진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군데 병원을 골랐다. 그다음엔 그곳들의 의료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노력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우선 급한데 아무 병원이나 갈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에 큰 병원들이 어디한둘인가! 그중 아무 데나 가도 이 정도로 암이 진행된 정도라면 어디를 간들 특별히 다른 게 있을까? 아니야, 그게 아니지. 그 반대지. 암세포로 만신창이가 됐다고 하고, 폐로도 많이 퍼졌다 하니... 그런데 문제는 내 몸 하나뿐이고, 그 몸이 만들어가는 인생도 한 번뿐이고. 그런데 그 교수님한테 내 몸을 맡기면 뭐가 안 좋을 것 같은 예감은 계속 들었다.


“난 내 몸을 마루타로 만들고 싶지 않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의사 선생님을 찾고 싶어!"
내 마음은 그랬다. 또한편으로는,
“그렇게 유명한 의사 선생님 찾기는 쉬워도 과연 나한테 기회가 올까? 세월아 네월아 기다리기엔 내 몸 상태가... 더군다나 혈뇨도 계속되고 있고…. 그럼 급한 게 아닐까!"
난 당시에 대한민국 최고의 의사 선생님, 최고로 유명한 의사 선생님을 찾겠다는 의미는 아녔다. 솔직히 그렇게 유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나 같은 케이스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있어서 내 상태를 최선으로 치료할 의사 선생님을 찾고 싶었다. 내 나이, 40대 중반, 너무 빠르잖은가!



나는 계속해서 찾기 시작했다. 눈앞이 어지러워서 집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나 아닌 누가 가장 그렇게 절실했을까? 우선은 경험이 풍부하신 분들이 누구신지, 그다음으로 신문이나 방송에 나온 의사 선생님이 있는지, 또 출연, 집필, 인터뷰 횟수가 많은 분이 있는지, 그리고 그 병원에서 진단받은 암 치료에 관한 새로운 논문을 쓴 분들은 혹시 있는지, 또한, 블로그, 환우회 평가가 좋은 분들은 있는지, 마지막으로 그런 분 중에서 의료사고 기록이 있는 분들은 혹시 없는지... 물론 방송, 신문, 출판, 인터뷰, 블로그, 환우회... 이런 것들은 그저 참고일 뿐, 나도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 광고성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선 집과 가장 가까운 병원이 어디일까도 생각했다. 혹시 행운이 있어 수술 후 통원할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다면 시간이 적게 걸리는 데가 좋을 테니. 어지러운 가운데서도 나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때론 멍한 상태로 그렇게 몇 군데 병원을 정했다.

나는 최고의 병원이라는 S병원에 연락했다.
“여보세요? 에스병원이지요?”
“….”
“급하게 진료를 받고 싶은데 언제 가능한가요?”
“…”
“예? 다음 달에 나요?”
“…”
“예. 알겠습니다.”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이어서 또 다른 S병원에 전화했다.
“여보세요….”
“…”
“낼 진료 가능한가요?”
“….”
“네? 2개월 후에 나요?”
“…”
“예~ 수고하세요.”
이런저런 생각이 오가는 가운데 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미 여기저기 연락한 이후였기에 이 사람 저 사람한테서 연락이 오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우리 사회에서 암 진단이 곧 사형선고 같은 분위기가 아닌가? 하지만 나는 그분들과 통화할 기분이 아녔다. 그분들한테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을뿐더러 대화를 이어갈 힘조차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도 절망적이었고...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누군가와 통화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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