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난 왜 건강에 오히려 훼방꾼 역할을 할 수도 있는, 때론 지독한 상처를 남기는 그런 항암제를 먹을까?
단 한 가지 이유, 암세포를 타격하기 위해서 먹는다. 이 독한 약기운을 맛보고 놀라서 더 크지 말라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약이 암세포를 깡그리 없애줄 거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없었고, 지금도 없다. 그러니 이 약으로 아니, 그 어떤 약으로도 지금 내 몸속에서 기생을 넘어 공생하고 있는 암이 치료될 거라는 기대는 더더욱 하지 않는다.
이약에 대한 효능과 성분, 부작용은 동봉된 설명서에 자세하게 나와있다. 거의 소책자 수준이다. 두 번째 병원에서 세 번째로 전원 했을 때 인연을 맺은 교수님이 내게 이 항암제를 권했다. 그러면서 분명하게 밝힌 게 있다. 실제 반응률은 광고에 비해 그리고 기대에 비해 낮다는 말씀이 있었고, 약효가 긴 시간 지속되리란 보장도 없다고 하셨다. 더군다나 부작용인 간독성은 치명적이라 했다. 그 밖의 중증의 각종 부작용도 있다고 부연하셨다. 그럼에도 한번 해보자고 하셨다. 그냥 두고 보기엔 가슴이 아프다고 말씀하셨다.
당시 내가 가진 암의 상태는 안 좋았다. 두 번째 병원에서 “시한폭탄”이란 말을 들었다. 원발암 부위였던 신장에만 머물렀던 게 아니었고, 이미 양쪽 폐로 전이가 된 상태로 발견됐고, 숫자도 20여 개가 넘게, 영상기기에 뚜렷이 나타나고, 서너 개는 2센티가 넘는 크기였기에, 시한폭탄이라고 했다.
암세포는 껌딱지를 뭉개서 식탁에 납작하게 붙여놓은 게 아니라 했다. 축구공과 같은 3차원이라고 했다. 이것들이 숫자를 불리는, 그래서 늘어나는 속도는, 산술급수가 아닌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했다. 1개가 2개로, 2개가 4개로, 4개가 6개로... 가 아니라고 했다. 1개가 2개로, 2개가 8개로, 8개가 512개로... 번진다 했다.
거기에 더해, “쓸 약도 없고, 설령 쓴다 해도 효과도 없어!”였다. (그렇게 말씀하신 교수님, 엄청 유명한 분이시다. 방송을 비롯 모든 미디어에도 많이 등장하시고... 이쪽 분야의 권력이다.)
세 번째 병원에서 실시했던 모든 검사들의 결과도, 지표도 매한가지였다. 양쪽 폐 속 20개 이상의 다발성 암 덩어리들은 검사할 때마다 커지고 있었다. 진행되는 상태로 봤을 때, 폐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 했다. 퍼져가고 있는 암 덩어리들과 그 줄기세포화 된 암세포들이 몸속 어디로 퍼져나갈지 알 수 없다는 예후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번째 병원의 교수와 세 번째 병원의 교수님의 진단은 같았으나 처방은 달랐다. 세 번째 교수님은 먼저 폐수술을 하자고 하셨다. 물론 그 제안에 따른 수술의 진행은 매끄럽지 못했었다. 흉부외과 교수님은 거절을 두 번이나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 번째 교수님은 진료기록지에 '부탁의 말씀'을 다시 쓰셨다. 그런 핑퐁게임을 서너 차례 한 후에, 우여곡절 끝에 어쨌든 폐의 가장 큰 엽(조각) 하나 떼는 걸로 타협이 이루어졌다. 폐는 다섯 개의 엽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 그 5개의 엽들 중 가장 큰 엽에 가장 큰 전이암 덩어리들이, 모두 2센티가 넘는 크기로 3개나 있다고 했다.
그런 우여곡절과 밀당의 이유는 하나였다. 새로 주치의 되신 그 세 번째 교수님은 그렇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간절한 심정이셨을 테고… 어쨌든...‘폐 수술까지는 해보자!’였다. 나도 거기에 동의했고, 칼잡이 흉부외과 교수님도 동의하셨다.
