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가는 건 언제나 두 가지를 선택하게 만든다. 일찍 가는 거, 재밌는 거. 그 둘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일찍 가는 건, 여유로운 루틴을 위해서다. 시작부터 헤매는 건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든다. 우선 운전부터 서두르게 된다.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 기름도 많이 든다. 아끼는 20년 된 차 엔진이나 미션도 더 빨리 망가져 갈 것이다. 병원 주차장도 난장판 일 것이다. 주차할 자리 찾느라 지하 2층에서 3층으로, 노상 주자장으로, 그도 안 되면 일렬주차…그 모든 것들이 스트레스를 불러오는 일들이다.
좀 일찍 가면 모든 게 순조롭다. 위에 든 내용들의 정반대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스트레스도 사라진다. 프로세스가 순조롭다. 커피 한 잔 뽑는다. 내 차로 돌아온다. 책을 몇 장 읽는다. 아니면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또는 아침을 먹을 수도 있다, 여유롭게. 그 아침을 위해서는, 푸드코트 열려면...최소 1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늘 아침 먼저 먹을 수는 없다. 커피나 빵도 매한가지다. 우선 혈액검사가 먼저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거의 빼먹지 않고 혈액검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혈액검사는 금식이다. 짧은 건 4시간, 아니면 8시간. 그래도 일찍 가고, 여유 부려 시간이 남는 게 부족한 것보다는 좋다.
차 안 대신 푸드코트에서 여유를 부릴 수도 있다. 빵 하나 사고, 아메리카노 한 잔 뽑아서 앉아있을 수도 있다. 난 늘 패드와 노트북, 책 한 권을 등가방에 넣고 다닌다. 패드나 노트북을 무거운 걸 들고 다닐 수는 없다. 패드는 400 그램, 노트북은 960그램짜리다. 한쪽 다리가 절단난 뒤로 그렇다. 한번 절단 났을 땐 그래도 어느 정도 무게의 노트북을 백팩에 넣고 다닐 수는 있었다. 그러나 같은 다리에 두 번쩨 사달이 난 뒤론 그리 안 된다. 기을어진 다리로는 그 무게가 감당이 안된다.
이도 저도 아니면 멍 때릴 수도 있다. 멍 때리다 지치면 이런저런 사람들을 바라볼 수도 있다. 구경 중에 최고라는 사람들 구경이다. 관찰이 아니다. 나와 눈 마주치는 사람은 날 보고 있던 사람이다. 나도 그 사람의 볼거리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난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고 본다. 눈이 있으니까. 보이니까. 난 결코 뚫어져라 보지도 않는다. 썩은 명태눈처럼 하고 본다. 그러니 어떤 땐 윤곽만 잡힐 뿐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 없이 볼뿐이다.
난 간간이 시계를 본다. 이후 진료일정을 본다. 그 일정을 소화한다. 난 몰아서 진료를 본다. 부탁하면 간호사 샘들이 그리 해 주신다. 이 병원을 하도 오래 다니다 보니 대부분 나를 기억하시나 보다. 물론 컴퓨터에 다 뜨겠고. 어쨌든 같은 날로 몰아 주시려고들 하신다. 감사!
정형외과에선 내가 ‘톱 3’라고 한다. 뭐가 ‘톱 3’인지는 모르겠다. 담에 힌 번 물어봐야겠다. 내 주치의 교수님께선 교수님 환자들 중에서 내가 젤 오래 산다고 하신다. 그렇게들 날 기억들 하시나 보다. 흉부외과 노 교수님께선 날 보시자마자 고생이 많다고 하시고, 위내시경 교수님도, 신경계 쪽 교수들도 다 비슷하게 그리들 말씀하신다.
달랑 한 개의 진료과를 들르는 경우는 거의 없는 이유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몇개가 줄줄이 사탕이었다. 거의 한 달간의 코로나 비스므리와 진을 빼는 설사, 극단적 피곤함, 급격한 체중감소인 상태에서 병원에 갔다. 그래도 좋았다. 병원에 일찍 도착해서, 여유가 있어서 그랬고, 당일 늘 뭔가를 기대하는 성격 땜 그렇기도 했다.
이번엔, 그러나, 시작이 멍청했다. 우선 맨 먼저 혈액검사를 받을 일정이었다. 4시간 금식이었다. 물론 영상검시도 금식검사였다. 그런데… 너무 여유가 있었나 보다. 주치장에 도착하자마자 모든 걸 잊고 집에서 갖고 간 바나나 한 개를 먹어버렸다. 그게 아침 6시 반이었다. 맛있다는 생각과 달콤하다는 생각이 채 들기도 전에, "아차! 금식!" 했다.
그러나 어쨌든 뭔가를 먹었기에 좋았다. 며칠간 논스톱으로 설사를 하다 보면 뭔가를 먹는다는 건 즐거운 일일 수밖에 없다. 반찬 투정이고 뭐고 없다. 사흘 굶어 남의 담 아니 넘을 넘 없다더니, 도둑질 안 할사람 없다더니 내가 딱 그 경우다. 내 인생이 그리돼버렸다.
포 시즌스 호텔 조식 정도의 상다리 부러질 식탁 앞에 앉아 있으면서 내 인생 참 대단하다라며 감탄한다면 이해가 되겠지만 겨우 바나나 한 조각을 주차장 한쪽 구석, 20년 된 차차 안에서 먹으며, 먹을 수 있음에 감탄하는모습이란…. 내 인생 이게 꿈이냐, 생시냐?
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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