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가을, 다리뼈 이식 수술과 그에 따른 충분한 회복기간에 대한 필요성 때문에, 중단됐던 항암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두 교수님 사이에 이견이 노출됐다. 그것의 시작은 폐 속 암 덩어리들의 상태 변화였다. 뼈 이식 수술과 회복 기간을 이유로 미뤄졌던 다발성 폐 전이암에 대한 CT 검사가 이루어졌다. 결과는 예상대로 암 덩어리들이 다시 커지고 있었고, 개수도 늘었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로부터 딜레마는 시작되었다.
딜레마의 출발점은 ‘항암제를 즉시 다시 시작해야만 하느냐?’였다. 정형외과 교수님은 반대의견을 갖고 계셨다. 만약 폐에 있는 암의 확산 정도가 상대적으로 심각한 정도가 아니라면 항암제 중지(=휴약)를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이식된 뼈가 원래의 뼈와 붙어야 다리를 쓸 수 있는데, 항암제를 사용할 경우 신생혈관을 강력하게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와 다리의 기능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정형외과 교수님에 의하면, 뼈를 이식할 때는 절단된 양쪽 끝과 이식된 뼈 사이에 틈을 둔다고 했다. 그래야 이질적인 두 뼈가 붙게 된다는, 얼핏 들으면 서로 모순되는 듯한 말씀을 하셨다.
나는 더 많은 설명을 요청했다. 그 교수님은 친절하시게도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셨다. “뼈의 특성상 절단된 부위로부터 신생혈관이 나오게 된다. 그 신생혈관은 각종 영양분을 전달해서는 뼈를 자라게 한다. 틈을 두는 것은 그 자라날 공간을 마련해 두기 위해서다. 또한 신생혈관은 이식된 뼈의 가운데 텅 빈 공간을 가로질러 가면서 그 공간을 메꾸게 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절단된 양쪽의 뼈와 이식된 뼈가 견고하게 붙게 된다. 하지만 내가 항암제를 다시 사용할 경우, 그런 신생혈관의 생성 및 성장을 억제한다.”
정형외과 교수님은 자세한 설명을 끝내시면서 한 가지를 더 말씀하셨다.
“만약 이식된 뼈와 잘린 원래의 양쪽 뼈가 붙지 않는 그런 상태가 지속하면-두 뼈 사이가 떨어진 상태로-삽입된 두 금속판을 고정하기 위해 설치된 나사못들이-다리의 활동이 누적되면서-부러진다. 그럴 경우 재수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다리를 쓸 수 없게 된다. 그 말을 쉽게 하면, 환자분은 심각한 장애를 갖게 될 거라는 것이다.”
정형외과 교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서 유독 한 문장이 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심각한 장애를 갖게 될 것이다!”
란 말씀,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실 내 다리가 잘려나가고, 죽은 뼈로 이식된 것 자체가 ‘장애’라고 생각하고 충격을 받았던 상태이긴 했었다. 하지만 그에 덧붙여진 수식어, ‘심한’이 문제였다.
더 큰 문제는 나의 주치의 교수님의 의견이 그 정형외과 교수님과는 다르다는 데 있었다.
나의 주치의 교수님과 정형외과 교수님 사이의 상이한 의견은 두 선생님 간의 몇 번의 의논을 거쳐서 하나의 결론에서 만났다.
“다리를 못 쓴다고 죽지는 않는다. 대신 암이 이런 속도로 볼륨이 커지면 죽는다.”
결국 다리 상태를 매월 체크하면서 항암제를 쓰기로 했다. 항암제를 다시 시작하면서, 놀랄 일이 아니지만, 부작용도 뒤따라왔다. 심한 부작용은 항암제를 계속 사용한다는 게 과연 삶의 질에 보탬이 되느냐 아니냐의 고민을 가져왔다.
깁스를 푼 후 다리 상태는 기대만큼 좋아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고정돼 있던 다리는 굳어진 상태였다. 강제로 무릎을 구부리는 연습을 무수히 해야 했다. 참 만만찮은 순간들이었다.
우선 의자에 앉는다. 한쪽 다리를 수술한 다리 정강이 위에 올려놓는다. 그런 후 무자비하게 힘을 줘 밑으로 찍어 누른다. 그런 후 반대로, 성한 다리를 수술한 다리 종아리를 받친 상태에서 위로 들어 올린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고, 온몸에는 땀이 흘러내렸다. 그런 행동을 하루에 100번씩 하라는 정형외과 교수님의 처방이었다. 아니면 “그쪽 다리를 쓸 생각을 하지 마라”라고도 말씀하셨었다.
매월 체크해오고 있었던 다리 상태는 진전이 없었다. 여전히 뼈는 자라지 않았고, 수술했을 때의 상태를 벗어나질 않았다. 정형외과에서는 아주 드문 경우라 했다. 6개월 정도가 지나면 대부분의 환자에서는 눈에 띄는 발전이 온다고 했다. 그 교수님은, “많은 변수를 고려해봤지만, 아무래도 신생혈관의 생성을 억제하는 표적치료제가 유력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결론을 내리셨다.
한쪽 다리를 못 쓸뿐더러, 양쪽에 목발을 해야 한다는 건 어쩌면 참을 만한 일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기에 시도 때도 없이, 대략 하루에 7~8번까지, 찾아오는 심한 설사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이쯤 해서
“사는 게 무엇일까?”
라는 자문을 끊임없이 하게 만들었다.
암이 폐와 뼈로 순차적으로 퍼져나간 4기 전이암 환자로서, 한쪽 다리에 서서히 장애가 찾아오는 징조가 보이는 걸 대책 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심한 항암제 부작용을 겪으면서, 사회의 소수자로서, 약자로서 세상을 사는 게 참으로 고단한 일이란 걸 절실하게 깨닫기 시작했다. 이건 책이나, 이념적 의식화에 의한 게 아니라, 내가 처한 현실과 그에 따르는 수 없는 육체적 어려움, 정신적 모멸감에서 찾아왔던 것이었다.
그런 상태는 해가 바뀌고, 화사한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지고 나서 또 다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2017년 여름의 막바지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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