망설였던 폐 수술에 그나마 동의했었던 결정적 이유는 그분의 말씀 중에 있었다. “전이암의 경우, 가장 큰 볼륨을 제거하면 그 세력이 약해지는 경우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끝 모르게 커가는 볼륨-크기와 개수-을 더는 두고 볼 수는 없지 않냐는 뜻이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폐 수술이 끝났다. 그러나 몇 달이 흐른 후에도 난 여전히 항암제를 거부했었다. 암 진단 후 몇 년에 걸쳐 ‘4기 암 단계라는 게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와 각종 ‘인공적 항암제'에 대한 치료 성과와 부작용, 환자들의 리뷰에 대해 조사했었다. 이런 ‘약 복용 후 후기’들은 미국과 유럽의 대형병원들, 특히 미국의 대형 암 전문병원들에서 상대적으로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점이 도드라졌다. 몇몇 대형병원들에는 각각의 항암제에 따른 사용자들의 모임이 있고, 이 모임에서의 후기는 담담 의사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피드백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우리의 ‘환자-의사’가 마치 ‘상하’ 관계인 듯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오랜 조사와 생각, 고민 후의 결론은 ‘인공적 항암제’로는 절대로 4기 암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과 효과에 반해 부작용은 치명적일뿐더러 항구적이라는 것이었다. 더 근본적으로는 암이 1기나 2,3기를 넘어서 4기 암이라고 불리는 진행 상태쯤 되면 ‘치료’라는 말 자체를, 일반적으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결론은 필연적으로 ‘쓸 필요가 없다’는 나의 결정의 근거가 되었다.
몇 달간의 밀당이 있었고, “항상 예외는 있습니다.”라는 말씀과 “이 상태로는 너무 안타깝습니다. 뭐라도 해봅시다.”라는, 간곡함에 감명받았었다. 난 그분께 그 이후로, 그리고 오늘도 감사한다.
물론 항암제를 쓴 이후, 그 뒤로도 우여곡절은 진행형이었다. 듣기만 해도 기쁜 완전관해 판정, 슬픔의 기억인 다리뼈 한 토막 잘라내기와 같은. 물론 여기에 설사 같은 부작용은 그 우여곡절 축에도 못 낀다. 그런 부작용은 진즉에 인지했었고, “예견된 악재는 더 이상 악재가 아니”기때문이다.
그럼, 항암제 사용의 결과는?
분명한 건 내 몸속에서 지금 ‘보이지 않는 무슨 재앙’이 일어나는지는 모르나 암세포들이 나름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7년 동안. 딱 거기까지다. 여전히 내가 이 항암제 사용에 대한 동의를 하기 전에 내렸던 그 두 가지 결론은, ‘내성’, 그리고 '항암제가 4 기암을 치료할 수는 없다'라는, 아직도 유효함을 확인하고 있다.
내성? 이미 내성의 징조가 나타난 지도 오래다. 이 징조는 내 주치의께서 검사 결과를 보시며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이 내 은 이미 그분께서 누누이 말씀하셨던 거고, 나도 이미 예견했던 거고, 인지했던 내용일 뿐이다. 놀랄 일도, 실망할 일도 아니란 뜻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성이 '생겼다'가 아니고, 내성의 '징후'가 보인다라는 사실이다.
그럼 제한적 효과와 제한적 사용기간, 광범위하고 치명적인 부작용, 짧은 효과 후 빠른 내성을 특징으로 하는 이 항암제를 어떻게 7년 넘게 쓰고 있나? 그리고 이 항암제에 대한 나의 반응도는 동종 약품 사용자 집단과 비교해서 도대체 어느 위치인가?
또한 오로지 이 항암제 하나가 내가 가진 4기 전이암에 대한 무기였던가? 아니면 한마디로 ‘그냥 운이 좋아’였나? 내 주치의의 코멘트는 또 무엇인가?
*혹시 항암제는 넓은 의미의 발암제일까?
*혹시 약과 방사선에 의한 항암 과정은
또 다른 발암 과정은 아닐까?
*항암제는 암환자에게 만능이며 불로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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