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엔 못 내려갔다. 귀성 준비 다 해놓고도. 갑작스러운 코로나 확진 때문이었다. 난 차마 사정을 말씀 못 드렸다. 91세 아버지는 홀로 계시다. 그렇잖아도 자식 암 투병에 노심초사하신다. 게다가 당신 60년 동반자도 하늘나라 가셨다. 우울증이 심하실 것이다. 작은 아버지 내외분께서는 아버지를 설날 아침상으로 초대하셨다. 하지만 내가 내려오길 기다리셨음에 틀림없다. 설 전전날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설날 아침 새해 인사 드리면서 숙부님 댁에서 아침 잘 드셨냐니까... 마침 떡국 끓이려던 참이었단다. 이런! 목소리에 힘이 없으셨다.
이번 설은 앞이 짧았다. 아버지께서는 내려오지 말라고 한 달 전부터 말씀하셨었다. 다리도 아픈데 그 긴 시간 동안 어떻게 운전할 것이며, 차는 또 얼마나 밀릴 거냐시며 안 와도 된다셨었다. 더군다나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넷째 동생께서 설날 아침에 모시러 온다고 했단다. 그러니 설날 아침에 혼자 있을 거라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그래도 난 내려갈 것이라고 말씀드렸었다. 그리고 사실 거의 모든 준비를 했었다. 지저분한 차 꼴을 못 보시는 아버지 맘을 위해서 넉달만에 세차도 했었다. 그리고 손녀가 독일에서 할아버지 몫으로 가져온 초콜릿도 챙겼었다. 산자며 약과, 홍삼 등도 일찌감치 트렁크에 실어 놨었다. 배며 사과 등 과일도 미리미리 박스에 넣어뒀었다. 선물 들어온 한라봉이며 오렌지 등도 역시 따로 싸놨었다. 내 속옷이며 양말 등 이틀밤을 묵기에 충분한 옷가지 등도 마찬가지로 캐리어에 다 넣어 놨었다.
그런데 어찌 알았으랴! 코로나 확진을 받을 줄을. 진짜 다음날을 알 수가 없다는 말은 진리다. 확진 전날 취재 때문에 약속된 어느 어르신을 만나러 갔었다. 그날따라 춥고 날씨도 안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좀 이상했다. 뭔가 몸살기가 올 것 같은. 그러나 그 외 어떠한 특이점도 알아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근처 마트에서 마스크 하나를 샀다. 그리고는 아버지께 전화드렸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번 설에 갈 거라고.
그랬더니 아버지께서는 내가 가면 먹을만한 것들을 사러 장을 좀 봐야겠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한달전에 하셨던 말씀은 어쩌면 진심이 아녔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역시연로하신 부모님 말씀을 곶이 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말은 허투루 나온 말이 아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안 내려갈 거라고 말씀드렸더라면 큰일 날 뻔한 일이었다.
난 그건 그렇고 건강은 어떠시냐고 여쭸다. 다 좋다고 하셨다, 한 가지만 빼면. 뭐냐고 여쭈니 어금가 아프고, 흔들린단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빨리 치과에 가시라고 권해드렸다. 자식이 당장이라도 내려가 직접 모시고 가면 얼마나 좋겠냐만, 치통은 통증 중 악질에 속하니 참지 마시고 빨라 가시라고 재촉했다. 아버지께서는 그러겠노라고 하셨다. 그런데 난, 실언을 하고 말았다. 선의였지만 그건 내 생각에 불과했음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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