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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해외여행

2018년 뮌헨 3- 독일 친구와의 첫 만남

by 힐링미소 웃자 2021.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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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중앙정부가 있었나 할 정도로 독일은 철저하게 다중심성 사회였다고, 그 독일 친구는 말했었다. 내가 그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현대 한국은 참 단일한 듯해.”

라고 말했었다. 

“현대 한국?”

난 되물었다.

“어. 내가 방금 박물관에서 본 너네 옛날 문화는 지역마다 참 다양했었을 듯한데….”라고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그런데 박물관에서 본 한국과 현재 내가 보고 있는 한국은 많이 다른 듯해. 현대 한국은 마치 단일한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듯해. 과거에도 현대에도 독일엔... 단일성... 그런 게 별로 없었고, 없다는 생각이야.”

난 “왜?”냐고 물었다. 

그는, 

“왜냐고? 18세기에는 대략 300여 개, 19세기에만도 39여 개의 독립주권 국가군으로 존재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독일에는 서울처럼 이렇게 한 곳으로 집중된, 어마어마한 규모의 도시가 없어.”

 

 

“그런데… 너 아까…그 박물관에서 날 쳐다봤었지?”

라고 그는 갑작스레 물어왔다. 

내가, 

“그랬나?”

그가, 

“그랬어!” 

내가, 

“그래?” 

그가, 

“분명히 날 봤어. 그 눈빛이 특별했어...” 

“......”

“우리 어디 들어갈까?”

“그래! 날도 더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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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처음 만난 날은 좀 더웠었다. 어느 한 외국인 방문객을 그가 묵을 가정의 한국인 호스트에게 소개할 겸, 원했던 박물관도 소개할 겸 국립 민속박물관에 갔었던 날이었다. 내가 20대 중반을 막 넘기고 있었을 때, 그는 아마 30살 이쪽저쪽이었지 싶다. 경복궁 민속박물관에서 명동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한국과 독일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난 하필 그 친구가 독일에서 왔다는 생각에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독일과 독일문화는 내게 특별한 것이었다. 난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2년간 배웠었다. 더군다나 그 후 잠깐 철학을 공부할 일이 있었는데, 당시에 "아, 독일로 유학을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져 있었다. 세상의 격랑에 휩싸이다 보니 그 꿈을 접기는 했었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에서 영원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제도권이 아니었다 뿐이지 꾸준히 그쪽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쓴 책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한국의 어느 대학에 교환교수로 왔다 했었다. 

“너, 아주 이른 나이에 교수네.”

라고, 내가 되물었었다.

“어. 좋아하는 분야라서 일찍 학위를 땄어. 딴 이유는 없어.”

“좋아하는 분야? 무슨?”

“치즈!”

“치즈?”

“체다치즈!” 

 

그렇게 만남이 시작됐던 친구였다.

그를 알게 된 후, 그가 교수라는 직함을, 그것도 20대 중반에 이미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모교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고 자리를 잡은 경우인데 반해, 난 긴 방황을 접고 새로운 세계에서의 적응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평범한 젊은이에 불과했었기에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는 교수, 난 공부 중이었던 사람. 그가 가진 특허건 수, 내가 가진 사회적 방황의 건수... 난 당시에 어느 국제적인 민간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NGO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남녀노소를 불문한 다양한 사람들을 매칭 하는 코디네이터를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건 직업이 아니라 봉사활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 무엇이었다. 

​서로에 대한 소개가 끝나고 난 후 난 물었다.

“너, 나를 어떻게 생각해?”

“뭘?”

“넌 교수! 난...”

“그래 난 교수야. 직업이 교수!”

“......”

“난 그게 다야. 넌 독특하고 내게 의미가 있어.”

“......”

“앞으로는 그저 ‘너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독일 사람’으로 만 생각해주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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