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다시 정형외과 교수님과 마주 앉았다. 다리의 통증은 여전했다. 이건 분명 지독한 운명이었다. 암, 그것도 4 기암, 진단과 동시에 폐 전이암도 같이 진단, 폐 잘라내기, 엄청남 부작용의 표적 항암, 그리고 1년 반이라는 상대적으로 짧디 짧은 완전관해 쾌락, 이어지는 뼈 전이, 육종성 변이에 의한 골육종... 그리곤 다시 벼를 짤라 낼지도 모를 수술 예고...
“한 달 정도 되신다?”
“예, 교수님.”
“그런데 그 약은, 항암제 말고, 언제 마지막으로 드셨어요?”
“아, 그 지혈... 때문에?”
“예.”
“아마 5일 전에요?”
“그런데, 그 약은 엄청나게 센 약인데, 왜 드시나요?”
“아, 그게... 제가 허혈성 뇌졸중 증상으로 응급실에 온 후부터...”
“뭐, 어쨌든…. 알았습니다. 5일 전에 마지막으로 드셨다?”
“예!”
그 교수님은 조금은 피곤해 보였다. 내가 듣기에 이분은 ‘자르기’ 전문이라 들었다. 난,
“아마 이분은 온갖 환자들의 온갖 뼈를 다 자르시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난 또 다른 칼잡이를 만나게 될 운명이었는데….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이건 내가 전날 영상의학과나 내 주치의 선생님한테서 들은 말과는 많은 차이가 나는 일이었다.
“이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라고, 난 혼잣말을 했다.
어쨌거나 저번 ‘칼잡이’ 선생님도, 이번 선생님도 ‘칼잡이’라고 했을 때 연상되는 이미지와는 달라 보였다. 그리 크지 않은 체구와 상대적으로 마른 외모였다. 이 ‘칼잡이’ 선생님은 손가락 하나로 연신 그의 안경을 스치며 오른쪽 눈가를 비볐다. 아주 반복적이었는데, 마치 틱처럼 보였다. 전에 이 병원 대합실에서 틱장애에 대한 전문가의 상담 영상을 본 적이 있었는데, 이분도 그 선생님이 필요할 듯 보였다. 같은 병원이고 하니…. 어쨌든 예나 지금이나 난 모든 외과 의사들을 존경한다. 아니 외경심 같은 걸 갖고 있다. 난 그 정형외과 선생님과의 인연이 꽤 오래갈 듯하다는 느낌이 왔었지만, 딱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논리적인 느낌’이란 게 가능이나 한 일일까마는....
“일단 좀 더 관련 선생님들과 상의해본 후에 이렇다 저렇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교수님”
“우선 나중에 봐요.”
“예...”
난 그의 진료실을 나왔다. 밖의 복도엔 환자복을 입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난 볼과 이마가 후끈해져 옴을 느꼈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난 그 초라함을 감추고 싶었다. 애써 의연한 척도 해보거나 자연스러운 몸짓과 행동을 하고 싶었다. 그럴수록 더 어색해졌다. 그 어색함을 가리려 하는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환자복을 입고 있는 게 부끄러운 건가? 누구나 아프면 병원에도 오고, 필요하면 입원도 하는 게 아닌가? 입원하면 환자복을 입어야 하는 거고!”
라고 반문해봤다.
간병인이 미는 휠체어는 어느새 홀로 접어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돌아가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휠 체에를 탄 나의 모습이 잘 닦여진 엘리베이터 문에 비췄다. 어색했다. 두 번의 난이도 있는 수술을 받았을 때도 내가 내 다리로 걸을 수 없는 이유로 휠체어를 탄 적은 없었다. 그럼 내가 느꼈던 초라함과 부끄러움은 환자복을 입은 내 모습 때문이 아니라, 내 두 발로 걸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나온 것이었을까...?
이런저런 상상의 강 위에 내 느낌과 추측을 얼마나 띄웠을까? 내가 탄 휠체어는 어느새 병실 앞에 다다랐다. 안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소리는 분명 드라마 속 탤런트들의 소리였음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가녀린 목소리를 낼 옆 병상 아저씨의 부인은 아녔기에.
“또 왔군, 이 시끄러운 TV가 있는 병실로….”
라고, 중얼거리며 난 내 침대가 있는 쪽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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