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검사용 피를 뽑았다. 5 통이면 준수한 편이다. 언젠가는 9통까지 뽑았었다. 그런 날은 갑상선 호르몬 검사일과 겹칠 때다. 그 많은 피로 뭘 하려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피 뽑는 분과 가벼운 농담을 했다.
“피가 어떤가요?”
“하하. 피가 어떤지는 전 모르겠습니다만... 피가 엄청 잘 나오네요.”
그 화학검사요원이 웃으며 답했다.
난 되물었다.
“진짜요?”
“네!”
“그래서 저 많은 피통이 금세 피바다가 되는군요.”
“네? 하하하”
그 유쾌함은 소변통을 보고난 후 싹 가셨다. 색이 진해도 너무 진해졌다. 요즘 소변볼 때마다 왠지 탁하다는 느낌이 강렬했었는데... 게다가 올 5월 경에 전립선 조직검사 한 번 해보자는 주치의 말씀도 있으셨는데...
"하여간 걱정거리는 혼자 안 오고 세트로 온다니까..."
난 속으로 중얼거렸다.
“으음...하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하자. 이따 맛난 아점이 기다리고 있잖아? 하하하”
생각 같아서는 곧장 식당으로 가고 싶은 맘이었다. 이상하게 피만 뽑으면 허기가 진다. 그래도 그럴 수는 없었다. 좀 더 참아야 했다. 이후로 치과와 CT가 있다. 이런 허기를 위해서 어제 요리를 해서 뱃속을 나름 채우긴 했었다. 난 보통 밥통의 3분의 2만 채우고 나머지는 비워 놓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날은 좀 억울하다. 그래서 요리했다.
1. 무항생제불고기용돼지고기
2. 당근 2개
3. 대파 2개
4. 양파 큰 거 2개
5. 통마늘 둘로 쪼개 20알
6. 국간장 1큰술
7. 진간장 2큰술
8. 매실 2큰술
9. 친환경 재배 고추로 만든 고추장 1큰술
10. 고향집 썬파워 태양초 고춧가루 2큰술(분명 다음날 아침 설사 100% ㅠㅠ)
11. 요리 거의 익을 때 무농약 콩나물 한 봉지 분량 닦아서 토핑
그래서 결국은 새벽 화장실에 꽤 있었지만, 잘 먹어 행복했었다!
치과에 갔다. 4개월 만이다. 좀 빨리 갔다. 푹신한 소파를 골랐다. 치과만 유별나게 럭셔리 소파가 있다, 이 병원엔. 거기에 앉아 컴과 전용 스맛폰을 부팅 후 돈벌이를 시작했다. 요즘은 재미가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이 얘긴 나중에 하고 싶다. 몰두하려니 어디서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고개 들어 그쪽을 보니 그분이시다. 아담하시지만 팻 베네타 보다도 더 에너지가 넘치시는 포스시다. 난 이분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이분은 아주 소탈하시다. 또 겸손하시다. 얼굴엔 항상 미소다, 진료 때만 빼고? 아마? 난 일어나 45도 인사를 했다. 그분은 90도 인사를 하셨다. 황공해서 난 한 번 더 인사드렸다. 그리고 앉았다. 그런데... 내가 앉을 때까지 또 인사를 하고 계셨다.
진료실로 불려 갔다. 이분 또 1시간 진료하실 태세다. 옆에 간호사 샘이나 기공사 샘은 그저 180도 반원을 그리시며 나와 그 교수님 주위를 돌뿐이었다. 이 교수님과의 대화는 너무 길어 기억을 다 못하겠다. 하지만 주요한 건 이랬다.
“관리를 잘하고 계십니다.”
“교수님이 하라시는 대로 하는 맹종팝니다.”
“하하.”
“하하”
“특별하게 불편하신 데는 없으신가요?”
“아! 오른쪽 위요!”
“어떻게요?”
“며칠 전부터 그 일대 부위... 팽창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어제 아침부터는 통증이 왔고 혀로 스칠
때면 더 아팠습니다.”
“어머, 이런! 얼마나 힘드셨어요?”
“하! 그 정도는 아녔습니다, 교수님.”
사실 그랬다. 어제 아침부터 심한 통증이 오기 시작했었는데, 저녁때가 다가오자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진통제 있는 쪽으로 마음이 자꾸 갔다. 먹어? 말어? 그렇게 몇 번 했다. 하지만 이를 세심하게 닦고 가글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많이 먹어 뭐가 좋을까! 하면서. 그게 다 간으로 가잖아! 내가 먹고 있는 보트리엔트, 그거 간독성이 젤 쎄잖아? 지금 간으로 고생하시는 분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있잖아!
