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단 6년째, 다리뼈 첫 번째 절단
4기 진행성전이암을 진단받았었기에, 그 정도 수술은 각오를 했었다. 그러나 시련은 혼자 오지도 않았을뿐더러, 뜸을 들이면서 오지도 않았다. 두 번째 수술 후 정확히 3년 만에 찾아왔다. 그것도 완전관해 판정을 받은 후에 말이다.
그러니까 나쁜 일은 혼자 오지도 않을뿐더러 축제를 벌이고 있을 때도 온다. 아주 은밀히 온다. 내 경우가 그랬다. 그 결과는 뭐였을까?
겉보기에 멀쩡해 보였다. 그러나 속으로 곯았다. 뼈속을 암이 야금야금 파먹었다. 그래서 멀쩡해 보였던 생다리를 끊어냈다. 암 치료의 근본은 그런 거라 했다. 암이 있는 곳을 아예 ㄷㄹ어내는 것 말이다.
회복실로 온 후, 정확히는 마취가 풀리면서 느끼기 시작은 통증은, 아픔은 상상을 초월했다. 다리뼈를 아래 자르고 위 자르고 들어낸 후 딴 뼈를 붙인 후 금속 판을 양쪽에 대고 금속 못들로 고장한다. 와~ 아무리 쎈 마약성 진통제를 들이부어도 그 통증은 어… 정말로…
그러나 그 통증 역시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잦아들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더 이상은 몸에 생채기 낼 일이 없으리라는 약속이나 받은 거 마냥 그렇게 나름 괜찮게 흘렀다. 통증 내지는 아픔이 더는 없었기에. 그래서 유럽도 가고, 미국도 가고… 비록 목발과 지팡이에 의지하면서였을 망정… 좋았다.
▶ 진단 12년째, 다리뼈 거의 절단
2년 후, 3년 후 간격으로 몸의 일부분을 잘라내고 도려낸 후 좋았던 시절이 흐르고 있었다, 3번째 수술 후 거의 6년 다 될 때까지.
그러던 어느 날 잘라낸 다리뼈 위아래로 간헐적인, 스치고 지나 듯 찰나적 통증이 간헐적으로 오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아, 뭔가 불길한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들곤 했었다. 그래서 교수님들께 고지했다. 그러나…그분들이 아무리 명의로 소문난 분들이라 해도 암 환자인 난 알아야,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있었다. 원칙과 같은 그 뭐…
내 다리가 그분들의 다리가 아니고, 내 몸의 통증이 그분들 몸의 통증이 아니란 거 말이다. 난 좀 더 푸시했어야 했다. 안 좋은 느낌이 안 맞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것도 기억했어야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거대하게 아주 거대한 암 덩어리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그 결과는?
그 마디 남아있던 벼의 거의 대부분을 잘라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리고 근육의 대부분, 지방의 대부분을 떼어내야 했다. 그 결과, 눈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래. 한쪽 다리는 그냥 다리, 수술받은 다리는 팔뚝의 굵기!
통증이나 아픔은?
첨 다리뼈 절단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통증이었다. 이런…젠장…그리고 쌍욕이 내 목구멍을 들랑달랑했다. 그러나 앞밖으로까진 안 나왔다. 대신 감사의 표현이 나왔다.
완전 절단 후 의족, 그런 신세는 모면했다는. 그런들 그 아픔은 한 동안 갔다. 그래 한 동안… 영원하지는 않았다. 아, 물론 간헐적 통증은 오곤 한다. 그쪽 다리는 그냥 폼만 다리라서, 쫌만 써도 무리가 오니까. 그러나 잠은 잘 수 있었다. 역시 육체적 통증은 시간과 함께 증발한다. 증발?? 그래 그 증발.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육체는 아픔과 통증을 포용한다. 아마 그럴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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