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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국내여행

인사동 1

by 힐링미소 웃자 2022.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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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동

인사동, 20대와 30대 때 뻔질나게 들르던 곳이다. 그런데 50대가 돼 또 뻔질나게 들락거리고 있다. 세월도 참 많이도 흘렀고, 인사동 모습도 그에 못지않게 변했다. 얼마나 변했는지 여기가 거긴지 알 수 없는 곳 천지다. 그러니 그때 인사동이 요즘 인사동은 아닌 것이다. 말장난처럼 들리지만 내용은 그렇다, 행정구역이라는 형식은 아니지만.

 

80년대 서울대병원 인연

고등학생일 때 난 충남 공주란 곳에 있었다. 하지만 때때로 서울에 올라올 일이 있었다. 만성 담마진이라고 진단받았지만, 사실은 극심한 알레르기였다. 그 알레르기는 지금도 속 썩이는데, 이젠 피하는 법을 알아서 큰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당시엔 엄청난 증상들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와야만 했었다. 여러 병원을 거쳐 결국엔 혜화동 서울대병원에 다니게 됐는데, 공주에서 서울까지는 단순한 길이 아녔다, 당시엔. 서울대병원은, 그때, 머리털 나고 첨였었다. 그게 서울이 첨였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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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서울 영등포

아주 꼬맹이 일때, 아마 국민학교(초등학교)도 안 들어갔을 때, 서울에 첨 왔었다. 큰고모님이 서울에 사셨다. 어떻게 전기도 안 들어왔던 시골 우리 집에서 서울로 가셨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러셨다. 그 시기 언제 언제쯤 날 서울 구경시켜주신 적이 몇 번 있으시다. 지금, 어렴풋한 생각에, 돌이켜 보면 영등포역에서 멀지 않은 어느 곳이었다. 그 기억 속 영등포는 색 바랜 흑백사진처럼 아니면 여기저기 짤라내고 이어 붙인 무성영화 필름처럼 내 기억 속에 있다. 요즘 영등포는 상전벽해다. 인사동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렇게 보면...인사동은 나름 옛 모습을 어느 정도는 남기고 있다.

 

 

80년대 용산

그 알르레기가 엄청 심해지면 내 모습은 짐승처럼 변했다. 딱 요즘의 조영제 부작용 그 부류다. 하지만 조영제 부작용은 양반이다. 어쨌든 동물의 모습을 하고 난 부랴부랴 조퇴를 하곤 했었다. 부리나케 시내버스터미널로 가고, 서둘러 버스를 타고 긴 시간을 거쳐 서울에 왔다. 당시 터미널은 반포가 아녔다. 용산 이촌동, 지금 LG 유플러스 사옥 있는 자리였다. 그 일대, 당시 흔적이라곤 군부대 일대 빼고는 다 바뀌었다. 그 터미널 일대 쪼그만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없는 사람들이 사는 그런 모습으로... 지금은 금값도 그런 금값이 없지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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