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을 떠났다.
고향집 아버지 뵈러 갔다.
마당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대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정겹다.
이 집에서 15살까지 머물렀다.
지금은 당시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부모님께서 틈나는 대로 집을 고치셨기 때문이다.
문득 새가 보였다.
무슨 새인지 모르겠다.
예쁘다.
아버지 말씀은 귓가에 소용돌이쳤고,
관심은 일순간 오로지 저 새였다.
폰카가 아닌,
늘 갖고 다니는 카메라를 꺼내려는 순간,
날기 시작했다.
쏜살같았다.
순간 집 떠났던 나의 15살이 생각났다.
내가 만약 집에 머물렀더라면
떠날 수 있었을까?
우문우답이다!
저 새도 나뭇가지를 떠나야 날 수 있다.
새들은 난다.
날아야 된다.
운명이리라.
그러니,
날지 않는 새가 어디 그리 흔할까...
딸이 떠올랐다.
딸도 집을 떠났다.
안 떠났다면 유학할 수 있을까?
난 여행을 좋아한다.
15살 이후, 내 주소지는 30개가 넘는다.
내 주민등록초본을 떼보면 그렇게 나온다.
난 굴러다였던 삶이었다.
지금도 4기 암과 삶 속을 여행 중이다.
병원에서는 4기 진행성 전이암 환자.
나오면 멀쩡한 사람 흉내...
본래 그런 거 아닐까?
범위는 삶, 4기 암 인생은 부분집합!
고향집 바깥마당에서 밖을 바라보면
들이 보인다.
물 찬 논,
간밤엔 그속에서 개구리들이
그렇게 울어댔다.
상속받은 게딱지 농지 땜에
주소를 시골로 옮기던지,
농사를 짓던지,
경자유전 법칙에 의해서 농경 안 하면
팔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가 마련한 농토를
팔 수는 없을 것 같다.
또다시 서울과 고향집을 오가야 할 듯하다.
유랑인생이 또 시작될 모양이다...
간 김에 오늘 오전엔 예스러움을 향유했다.
혼자 하는 여행은 내 맘 가는 대로,
내 발길 가는 대로 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벗이라도 있다면,
시종일관 재잘재잘 지지배배는 않더라도
가끔씩은
실없는 소리 하며
얼굴 서로 보며
맹하게 웃을 수 있도 있겠다...
아버지가 심어놓으신 키위가
무성한 잎과
화려한 꽃들로
벌들을 부르고 있었다.
아랫채 담을 기어올라
지붕을 타고
안마당까지 넘어오고 있다.
작년 가을에 이 키위들 어마나 많이 열렸던지
내 입술이 푸르다 못해
얼굴이 온통 키위색
노리끼리했었다.
올해는 어떨지 모르겠다.
아버지께서는 90 평생을
저런 논에서 일하셨다.
난 열외였었다.
공부 잘해서
잘되라고
(잘된다는 게 뭘까??? 만은...)
손에 흙 안 묻히게 하셨었다.
그러나 난 잘 되기는커녕
40 중반에 4기 암 환자가 됐다...
길 위에서 먹는 라면맛이
오늘따라 맵다.
떠났으니 돌아가는 길이다.
또 떠나리라,
담주 이맘때쯤 유럽에서
30년 절친이 쌍으로 온다.
아마 같이 많이 돌아다닐 듯하다.
그럼 또 지팡이로 길을 물어
또 떠날 것이다.
머무르면 떠날 수 없고,
양손에 쥔 걸 놓지 못하면
새로운 걸 잡지 못한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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