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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창작

4기암과 11년 살기-딸과 4기암 아빠 1

by 힐링미소 웃자 2021.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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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가 잘 먹고 잠만 잘 자도 웬만한 항암제 못지않다고 한다. 항암제는 암 환자에게는 마치 구세주나 불로초라도 되는 것처럼 뽐내지만 그와 비례해서 원치도 않는 부작용을 참 많이도 가져온다고 하는데, 내 경우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좋은 먹거리나 충분한 잠은 부작용은커녕 꿀맛이며 단맛뿐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나야 적게 먹는 소식이 스타일이 됐으니 여전히 적게 먹고 있으나, 잠의 경우엔 짧으나 단잠을 잤었는데... 그것도 옛날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여적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게 혹시라도 항암제 덕분이라는 생각이 간혹 간혹 들지만... 항암제를 먹어댈수록 몸이 시도 때도 없이 피곤해지니...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인 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요즘 딸과의 관계까지 더하고 나니 참 난감하고 미묘한 상황에 처해있다.

이 보배 같고 너무도 예쁜 딸과 아빠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기에 ...

그 아빠는 잠 못 자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걸까?

 

사실 딸과의 오묘, 미묘한 상황 말고도 난 피곤의 필요충분조건을 다 갖춘 경우이다. 하기야 뭐 피곤하지 않으려야 안 할 수 없는 조건을 다 갖춘 처지이니 딱히 불만은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일 붙잡고 씨름해봐야 맨땅에 헤딩이다.

 

뭐 그런 해결 안 될 과거의 일을 붙잡고 늘어져봐 야 치매밖에 더 오겠는가만, 되지도 않을 짓은 안 하는 타입이라서 암 4기라도 태평성대일 뿐이니, 때론 내가 바보가 아닌가도 의심해보기도 하고, 남들은,

“너 암 4기 맞냐? 다리 한 토막 잘라낸 것 맞냐? 폐 한 덩어리 떼낸 것 맞냐?”

라며, 파고드는 것을 보면 나도 어떤 땐 내가 정상적인 인간인가 한다.

 

 

절대적 피곤의 조건을 보자면, 콩팥과 그 위의 부신 한 조각 제거, 면역력의 특수부대인 적혈구와 백혈구 그리고 혈소판을 만드는 줄기세포의 어머니인 골수, 그 골수의 베이스캠프인 대퇴골을 암이 먹어치운 덕분에 잘라내고, 5개의 큰 조각으로 이루어진 조각보인 폐에서 가장 큰 엽을 잘라냈으니 산소도 남들보다 덜 빨아들이고, 7년간의 표적항암제 복용은 이러저러한 부작용에다가 피곤 타도의 선봉장인 갑상선 호르몬을 만드는 공장인 갑상선을 망가트리고 있다 하니... 뭐 피곤에 대항할 마땅한 뭐가 깡다구 빼고는 없을 듯한데, 거기다가 이 표적항암제인 보트리엔 트란 게 간 독성과 설사가 큰 선물로 답례를 하는데, 이 설사란 걸 하루에 예닐곱 번씩 하다 보면 두 눈이 해롱해롱, 두 손으로 문지방을 집고 기어 나오는 게 참 그렇다. ㅠㅠ

 

하기야 뭐 육체적인 스트레스야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제는 운명과도 같은 뭐가 돼놔서 그러려니 한다. 시골 사시는 80 넘으신 어머니를 더 먼 지방 병원에 대략 3개월마다 모셔다드리고, 모셔 오고, 시술로 인한 입원을 챙겨드리고, 며칠 후 문병도 가고, 자식은 4 기암에 여기저기 전이에 절뚝거리며 지팡이 신세인데, 간암 초기이신 어머니는 당신 걱정이 태산 같으신데, 그 하소연을 다 들어드리자니 끝이 없고, 애써 무시하자니 인륜이 아닌 듯하고. 이 모자간의 심리적 밀당이 참 피곤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느끼는 보람도 앞산보다 큰 풍선만 하니 정신 건강에 나쁠 것도 없다.

 

다음은 딸. 이 보석 같고 귀하디 귀한 딸과는......?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정도로 신비롭기 그지없음 딸아이이기는 한데... 이 청춘이 참 감정적이고, 감성적이고, 논리적이고, 히스테릭하고, 논쟁적이다. 언쟁도 불사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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