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전이암, 뼈 이식 부위 부풀어 오름에 대한 오해와 진실
내 부주의로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는 사달이 생겼다. 난 위 사진 속 부풀어 오른 게 근육인지 알았다. 다리뼈 이식 후 6년쯤 되면 생기는 일종의 선물인지 알았다.
심지어... 이렇게 근육이 다시 생기면 아마 머잖아 달릴 수도 있는 게 아냐? 하는 개그 희망도 가졌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내 짐작과 바람과는 정반대였다. 세상이! 세상이 그런 것이리라. 내가 바라는 것 따로 진실 따로...
그러니 그렇다고 울고만은 있을 수는 없었다. 일상으로의 복귀는 내가 살아 있음과 등가가 된다. 산 목숨이 죽은 목숨처럼 살 수야 없는 일 일테니까.
6년 후 뼈 전이 재발, 일상의 기쁨
일상은 계속됐다. 뼈전이암 재발 진단 후 6일째, 난 마을 봉사활동 회의를 주재했다. 2시간 넘게 진행됐다. 전날 찾아온 미을 소식지, 그것의 디자인, 색상 배치, 텍스트와 이미지의 비율, 개선 점등을 진지하게 그러나 활기차게 진행했다. 점심때가 지나고 있었다.
미소 또는 웃음은 엔도르핀 방출의 방아쇠, 스트레스 킬러 엔도르핀
자리를 옮겼다. 알아주는 중식집으로 이동했다. 화기애애한 자리, 식사가 즐거웠다. 다리 통증은 계속됐지만 웃으니 좀 덜한 듯했다. 웃음이나 미소는 참 강력한 호르몬을 분비한다. 엔도르핀! 스트레스 잡는 호르몬이다. 일소일소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식사자리에서의 미소와 파안대소, 돌아가며 하는 덕담, 그런 것들은 식사를 더 맛있게, 영양가 있는 음식의 영양가를 더 높이고, 더 많이 흡수하게 한다. 보너스는? 물론 삶에 대한 의욕을 높인다 것.
올드 템, 스포츠 쿠페 덴트로 맘 상하다
뼈 전이 재발 진단 후 6일 째, 나쁜 일만, 좋은 일만, 그렇게 칼로 무 베듯한 양태의 일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내가 애지중지하는 2004년식 스포츠 쿠페 옆구리를 심하게 긁었다. 굉장한 덴트를 먹었다. 맛난 식사 후 금융기관에 소식지를 가져다주는 과정에서 생겼다. 그곳 이사장님께서 편집 방향을 칭찬하시면서 자기네 금융기관에 몇십 부 보내줄 수 없냐는 말에 서둘러 가다 생긴 일이다. 아니, 정확히는 내 실수. 지하주차장으로 갔었으면 안 생길 일이었다. 출입구 고객들 통행을 위해 주차를 금지하려고 박아놓은 지름 10cm짜리 쇠 구조물을 밀고 지나갔다. 그 건물에 들어가려면 계단이 있었는데 뒷 범퍼 안 부딪치려다 50cm 높이 쇠 구조물을 못 본 탓이었다. 음... 이 차는 내 분신인데. 당시 몇 대 안 들어온 레어템인데...
일생이 생로병사라면 하루는 희로애락의 집합체다. 좋은 일도 있겠지 뭐! 하는 생각으로 그날을 보냈다. 아! 물론 수소문해서 기어이 덴트의 명인을 찾아냈다. 내 사는 곳으로부터 한참을 가야 했지만... 그 고수님은 10만 원에 원상회복에 준하는 복원을 했다. 세상에...
그나저나 인사 잘한 덕택이다. 난 누구를 보던, 그가 어떤 외모든, 하는 일이 뭐든 우선 존중과 배려 그리고 살가운 인사를 막 쏴댄다. 어떤 이들은 나의 그런 사교 방식을 색안경을 끼고 보지만... 오버다. 난 그저 존중하고 인연을 만들고 싶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타이어 집 팀장님이 판금의 고수를, 그 고수님이 덴트 전문가를, 또 그분이 덴트 고수를 찾아줬다. 맨 파워 체인의 멋진 결과물이다. 나처럼 올드카모는 사람들은 그런 명장급 고수를 많이 알수록 좋다. 아니 필수다!
나의 하루, 희로애락의 집합체
일단 그날의 희로애락 중 희로는 지났다. 이젠 애락이 생길 차례.
뼈 전이 재발 진단 후부터 난 집요하게 병원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빨리 봐달라고! 교수님 복귀하는 날 봐달라고. 당신들 같으면 이 비참한 기분, 골절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 어떻게 하겠냐고. 나처럼 하실 것 아니냐고.
그분들께서는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주셨다. 정형외과 쪽도 매 한 가지였다. 난 두 진료과에 연락을 하고 있었다. 여섯째 날도 역시 그런 노력을, 아니 갖은 애를 썼다.
예상 밖 당겨진 주치의 진료 날자, 뜻밖의 기쁨
쿠페 덴트를 복원하고 오는 길, 카톡이 몇 번 울렸다. 나의 진료일정에 대한 안내였다. 다음날 교수님 복귀 예정이라는 일반 문자도 같이 왔다. 진료일이 10월 중순에서 9월 말로 급 당겨졌다. 이쯤 되면 애락이다!
다음날 아침 난 뒷산에 올랐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다리뼈 통증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저 위 장면, 사실 우리 집 앞에 29층짜리 아파트 몬스터들이 들어서기 전, 20여 년을 즐겼던 광경이다. 이젠... 현관문을 열고 나와 산으로 가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뭐, 하기야 20여 년 독점했었으면 됐지 뭐...
벌써 코스모스의 물결... 잠자리도 날고...
주유카드 발급과 직접 수령, 몇만 원의 행복
여전히 6일째, 이날 차를 잠깐 세우고 길바닥에서 빵을 먹고 있는 장면이다. 이날은 보험사 고객센터에 갔다 오던 날이다. 그리고 새로 발급받은 카드를 찾으러 서초동 배송업체에 직접 가는 길이기도 했다. 9월 중 그 카드로 7만 원 이상 주유하면 거금을 캐시백 해준단다. 그런데... 카드는 진작에 발행됐는데 배송은 9월이 지나고서야 된다나! 그럼 몇만 원이 없어지잖아! 직접 가서 찾아오는 수밖에.
통장님들 60여 명 앞에서, 그 행사에 힘 내기 위해 소고기 된장찌개를
다음날, 뼈 전이 재발 진단 7일째, 난 그날 우리 마을 통장단 60여 명 앞에서 잠깐의 인사말과 함께 마을 소식지를 뉴스 소외계층에게 골고루 배부해달라는 부탁의 말씀이 예정된 날이었다. 밥 든든히 먹고 싶었다. 웃으려면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된장찌개로 유명한 식당에 갔다.
이 집 된장찌개는 아주 수준 놓은 요리다. 저 안에 한우 엄청 들어간다. 된장도 재래식! 어째 게눈 감추듯 할 수 있으랴!
여럿이 함께 하는 밥맛이 내게 나눔과 사교의 시간에 대한 감사의 맛이라면, 혼자서 먹는 밥맛은 사색과 자유의 시간에 대한 수행의 맛이다. 간간이 눈을 들어 창밖을 봤다. 단충이 계절을 귀뜸해 주는 시간, 살아있음에, 맛난 음식 먹을 수 있음에 눈물이 났다.
갑작스러운 의문의 전화
맛난 음식을 한참 즐기는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번호였다. 잠깐의 망설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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