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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24년 4기암과 14년째, 척추전이

4기 암 14년째 겨울...특별함은

by 힐링미소 웃자 2024.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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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고향집에 다시 갔다 왔다. 밤이 되니 적막함이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아버지는 마치 오랜 옛날시절인 듯 대문을 안 닫고 주무셨다. 지난번까지는 내가 닫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나도 안 닫았다. 지금 시골에선 인구가 얼마나 적은 지 도둑 역할(?)할 사람조차 없을 듯하다. 그러니 문을 열어놓고 잔들 들어올 밤손님도 없을 듯하다.

 

 

얼마 안 되는 농사채에서 나오는 소출로는 월급으로 따지면 100만 원 조금 넘을까 하니 금 살 돈도 없다. 그러니 집안에 무슨 귀금속이 있을 리 없으니 도둑맞을 것도 없을 듯하다. 또 몇 푼 안 되는 돈인들 옛날처럼 집안 장롱에 넣어두는 것도 아니고 다 읍내 농협에 넣는다니... 밤손님들 수입이 많을 리 없다. 

 

개 키우는 집이 한 집 정도 될 듯한데, 어둠이 내린 후부터 새벽녘까지 개 짖는 소리 한번 안 들렸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기야 한 집에 한 명 있을까 정도의 인구밀도라서 돌아다닐 사람이 어딨으랴! 게다가 빈집도 부락마다 서너 채씩 되니 밤이 되면 으스스할 정도다.  

 

하지만 일단 고속도로를 타고 서산쯤 오면 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행담도를 지나면 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이어서 수도권으로 들어오면 차가 거의 서 있다시피 한다. 물론 나도 그들 중 하나다. 40년째인 수도권 삶이 사람들 어깨에 부딪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얼마 전 한 곳에 모이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군집은 한동안 이어졌고 얼마 전 끝이 났다. 

 

정형외과 교수님 말씀에 의하면 난 2013년쯤, 그러니까 11년 전쯤, 세상을 떴어야 했다. 그걸 피한 덕분에 난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살아오고 있다. 그런 처지라서 난 계획도 저 멀리까지는 안 세운다. 담날 정도다. 아, 물론 가장 긴 건 다음번 정기검사와 그 결과를 듣는 진료일이다. 그러나 과연 그때까지 살아있을까 하는 마음도 반은 된다.

 

그런 삶을 이어가면서도 나름 즐겁게, 웃으며, 농담하며 살 수 있는 건 나이스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있어서다. 나이스하게 말하자, 나이스하게 웃으며 살자, 내 가족에게도 나이스한 존재가 되자, 내 이웃들에게도 나이스한 사람이 되자, 그래서 날 에워싼 이 세상이 더 나이스한 곳이 되는데 일조하자... 그런 맘으로 살아오고 있다.

 

그런 나에게 남의 자유, 자율을 억압하는 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다. 그런데 얼마 전 내가 사는 세상이 타율과 억압의 도가니가 될 뻔했다. 그 전말을 보면서 사는 이유, 목적이 무엇이 되어야 할까를 또다시 생각했다. 또한 그 엄청난 인파들을 보면서 뒤에 남기고 온 시골집 그날 깊은밤 정적을 떠올렸다. 둘 다 비현실적이었다.  올 12월, 4기 암 진단 14년째 마지막 달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더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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