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새벽을 밝혀 집을 나섰다.
딸이 운전대를 잡았다.
조수석에서 스치는 풍경을 감상할 기회를 주는 딸아이에게 감사할 뿐이다.
이른 새벽임에도 차들이 많다.
붐비는 고속도로를 버리고 좀 돌아가기로 맘 돌리니, 이런 황송한 길이 나온다.
그래도 또 밀려 국도로 빠져나온다.
난 이런 분위기가 좋다.
몸 멀쩡할 땐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여행하곤 했었는데,
유별나게 국도, 그중에서도 옛 국도를 애정했던 게 떠오른다.
여유로운 풍경이 잠깐 보이더니...
아래처럼 도시화된 모습이 보인다.
경기도는 이젠 거의 도시
다시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얄밉게도 양보들을 안 한다...
본격적으로 밀리기 시작한다.
운전대를 여전히 잡고 있는 딸아이 옆모습을 본다...
대견, 감사, 안쓰러움....
얼마 후면 또 먼 곳으로 떠나겠지?!
귀한 존재, 많이 봐둬야겠다.....
내가 고향길을 얼마나 더 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아직 계시고, 내가 아직은 움직할만 하니 간다만...
고향길 굽었던 길은 신작로로 바뀐지 오래고,
그 신작로 위엔 검은빛 아스팔트 검버섯이 100프로 채웠다.
구불구불 게 살고 미꾸라지 살던 논둑길은 바둑판 줄로 바뀐 지 오래다.
내기 머물던 15살까지의 풍경이 아니다.
내 추억은 거의 없어졌다.
가슴 두근두근 첫사랑과 걷던 청다리 건너 황톳길도, 그 길가의 코스모스도 더는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지으셨던 집,
그 안의 넉넉한 공간
그 밖의 햇볕 따사로운 마루나 토방도
다 없어졌다.
소위 현대식이란 이름으로 다 바꿔버렸다.
내가 보기에 그건 현대식이 아니다.
집을 관통하던 바람길도 사라져서 온 집안이 퀴퀴한 냄새로 가득 찼다.
마루에 문을 달면서 대낮인데도 마루도, 방도 어둡다.
토방도 사라져서 마루에 걸터앉아 들을 바라보던 개방감도 사라졌다.
정나미가 떨어진다.
내 알던 어르신들도 다 세상을 뜨셨다.
친구들도 다 떠났다.
개 짖는 소리도 안 들린다.
이제 내가 고향에 갈 이유는
91세 아버지뿐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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