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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번호 전화와 방사선 치료 제안-뼈 전이암 6년 후 재발 낯선 번호로부터 걸려 온 전화 내 스마트폰 화면에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듯한 전화번호가 떴다. 국번은 내가 다니고 있는 병원이 분명했다. 그러나 뒷번호는 낯설었다. 요즘 모르는 번호, 무심결에 받으면 패가망신할 수도 있다는 보도를 접해오고 있는 나다. 없는 살림에 4기 암 환자 주제인 내가 신불자라도 되는 날엔 인생 참 최악의 비참함이란.... 그런 생각도 순식간에 들었었고 또 오래간만에 맛보는 뚝배기 된장찌개와 돌솥밥! 그게 통화 땜 식어서... 식도락을 방해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벨이 서너 번째 울릴 때 왠지 꼭 받아야만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난 통화버튼을 눌렀다. 스피커엔 아주 낯익은 저음의 목소리가 내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거의 11년째 들어오고 있는 목소리였다. .. 2022. 10. 3.
6년 후 뼈 전이 재발-빠른 진료 요청과 일상의 기쁨 뼈 전이암, 뼈 이식 부위 부풀어 오름에 대한 오해와 진실 내 부주의로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는 사달이 생겼다. 난 위 사진 속 부풀어 오른 게 근육인지 알았다. 다리뼈 이식 후 6년쯤 되면 생기는 일종의 선물인지 알았다. 심지어... 이렇게 근육이 다시 생기면 아마 머잖아 달릴 수도 있는 게 아냐? 하는 개그 희망도 가졌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내 짐작과 바람과는 정반대였다. 세상이! 세상이 그런 것이리라. 내가 바라는 것 따로 진실 따로... 그러니 그렇다고 울고만은 있을 수는 없었다. 일상으로의 복귀는 내가 살아 있음과 등가가 된다. 산 목숨이 죽은 목숨처럼 살 수야 없는 일 일테니까. 6년 후 뼈 전이 재발, 일상의 기쁨 일상은 계속됐다. 뼈전이암 재발 진단 후 6일째, 난 마을 봉사활동.. 2022. 10. 2.
뼈 전이암 재발-암통이 심해도 삶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 뼈 전이암 재발, 심해지는 암통 22일에 재발 진단을 받았다. 그로부터 5일째 되는 날 난 다시 충무로에 갔다. 마을신문을 수령하기 위해서였다. 인쇄소에 맡긴 건 22일이었다. 재발 진단받은 날 난 인쇄용 pdf를 인쇄소로 보냈고, 보통 2~3일이면 인쇄가 끝나서 나오는데 주말이 껴서 수령은 못하고 월요일에 가야만 했다. 재발된 곳, 통증이 심했지만 맡은 일은 해야 했다. 뼈 전이암 재발, 삶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 난 평범한 일상을 지키고 싶다. 내가 설령 진행성 4 기암 환자라 해도 평범한 일상을 꿈궜다. 폐를 떼낸 후에도, 다리뼈를 잘라낸 이유로 영구 장애 판정을 받는 후에도 역시 평범한 일상을 꿈꿨다. 암 투병은 왜 하는 걸까? 당연히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서 한다. 아니면 영영 떠나면 될 일이다.. 2022. 10. 1.
뼈 전이 재발 확인 후부터 치료법을 논하기 전까지 뼈 전이 재발 진단 1. 8.6cm X 8.6cm 크기의 암 덩어리로 크다. 2. 골절이 예상된다. 3. 다행스럽게 아직 뼈 안에 머물러 있다. 정형외과 교수님과의 대화 우선 위의 내용을 말씀하셨었다. 내가 그 설명에 대한 질문을 했었다. "원인이 뭘까요, 교수님?" "글쎄요...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네?" "우선, 전에 수술했던 부위에 암세포가 남았을 경우이거나 아니면 어딘가를 돌던 암세포들이 거기로 왔을 경우... 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 교수님, 치료방법은요?" "글쎄요. 우선 절제술이 떠오르지만 수술하기가 참 그렇습니다. 둘째로는 방사선 치료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대화가 좀 길게 이어진 후 그 교수님은 말했다. "제가 진료가 끝나도 기다릴 테니 우선 주치의를 빨리 보.. 2022. 9. 30.
뼈 전이암 재발-딸과의 대화, 치료법과 기분 아빠의 뼈 전이암 재발에 대한 딸아이의 반응 오랜만에 대화가 이어졌다. 늦은 아침을 먹은 딸이 아빠한테 이것저것 물었다. 이런 일은 아주 오랜만에 생기는 일이다. 이 대화 후에 난 편안함을 느꼈다. 아빠 아픈 것에 대해서 말이 없던 딸이었다. 아마 오해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예 무관심이라도 한 것 마냥… 사실 이 아이가 그렇게 말이 많은 편은 아니다. 안 좋은 것들에 대해서는 특히. 어찌 보면 속이 깊을 수도 있고, 어쩌면 속으로 끙끙대며 삭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느 경우든 스트레스 받을 일임엔 틀림없다. 아빠가 딸에게 그런 부담을 주는 것에 대한 죄책감? 아니면 미안함은 늘상 있는 일이다. “아빠, 아빠 암 재발한 것 할아버지께 말씀드렸어?” “아니.“ “아빠! 그럼 나중에라도 할아버지께 말씀드.. 2022. 9. 28.
뼈 전이 재발 증상과 대응, 뼈 전이 재발 진단 재발의 증상은 있었나? 있었다. 그게 명확했던 불명확했던 있었다 1. 재발 부위에 통증이 있었다. 문제는 간헐적이었다는 것이다. 2. 그 부분에 경계가 명확한 돌출이 생겼다. 난 그걸 근육으로 알았다. 3. 몸무게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난 4 기암 진단 후에도, 폐 수술 후에도, 심지어 뼈 절제술을 받고 나서도 63.5kg 전후를 유지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59kg 전후다. 4. 지속적으로 피곤했다, 언젠가부터. 5. 항암제 복용 이후 내내 하얗게 변색됐던 모발과 체모가 검정색으로 변하기 시작 재발 부위 통증 걸을 때 심한 통증을 느낀 적이 많았었다. 문제는 단속적이면서 간헐적이었다. 만약 지속적이고 항상적이었다면 벌써 무슨 수를 썼었을 것이다. 앉아 있을 때 그 부분이 바늘로 찌르는 듯한.. 2022. 9. 26.
폐전이 뼈전이 삶의 고단함 폐 전이 뼈 전이 4 기암은 고단한 삶 4 기암과 오래 하고 싶었다. 지금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순탄치는 않다. 일정한 간격으로 큰 시련이 찾아온다. 그 시련이 오기 전 경고가 먼저 오기도 하지만 나도 의료진도 무시하고 만다. 경고를 무시해서 오는 그 시련은 아주 큰 생채기를 남긴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런데도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4기 암과 오래 함께 한다는 건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제는 mri검사 결과를 보러 갔다. 담당의나 나나 크게 당황했다. 결과를 보고 … 난 사실 당황을 넘어 황망했다. 내 삶에서 부정적인 예감은 언제나 일치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사실 좀 더 여유를 갖고 되돌아보면 내 삶에서는 유독 그랬던 거 같다. 이번도 그렇다. 뼈.. 2022.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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