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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에 홀로 핀 꽃 이리될 운명임을 미리 알았었더라면 따라나서지 않았을 것을 뿌연 안개 낀 언덕 너머 흐르던 물소리 알 수 없는 깊은 심연의 강으로 이끄는 유혹인 걸 알았었더라면 그렇게 발을 헛디뎌 이토록 쓸려오지 않았을 것을 그때 그 물소리 멜로디로 듣지 않았었더라면 더 이상 더 이상 이렇게 휩쓸리지 않고 어디든 갈 수 있었을 것을 운명, 넌 너의 작은 거짓말로 나의 두 눈을 빼앗고 두 귀를 막고 결국엔 아무도 찾지 않는 구석 이렇게 흐느끼고 있게 만들 것을 난 한때 생각했었지 네가 때론 다정한 눈길을 네가 때론 포근한 숨결을 내게 주는 어쩌다 한 번이라도 내게 주는 때론 내 편 일 수도 있을 거라고 하지만 이제 깨닫지 이렇게 빛마저 피하는 구석에서 웅크린 채 깨닫지 그저 그건 나만의 꿈 그저 꿈이었을 뿐 그랬었다는 것을 2021. 7. 9.
젖은 마음에 내리는 무지개 별빛 만약 어디에선가 문득 무지개를 본다면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 위 어디 만약 무지개를 본다면 그래서 두 팔 벌려 내가 살아있음에 대한 환희의 가사 그 환희의 속삭임을 무지개 위에 뜅겨 아름다운 노래를 엮는다면 색색 고운 칠선지 위에 환희의 가사를 뜅겨 생을 찬미하는 운율을 엮는다면 쏟아졌던 소낙비에 젖은 그대의 머리칼을 거둬 차가워진 슬픈 두 볼을 보듬어 그대의 시린 마음 위에 색색으로 뿌리련만 울고 있는 그대의 눈물 위에 색색으로 뿌려 기쁨의 눈물로 만드련만 내가 문득 만약 문득 비 갠 밤하늘 위 어디 무지개를 본다면 볼 수 있다면 그 위에 삶의 환희의 낱말을 던져 일곱 가지 별빛에 실어 그대의 슬픈 두 눈에 뿌리련만 색색 무지개 별빛 그대의 시린 마음에 쏟아지게 하련만 2021. 7. 5.
당신 존재의 아름다움 당신이 오늘 날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광장 속 그저 외톨이인 나 길바닥 위 흔하디 흔한 나 그때 당신이 날 보았습니다 날 보며 웃었습니다 나와 눈을 맞췄습니다 내게 눈인사했습니다 비로소 난 의미 있는 특별한 존재가 됐습니다 당신을 특별하게 대하겠다고 난 다짐합니다 당신이 광장 속 인파에 묻혀있어도 당신이 사람에 파묻혀 길을 걸어도 난 당신을 봅니다 당신을 보고 웃습니다 당신에게 다가가 눈을 맞춥니다 당신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당신은 언제나 특별합니다 당신은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당신이 세리라도 당신이 의사라도 당신이 사장이라도 당신이 어느 지방 관리라 해도 광장 속에서 길바닥에서 아무도 당신을 몰라본다 해도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당신이 내게 눈인사를 건넵니다 미소를 전합니다 비로소 당신과 나 특별한 그 누가.. 2021. 7. 4.
정기검사 결과를 보며 “1.22cm!” 얼마 전 받은 검사의 첫 번째 결과다. 가장 큰 전이암 크기가 그렇다고 했다. 난 특히 그 대장 암덩어리 영상을 보여달라고 부탁드렸다. 아래 문구 때문에, 사진 촬영을 교수님께 부탁드렸다. ‘사진촬영 및 녹음 금지’ 요즘 진료실마다 출입문과 진료실 컴퓨터 근처에 게시된 곳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 전이암 대장 덩어리에 대한 영상을 보면서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느꼈다. 그러나 암덩어리는 둥그런 알사탕 같은 구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2차원 종이 위에 그린 원이 아니다. “교수님, 대략 17억 개의 암세포들이 모여있겠군요...” “예?” “교수님, 암덩어리가 1cm쯤 되면 대략 암세포들의 개수가 10억 개쯤 된다고 들어서요...” “......” “대략 20여 개의 암덩어리들!” 이번 영상검.. 2021. 6. 30.
바닷가를 떠나며 그 하늘 구름을 떠나며 여름 어느 바닷가, 저 하늘에 뜬 솜털구름아… 내가 널 보는 이 순간이나마 이 순간이나마 미련을 데려가다오… 네가 흩어져 흘러가듯 네가 흘러 흩어지듯 이 미련, 더 머물고자 하는 미련한 이 미련을 데려가다오 나를 내 몸을 내 마음을 네가 가는 곳으로 같이 데려가 다오… 네가 흩어질 때 나의 이 미련도 흩어지게 해다오… 2021. 6. 27.
서해 해변 망중한과 CT검사 힐링 인천 어느 바닷가에 왔다. 바람이 참 좋다. 바닷가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소라의 옛이야기를 전해준다. 산꿩 울음소리, 조가비 소리와 하나 된다. 숲과 만난 바닷가가 주는 조화로운 소리다.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아직 덥지는 않다. 여기로 오는 길, 라디오에서는 오늘 수도권 일원의 기온이 30도에 근접할 거란 예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침 일어나자마자 챙겨온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펼치고, 그 위에 스테인리스 후라잉 팬을 올렸다. 불을 폈다. 아마 지난여름에 마지막으로 쓰고 남겨뒀던 두 개의 부탄가스일 것이다. 아직 불꽃이 쓸만하다. 이른 아침, 밥을 유리그릇에 담았다. 묵은 김치가 담겨있던 유리그릇도 통째로 챙겼다. 나무젓가락과 빈 페트병에 수돗물도 담았다. 식수로는 종이팩 생수를 골랐다. 그렇게.. 2021. 6. 27.
덤으로 주어진 귀한 삶, 해보고 싶은 것 원 없이 해보고... 얼굴도 팔자?? 대략 5일 전부터 내 사진이 공적인 장소에 상시 게시되고 있다. 난 암 진단 후 잠깐을 제외하고 내 사진을 노출한 적이 없다. 개인정보를 극단적으로 중시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냥 조용히 살고 싶은 이유가 더 컸다. 얼굴을 보여야만 하는 이러저러한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었다. 방송이나 병원의 소식지나 암 환자 대상 투병 모임 등에서. 그리고 몇몇 소규모 단체에서도 참여를 권했었다. 지금도 그렇고. 언젠가 몇 번, 소중한 몇몇 블로그 이웃님 몇분들께서 오프 모임에 초대하신 적도 있고, 내가 치료받는 곳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신 분들은 계셨고, 지금도 계시다. 그러나 다 정중히 사양했었다. 그러다가 이 조그만 공동체, 사실 조그맣다고 하는 건 무리 인지도 모르겠다, 30,000명이 넘는 구성원이 있으니, 이 공동체.. 2021.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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