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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넘긴 듯했으나
소녀의 두 눈 속엔
아직 달빛이 머물렀다
그 달빛을 쫓아 다가온
소년의 두 눈에 놀라
소녀의 눈은
달만큼 커졌다
몇 잎 남지 않은 벚꽃이
소녀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그녀의 발걸음도 떨어졌다
돌아선 그녀 뒤로
긴 그림자가 깨어났고
그림자는 소년을 휘감아
끌었다
소년은 누웠고
소녀는 문 가에 앉았다
그는 올려다봤고
그녀는 내려다봤다
창호지 창살 사이로
스러지는 달빛은
그 둘을 재촉했다
소녀의 방문 밖 바깥마당엔
라일락 첫 봉우리
수줍은 듯 웃었고
그 향기에 취한 소녀의 얼굴엔
핑크빛 침묵이 흘렀다
침묵으로 요를 깔고
라일락 향기로
소년의 시린 마음을 덮었다
소년은 그때 알았다
침묵의 소리가 그토록 크고
침묵의 여운이
그토록 깊다는 것을
멀어지는 달빛을 기다려
문틈 사이로
은하수 강이 흘렀다
소녀의 두 눈은
촉촉하게 젖었고
꿈결 인양 나지막이
속삭였다
달빛이 다 스러지면
너도 갈 거냐고
떨어지는 벚꽃을 밟고
칠흑의 강을
혼자서 건널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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