“통증... 어떻게 하셨어요?”
“참고 세심양치질...가글...그리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푹, 아주 푹 잤어요.”
사실 난 10시 못 돼 자고 도중애 일어났었다. 다음날 조영제 CT 쨈 부신피질 호르몬제를 먹어야 했다. 그렇더라도 다시 잠자리네 들어 4시 반까지 꿀 단잠을 잤다.
“잘하셨어요. 몸이 피곤하면 치아가 젤 먼저 영향을 받습니다.’
“예... 교수님.”
“아마 요즘 컨디션이 안 좋으셨을듯해요. 타과 기록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관리를 잘하고 계셔요.”
“다 교수님들과 간호사 샘들 덕분이지요. 사실, 교수님, 최근 일주일 넘게 설사 퍼레이드를 했어요. 거기다가 몸이 붓고, 얼굴이 붓고 그랬어요. 눈도 그랬고요. 자고 나면 눈탱이가 밤탱이처럼요. 그러더니 종장엔 잇몸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그래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면, 즉 면역력이 약해지면 치아 쪽부터 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게 바로미터가 됩니다.”
“아! 치아 쪽이 면역력 속 카나리아군요.?”
“뭐라고요? 하하하. 나도 그 말 써먹어야겠다!”
“하하하”
그분은 유쾌하게 웃으셨다. 그러면서 암환자에게 치아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시기 시작했다.
“그래서 암 환자들은 꼭 구강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셔야 합니다. 정기적인 검사가 필수입니다.”
“네...”
“체내 면역력의 균형이 무너지잖아요.”
“네...”
“그러면 곧바로 치아 쪽에서 반응을 합니다. 면역력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말은 어떤 이유로 생기는 염증에 면역력이 대응한다는 거고, 염증 쪽이 우세하면 각종 면역기관들이 총출동하겠지요?”
“그러게요.”
“ 그런데 치아 쪽이 영향을 젤 먼저 받는다는 말은 곧 그쪽 림프절이 바빠지게 된다는 말도 됩니다. 그래서 그쪽 귀가 아프고, 임파선이 아프고, 목구멍이 마치 후두염처럼 통증이 오고요. 두통도 동반합니다. 항암 하시는 분들은 그런 상황이 삶의 질에 절대로 유리할 리 없습니다, “
“그렇군요, 교수님.”
그 후 교수님은 많은 말씀을 하셨다. 그런 후 어제 통증이 나름 심했던 부위를 마취하겠다며 그 이유를 설명하셨다. 그쪽 치아 뿌리가 많이 녹아서 치아와 잇몸 사이가 벌어졌단다. 그 틈을 노려 이러저러한 놈들이 자리 잡고 있고. 그러니 뿌리 쪽까지 깊이 들어가 치료를 하셔야겠다는... 그런 후 열심히 그쪽을 하시는가 싶더나 아래쪽과 반대쪽 귀퉁이 쪽 치아들을 같은 방법으로 하셨다. 그런 후 다시 강의를 하셨다. 너무 바짝 다가오셔서 내 눈이 초점을 맞출 수 없었다. 그래서 뒤로 약간 물러난 후 두 눈을 더 크게 떴다. 그제야 그분의 눈을 볼 수 있었다.
나머지는 기공사 샘이 하실 모양이었다. 강의를 끝내신 교수님은 4개월 후? 5개월 후? 그쯤 해서 봅시다라는 말과 함께 건강하시라는 말을 하셨다. 그래서 나도 그분의 건강을 빌어드렸다. 그러고 난 후 남은 치료를 위해 눈을 감았다.. 그분이 가시겠지 하며. 나머지 부위에 대한 스케일링이 기공사님에 의해 시작됐다. 이분도 교수님 닮으셨는지 소곤소곤이시다. 뭐라고 계속 소곤거리신다. 난 잠을 자고 싶었다. 난 스켕일링할 때 꼭 졸립다.
스케일링이 끝나고 얼글을 덮었던 천이 걷혔다. 그때.
“잘 받으셨어요?”
“앗, 교수님!”
“마취를 해도 아파서 힘들어하시는 분들 많으신데... 잘하시네요.”
“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아~ CT에 한참 늦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조영제를 사용하기에 1시간 전에 가서 전처치를 받아야 했다. 시계를 보니 30분밖에 안 남았다. 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치과 진료실 나오면서 사진 한 장 부탁드렸다. 교수님 깜짝 놀라셨다. 난 종종 교수님들께 사진을 부탁드린다. 그러는 데엔 사유가 있다... 오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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