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는 1년여간의 교환교수 미션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동안 좋았어!”
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영원한 작별을 고하는 듯한 뉘앙스가 너무 강할 듯해서... 그 친구는 내 맘을 읽기라도 한 듯,
“아니, 우린 가끔 볼 거야.”
라고, 예언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다. 난 하려던 말을 입 밖으로 마저 안 꺼냈던 것에 안도했다.
추억 많이 쌓았던 그가 귀국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을 했었을 때, 나는
“하아, 가기 전에 한국이나 며칠 여행하고 가지 그러냐?”
라고 했었는데,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잖아도 독일 내 애인을 불러 여행을 할 거야.”
"얼마나?"
"2달!"
두 달이라는 말에 난 놀라 자빠질뻔했었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한국이 2달을 여행할 정도로 넓은가? 아니 넓지... 하지만, 2달간 여행을 할 장소들이나 찾아놓은 걸까?”
물론 어는 정도는 그의 여행 스타일을 짐작할 만했었지만... 지난 경험을 생각해 보면. 하지만 2달은 좀 심한 듯 보였다. 그리고 그땐 그냥 하는 말인가 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귀국하기 2 달 전에 나한테 말하길,
“차를 렌트하려고 하는데,”
“왜?”
“한국을 여행하려고.”
“그래? 기차가 더 편하지 않을까?”
“아니!”
“그래?”
“그래.”
“왜?”
“2달간 여행할 거야!”
“한국을?”
“어.”
대략 어떻게 여행하려는 건지 감이 오긴 했었으나, 하지만 그는 한 발 더 나갔다.
“두 달간 지그재그로 여행할 거야.”
“어?”
“왔다 갔다, 내려갔다가 올라왔다가!”
"......"
그는 그의 그런 여행 방식에 대한 맛보기를 그해 여름 이미 내게 보여줬었다. 어느 날 그는 내게 불쑥 제안했었다.
“괌에 갈래?”
당시 빈털터리였던 나는,
“나 거기 갈 돈 없어!”
라는 말로 사양했다. 하지만 그는 다 안 다는 듯한 표정으로,
“알아!”
라고 말했다. 그는 몇 번 내 자취방에 들렀던 적이 있었다. 20대 중반의 제대한 지 얼마 안 되는 먼지 풀풀, 빈궁 풀풀, 너무도 심플해서 미니멀리즘의 아방가르드 단칸 셋방...
그는 말을 이었다.
“비행기 표 내가 선물할게!”
“뭐?”
“우정의 선물! 나중에 너도 나한테 한 장 끊어줘!”
“하아!”
“숙소는? “
“홈스테이.”
“호텔이나 모텔 아니고? “
그 친구는 호텔이나 모텔이 아니고 홈스테이를 하고 싶은 이유를 말했다.
“어. 거기 독일 여자가 운영하는 집 있어. 아주 좋아.”
“괌에 사는 독일 여자?”
“어. 남편이 괌 원주민 미군이었는데 독일에서 근무하는 동안 만났었대.”
“로맨스!”
“결혼해서 살았고... 그런데 인종차별 땜 괌으로 온 거지,”
“지금도 그 남편이랑?”
“나인(Nein)! 세상을 떴고... 집을 여행객들, 주로 독일에서 오는, 을 위해 사용하고 있대.”
.
.
.
.
난 예나 지금이나 친구 사귈 때 이름과 동네만 묻는다. 블라인드 채용처럼 블라인드 친교를 좋아한다. 나이, 종교, 성별, 성적 취향, 교육 배경, 재산... 모두 관심이 없다. 난 아직도 정확히 몇 살인지 모른 채 몇십 년을 사귀는 친구들도 많다. 우정이 깊어지면서 시간을 두고 하나둘씩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고...
나이가 몇이니, 직업이 뭐니, 종교, 성적 취향이니, 정치적 지향은 뭐니... 그런 것들엔 관심 없다. 그건 영업이다, 친교가 아니고. 근친 교배라는 시스템, 끼리끼리 어울리며 성벽을 쌓으니 그 특수집단에 당장은 도움이 될지 모르나...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머잖아 망한다. 잦은 치명적인 돌연변이로, 일종의 집단적 도그마로 망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썰이다. 내가 경험하기에도 그렇다. 다양성 결핍! 아예 거울 보고 혼자 말하는 게 좋을 성싶다. 지독한 나르시시즘!
“같이 써!”
“둘이서 한 침대?”
“노! 방만같이 쓸 거야. 침대는 두 개!”
“비싸겠다. 난 얼마 내야 해?”
“내가 예약할게.”
“방도?”
“그래. 내가 가자고 했으니까...”
“하아!”
그렇게 갔었던 괌에서, 내가 하지 못했던 색다른 여행의 정석을 봤었다. 그의...
리스트 1: 박물관
리스트 2: 역사적 스토리가 있는 장소
리스트 3: 독특한 요리가 있는 음식점
리스트 4: 새벽 벼룩시장
리스트 5: 원시적 자연이 있는 곳
리스트 6: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외진 곳에 있는 유적지
리스트 7: 보통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와 음식점
리스트 8: 그래도 시간 나면 돈 꽤나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나 요리점
그의 여행 방식은 그랬었다. 또한 내가 그와 1년을 보내며 배운 여행법이기도 하다. 난 그 시절 이후, 20대 중반 이후 그와 똑같은 방식의 여행을 한다, 지금도.
어쨌든 그때는 그의 여행 계획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
“뭐 차 타면 30분이면 다 돌아 볼 게딱지만 한 섬에서, 저걸 다 하려면 일주일은 더 있어야겠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딱 그 기간, 그런 식으로 그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열대 해양성 기후에 스콜에... 후덥지근한 그 섬에서.
여행을 갔다 온 후에도 그는 뭐든 나한테 해주고 싶어 했었다. 오페라도 같이 보고, 판소리 공연도 같이, 영화도, 음식도... 그에 반해 난 그에게 해준 게 거의 없었다. 한국에 대해서 물어보면 그저 아는 만큼 대답하는 정도? 그럼에도 그는 거의 모든 주말에 나를 만나기를 원했다. 어떤 때... 그가 주중에 학술회의나 서울에 있는 학교에서 초빙 강의할 때도 날 초대하곤 했었다.
아! 그리운 20대 중반... 20년을 훌쩍 넘겨버린 너울에 아른거리는 추억들... 격랑에 요동쳤던 나의 20대! 그중 한 토막에 새겨진 그와의 우정, 그런 그를 보러 독일에 간다는 생각이 나의 20대 중반을 다시 소환했고... 2018년 늦봄 여행에 대한 짜릿한 스릴을 더했다.(나 4기 암 환자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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