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은 내게 의미가 깊은 해였다. 내 삶의 대전환이 이뤄지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그중 하나가 미국 동부 여행이었다. 정확히는 그 여행 중 내 몸의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아주 오랜 기간 형, 동생 하며 교류를 이어오던 미국 형의 초대로 미국 동부 일대를 여행했었다. 당시에 난 그 미국형 말고도 다양한 미국 친구들과 교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그들을 그냥 친구 내지는 동료들로만 생각했었지 실리를 취할 수 있는 인맥으로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만 말이다. 그래서 당시 뉴욕에 거주했었던 친구들을 만나는 걸 깜박했었다. 아마 그들을 만나서 시간을 보냈었다면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글쎄 그랬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나를 부른 프랭크형은 독점적인 면이 좀 있는 사람이다. 자기와 있는 동안엔 다른 사람들과 친교 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 타입이다. 아마 이태리 피가 흘러서 그럴는지도 모르겠다. 당시나 지금이나 그 형은 친구란 말보다는 형제로 표현하길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아마 보호본능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그 둘이 뒤섞였거나.
한참 후에 오리건 주로 여행갔을 때 난 그 형에게 아이다호에 꼭 한 번 갔다 오고 싶다고 했다. 아, 그 형이 60여 년 넘는 미국 동부 생활을 마감하고 정반대의 서부로 이사 간 후의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뉴욕 등을 여행한 게 2009년이고, 오리건에 간 게 2019년이니 10년이 지난 후였다. 내가 아이다호에 혼자 간다니까 얼마나 있다 올 거냐고 물었다. 난 한 일주일? 그랬었다. 그랬더니 난리가 났었다.
또 오리건 어디 공원에서 난 현지인 몇 명과 말을 트고 있었는데 그 형이 다짜고짜 화를 냈었다. 이유야 안전을 들었지만 꼭 그런 건 아닌 듯했다. 또 며칠 후 와인클럽에서 두 여자가 내게 로맨틱한 말을 걸으며 아이스 브레이킹 할 때도 날 감시하듯 옆에서 노려봤다. 그리고 재촉했다. 덕분에 매력 물씬 캘리포니아 출신 오리건 여사친들을 만들 기회를 놓쳤다.
어쨌든 2009년의 뉴욕은 다소간은 어수선해 보였다. 그 형이 당시 자기가 근무하던 벤틀리라는 회사의 중역실을 가리키며 한번 들어갔다 나올 거냐고 물었을 때 난 그보다는 얼마 전에 있었던 사태의 현장을 보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당시만 해도 큰 사건의 여파가 채 가시기 전의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나를 여기저기로 안내하다가 월스트리트를 지나며 황소상을 소개했었는데, 위 사진은 그때 찍은 것이다. 그때 7살밖에 안 됐던 샛별이 벌써 대학교 2학년이 됐다. 세월이 참 빠르다.
그때 돌았던 곳들이 참 다양했다. 필라델피아, 필라델피아 근교, 펜실베이니아, 뉴욕 맨해튼, 워싱턴, 볼티모어. 하지만 폭풍 속의 고요와 같았던 시기였다. 조금 즐길라 하면 피곤이 찾아오고, 술 조금만 마셔도 취하고... 그러더니 1년 조금 지나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세상에! 암 4기, 이미 양쪽 폐로 다발적으로 전이된 상태! 원인 없는 결과 없다. Cause and 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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