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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항암과 구강 건강, 암 환자 치과

암 턱뼈 전이의심 조직검사를 받으며 2-왜 보내야만 하나 못써먹나

by 힐링미소 웃자 2021.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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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위가 썩었습니다, 모두.”
그 말씀은 그 부위는 더는 쓸 수 없다는 반증이었다.
이 분처럼 전문가라고 불리는 분들의 진단은 정확도가 십중팔구다, 내 경험에...
이게 그분들의 데이터 때문인지, 아니면 합리성 때문인지, 촉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우리가 ‘업’이라는 말을 한다.
‘내가 세상에 온 이유’라는 본래의 의미를 떠나서라도 이 업은 유추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기술과 아이디어를 갖고 한 가지 일을 하다 보면 당연히 고유의 방법이 생길 것이다.
또 같은 분야에 있는 또 다른 그런 사람들과 교류를 할 테니 인적 네트워크도 풍부할 것이다.
그런 전체를 아우르며 오랜 기간 일하다 보면 그 전문가 정신 또는 장인 정신은 또 얼마나 깊고 풍부할 건가!
그런 분께서 그렇다고 말하면 그런 결과가 나올 경우의 수가 거의 99가 될 수도 있다는 경험이다.


난 어떤가?
난 4기 암환자 생활이 11년째다.
난 이게 업일 수 있을까?
그럴리는 천부당만부당이다.
그러나 내 몸에 대한 미세한 변화들에 반응하는 정도는 아마 장인 수준일런지도 모르겠다.
강산이 한 번 바뀔 정도의 세월을 한 가지 병에 천착하다 보니 보통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 것들을 느낀다.

 

“안타깝지만 그 부위 뼈 다 썩었습니다.”
“......”
“그래서 그 부위 다 긁어냈습니다.’
“......”
“이제 조직검사 결과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대략 일주일 후면 알 수 있으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제 맘 속의 영원한 명의이십니다. 하나도 안 아팠습니다.”


나의 뜬금없는, 교수님이 하시고 있던 주제의 말씀과는 관계가 0도 없을, 찬사에 교수님은 멈칫하시다가 크게 웃으셨다. 난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이분은 날 만난 첫날 맨 먼저,
“어디가 젤 불편하십니까?”
라고, 물어보셨었다.
생각해 보면 로컬 병원에서 가져온, 업로드된, 자료들을 일별 하시는 것만으로도 내게 어디가 불편한지를 물으실 필요는 없으셨을 것이다.
또한 날 눕혀 놓고 구강 안을 샅샅이 뒤지셨었다.
거기에 더해 나의 ‘아우’ 치과원장님이 써주신 자세한 진료의뢰서로도 이미 충분히 파악하셨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나와 소통을 애써 하셨다.

 

이분은 또한 공감의 자세도 보여주셨다.
“많이 불편하셨겠어요. “
“......”
“제 생각에도 약물에 의한 회복 지연이 가져온 염증의 악화로 생각되기는 합니다만...”
“......”
“그럼에도 조직검사를 한 번쯤 받아보시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고생하시면서, 그리고, 잘 관리해오신 덕분에 이렇게 잘하고 계신데, 더 잘하셔서 오래도록 좋은 일들을 경험해 보셔야 지요.”
환자 입장에서 그런 말을 인턴도 아니고, 레지던트도 아니고, 강사도, 조교수도 아닌 부교수님한테서 들으면 감격하기 딱이다.



물론 4기 암 환자인 내가 내 몸뚱이를 치료하는 데 있어 중요한 한 축인 의사 선생님들의 ‘직’이 선택에 있어서의 금과옥조가 될 수는 없다.
이 ‘직’은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이를테면 파기되거나 분쇄될 운명에 처할 수도 있는 명함 위에 박힌 순간적인 허상일런지도 모른다.
‘직’ 또는’ Job’은 나도 경험해봤을뿐더러 거기에 더해 채용의, 정리의 직접적 담당자 '역할'도 해본 적이 있었지만…
그 또는 그녀가 직을 잃게 되면, 박아놨던 명함은 파쇄된다.
‘직’에 의존했다 그 ‘직’을 잃은 삶은 그 후 한없이 초라해지는 걸 많이도 봤다.
그러니 ‘직’보다는 ‘업’을 중시한다.
‘업’은 어딜 가도 그 쓰임새가 풍부하다.
‘직’없이도 초라해지거나 주눅 들지 않고 풍성한 삶을 펼칠 수가 있다.



문제는... 병원의 경우와 같이 생사를 가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분들 중, 부교수 위치에 있으면...
업으로서도 최고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이론이나 임상에 대해 주니어 닥터들에 비해 소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쁘시니까 들...
새벽 미팅, 프레젠테이션, 수술 내지는 진료나 강의, 문진, 그리고 학회 등 등...
그러나 그 풍부한 경험과 데이터는?
그런 것들을 도대체 그분 아니면 어디서 찾을 수가 있을까...?


“염증일 확률이 높으나... 전이암일 경우...”
“......”
“복잡해질 수가 있습니다.”
“......”
“하지만 절 첨 보신 날 하신 말씀처럼...”
“......”
“우선 결과를 보고 상의하고, 결정하고...”
“그래도 되겠지요, 교수님?”
“예.”
“예. 하하”


난 내 치아와 감정에 대한 그분의 감수성 넘치는 치유를 느끼며...
교정 불가의 버릇이 또 발동하기 시작했다.
본인과의 대화, 내 영혼과의, 마음과의 대화를...

“난 푼수가 되고 싶다.
난 한없이 단순해지고 싶다.
난 한없이 본능에 충실하고 싶다.
난 한없이 직관을 존중하고 싶다.”
난 없는 데도 있는 체하기 싫다.
마음도 재물도 난 표정도 꾸미기 싫다
난 말도 꾸미기 싫다.
난 잘난 게 아니다.
그렇다고 난 못난 것도 아니다.
난 특별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천한 잡것도 아니다......”

 

“이제 나가셔서 나머지 말씀을 들으시면 됩니다.”
“아! 예! 교수님.”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트레이에 담긴 잔해들을 봤다.
오래도록 내 것이었으나 이제는 아닐...
새빨간 아교풀에 범먹이 된 듯한 턱뼈 조직검사용 채취물과
빠져나온 이빨...
하나였다가 두 개가 되고,
이제는 아예 내 잇몸에서 버림받은 그 46번.
내가 저 어금니와 더불어 고사리나물을, 쑥갓을, 갈비를, 콩이며 팥이 들어간 밥을...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거칠고 설익은 것들 일망정… 그렇게 잘게 부수어 거친 먹거리가 천하 명약이 되도록 만들어 줬던… 내 생명 끊어지지 않게 해 주었던... 소중한 너...
그리고 너를 감싸고 있던 든든했던 그 아랫턱뼈!


어떤 이들은 이 세상에 올 때 가지고 나온 오장육부,
몸성히 간직하고 있다가 죽을 때 그 숫자 그대로 같이 간다고 한다.
난, 하지만... 콩팥 하나와 폐 한 뭉텅이와 탐스러운 허벅지 뼈와... 46번 치아마저 지켜주지 못했다...
내 남은 몸뚱이는 피범벅이 돼 이젠 남의 것이 된 이빨과 턱뼈 조각들을
스치듯 지나쳤으나,
내 눈은 다시 앞을 향했으나,
마음은 그것들에 붙들려 있어
떨어질 줄 몰랐다.
“...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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