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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23년 4기암과 13년째

전이 관련 마지막 진료 1: 새벽이 날 깨워 땅 위로 내려 놓고

by 힐링미소 웃자 2023.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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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믿자 

그리고 간절히 원하자.

 

 

이른 아침, 그러니까 아직 어둠이 물러날 기미가 없는 시각, 이를테면 겨울 초입의 새벽 4시는 아직 칠흑이다. 그 시간에 난 일어났다.

뭐, 사실 2시 반에 1차로 깼지만.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 그건 비공식적 비몽사몽 기상였다. 표적치료제 2차 약인 인라니타로 바꾼 후, 꼭 그 시각 전후해서 일어나게 된다. 버티려 해도 안 된다.

간밤 10시경에 잠자리에 들었으니 그래도 그리 억울해할 일은 아녔다. 뭐, 4시간은 잤으니…  아젯밤 그 숙면은 뭣 때문이었을가 한다. 일종의 사전 보상?

보통은 10시 취침, 12시 30분 설사 1차, 02시 30분 2차 설사, 4~5시 3차로 이어지는 비몽사몽 화장실 호츨로 이어지는 밤이다. 이 약의 부작용인 살사는 집요한  훼방꾼 역할이다.  이 몽유도원도 비스므리 수면은 올 3월부터 바뀐 약 인라이타 덕분이다. 

 

 

어쨌든, 오늘은,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살금살금 화장실로 갔다. 동족을 깨우는 싸가지 없는 짓을 방지하기 위해서 였다. 또 조용히 도둑고양이 세수 머리를 감기 위해서였다. 뭐, 그냥 가도 됐지만 뒷머리가 베개에 심히 눌렸다. 그걸 막을 요량으로, 매일이 아닌 이틀에 한 번 머리 감을 요량으로, 뒷머리를 거의 해병대 수준으로 깎았음에도 눌린다. 유독 머리가 빨리 자라는 까닭이다. 오~ 항암제여...

머리를 감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세웠다. 오늘 전투에 대비해서 정신에 앞서 머리부터 세웠다. 전투에 임하는 수탉이 벼슬을 세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5시에 집을 나서기로 했다. 그보다 더 빨리 나가면 병원 주차장 1번 선수 입장일 듯해서었다. 그런 기록은 의미가 없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명성만큼이나 무의미 일루션이다. 

5시 쫌 넘어 차를 뺐다. 헤드라이트가 길을 안내했다. 앞집 차 밑에서 잠자던 하얀 고양이가 등을 고추세웠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그의 눈을 찔렀던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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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에어리어는 새벽에 참 조용하다. 한강에 연했으면서도, 지리적으로도 서울 중간쯤 어디임에도 불구하고 조용하다. 개발이, 아파트촌이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그리고 높은 달동네라서 더더욱 그럴 거라 믿는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아파트 콘코리트 마천루에 포위된 섬이다. 사실 내가 사는 한 응큼만큼의 땅덩어리를 빼고는 다 아파트 촌이니...말이다...

내가 서울이라는 거대한 해파리, 아니 아메바 같은 연성 유기체 속에 살기 시작한 지도 벌써 40년에 육박하고 있다, 물론 한 번도 서울시민이라고 뼈저리게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이 서울 속에 살다 보면 서울시민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고 메타포를 뿌렸다. 옆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말이다.

지난주, 그 친구가 네게 전화해서는 커피 한 잔 쏜단다. 남편은 어디에 두고 날 찾느냐고 물었더니. 어쨌든 보잔다. 카페에서 받아 놓은 주차권을 주고 싶단다. 내가 장애주차 단골이고, 차가 항상 필요하다는 걸 그니가 아는 모양이다. 탱쿠~

카페에서 이런저런 아바구를 까다가… 자기 동 주차장엔 롤스로이스 컬리건이 있단다. 내가 그런 차가 있다면 페라리는 우습겠다 했더니, 두 대나 주차 중이란다. 내가 놀란 토끼처럼 말했었다. 한번 가자. 보여다오.(진짜로 갔다. 두 눈이 반짝! 입이 쫙....)

 

“야~ 그거 중 하나만 팔아도 40년 쓰러지는 우리 집 몇 채는 사겠네!”

“아이유.. 뭘 그런. 시골에 논도 있으시면서."

”이런! 그 논 다 팔아도 친구네 아파트 경비실에 딸린 화장실도 못 사지. 알면서…“ 

 

우리 동네, 특히 내가 사는 바운더리는 묘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니 동네와 우리 동네는 하나였다. 길도 한 1m 될까 말까 한 거리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늘과 땅, 성 안과 성 밖과 같은 하늘천따지 간 차이다. 그래서 생각하는 게, 아파트에 사는 시민, 기타 지구에 사는 시민… 누가 그리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나 독일 가보고, 미국 동부에 서부 가봐도 가든에 트리에 2~3층이 상급이라던데...

내가 이 동네로 23년 전에 이사 왔을 때, 난 한강뷰 하나 보고 언덕을 넘어 산꼭대까지 올라가서 집을 샀다. 집이라고 하지만 전설에 고향에나 나올법한 생김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그 좋던 뷰도 친구동네 아파트 마천루 땜 날라갔다, 사라졌다.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새벽의 헤드라이트 불빛은 심해 속 랜턴 같다. 왜 그 심해아귀 같은.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난 민감한 동네사람들, 혹시, 깰까 봐 엑셀에 발만 얹혀놓은 모양으로 땅으로 내려왔다. 우리 집이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길바닥에서 바라보면 그런 모양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사는 길바닥, 그 위로 올라가면 산, 더 가면 돌연 절벽. 그러니 그 시간이면 대부분 잠 속에 잠긴 동네라 칠흑이고, 내 방만 불이 켜있다. 구름 속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느낌이다. 

병원애 도착하니 6시 쫌 안 됐다. 속도를 50 정도로 하고 왔던가 보다.. 서두를 아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내가 타고 다니는 차는 20년 된 차다. 그래도 화가 나면 시속 250은 넘긴다. 그렇잖아도 없는 살림에 병치레로 거의 다 날리고 있는 증이라 새 차 살 돈 없어서 있는 차 정비에 돈을 처박아서 그렇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보니 ’ 영‘타이머가 되버렸다. 부석을 슨차적으로 바꾸다 보니 성능이 번쩍번쩍! 

 

 

난 밤손님처럼 차에서 내렸다. 주차장은 빈자리가 대부분이었다. 전화번호를 '압'력 하고, 개인정보 아낌없이 바치겠노라는 곳에 터치 후 출입증을 받아 입술에 물었다. 손이 부족해서였다. 오늘은 목발을 하고 갔기 때문이었다. 오늘 보는 진료과 교수님께서 내가 만약 목발을 안 하면, 안 하고 병원에 나타나기라도 하는 걸 보시면 혼내신다. 아니 협박하셔서 그렇다. 

“목발 안 하고 다니시다 스크루 부러지면 다시는 안 봐줘요!”

 

오늘 일정이 좀 복잡했다. 혈검, 엑스레이, 뇌졸중과, 정형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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