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항암제 두 알을 먹는다. 식사 전 1시간 전에 먹으라는 복약 지시다. 8년째 그렇게 먹고 있다. 특별할 거 없는 일이다. 하지만 초기 얼마간은 특별한 일이었다. 보통은 일어나면 세수하고 밥을 먹는다. 하지만 난 일어나자마자 항암제를 먹는다. 1시간 동안 맛난 음식을 기다린다. 그리고 아침밥을 먹는다. 허기를 참으며 기다리는 1시간은 내게 먹거리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일깨우는 시간이다. 매일매일이.
오늘은 이틀 만에 먹는 항암제였다. 그저께와 어제는 안 먹었다. 그저께는 나들이를 더 즐겁게 하기 위해서였다. 설사로부터의 자유, 이런 경우는 내 삶이 주는 작고 소중한 행복이며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환희며 눈물 나는 선물이다. 설사로부터의 자유는 나들이를 한결 경쾌하게 해 준다. 설사와 여행, 특히 나같이 로드 트립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설사는 지독한 훼방꾼이기 때문이다.
난 인공적인 것들에 대한 팬이 아니다. 화장실 잘 갖춰진 관광단지보다는 ‘자연스러운’ 자연유산을 더 선호한다. 그런 곳들은 때론 꽤 오랜 시간의 걸음을 요구한다. 난 재건된 문화유산보다는 역사의 풍상, 자연의 풍파를 견뎌낸 ‘흔적의’ 문화유산을 더 선호한다. 둘 다 ‘오랜 시간을 걸어야 함’이 필수다. 하지만 그런 수고를 애써 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 까닭에 화장실 같은 편의 시설이 없는 곳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설사는 나에겐 짓궂음을 넘어 짓누름이다. 특히 주상절리 한 곳, 무너진 탑 하나,... 그런 아름다움 앞에 몇 시간을 우두커니 서있곤 하는 나에겐 이어지는 설사는 그야말로 무따래기에 다름 아니다.
어제는 설사가 없었던 그저께에 대한 그리움과 그 자유를 하루 더 연장하고파서 안 먹었다. 거기에다가 누군가를 만나야 할지도, 아니면 가까운 어딘가를 갈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안 먹었다. 예감은 맞았다. 점심때가 다 돼 외출할 일이 생겼다. 그리고 하루의 해가 존재의 절정을 지나 볕에서 빛으로 변할 즈음에 어떤 이들과 몇 시간을 얘기해야 할 일이 생겨났다.
통신사에서 주는 한 달에 한 번의 무료 쿠폰, 내가 좋아하는 폴 바셋 안 어느 자리, 디카페인 브라질 한 잔을 내 앞에 놓고 오랜 친구와 마주 앉아 긴 대화를 했다. 문득문득 더운 바람 사이로 마치 초가을 아침에나 있을법한 선선한 바람결, 그런 바람결은 사람과 분위기를 온화하게 한다. 그 상냥함과 따뜻함은 설사 없는 순간들과 어울려 생채기 났던 내 몸은 물론 한동안 서먹했었던 관계에도 치유를 가져왔다.
그런데 난 왜 때론 훼방꾼, 때론 지독한 상처를 남기는 그런 항암제를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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