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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창작99

때론 생각을 멈추고 입을 닫는 이유 난 암 진단 후부터 멍 때리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진단 직후엔 할 말을 잃어 멍 때렸고, 예후가 불량하다는 교수님들의 진단을 듣고는 할 말이 없어 멍 때렸다. 그러다 암에 대해 좀 알게 되면서 내가 평균보다 더 살고 있다는 걸 알면서 들키기 싫어 멍 때렸다. 내가 멍 때릴 때는 장소를 고른다. 멍 때릴 땐, 말을 안 하거나, ‘아~아~’ 나 ‘멋있다, 좋다’와 같은 몇 안 되는 단어를 반복적, 아니면 어쩌다 한 번, 나지막한 소리로 내기에, 옆에 아무도 없는 장소를 고른다. 그리고 되도록 옆에 아무도 없는 곳을 고른다. 아무도 내게 말 걸 일 없는 장소를 고른다. 뭐, 부담없는 이라면, 옆에 있어도 좋을지 모르겠다. 말은 관계를 위해서나 의사소통을 위해서나 적을수록 좋다는 생각에서... 이해보다는 오해.. 2021. 7. 18.
당신의 입맞춤 당신이 그날 내게 온 건 범죄입니다 당신이 당긴 사랑의 불꽃은 심각한 방화입니다 그 순간 당신이 내 입술에 당신의 입술을 댄 그 순간 심각한 폭력의 순간입니다 내 심장을 폭발시킨 폭력의 순간입니다 그러나 난 사랑의 감옥에 갇힙니다 당신이 만든 사랑에 갇힙니다 당신이 아니고 내가 갇힙니다 사랑의 묘약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꿉니다 당신이 그날 내게 온 건 범죄입니다 그날 내게 한 입맞춤 잠자던 사랑을 선동한 심각한 범죄입니다 2021. 7. 12.
구석에 홀로 핀 꽃 이리될 운명임을 미리 알았었더라면 따라나서지 않았을 것을 뿌연 안개 낀 언덕 너머 흐르던 물소리 알 수 없는 깊은 심연의 강으로 이끄는 유혹인 걸 알았었더라면 그렇게 발을 헛디뎌 이토록 쓸려오지 않았을 것을 그때 그 물소리 멜로디로 듣지 않았었더라면 더 이상 더 이상 이렇게 휩쓸리지 않고 어디든 갈 수 있었을 것을 운명, 넌 너의 작은 거짓말로 나의 두 눈을 빼앗고 두 귀를 막고 결국엔 아무도 찾지 않는 구석 이렇게 흐느끼고 있게 만들 것을 난 한때 생각했었지 네가 때론 다정한 눈길을 네가 때론 포근한 숨결을 내게 주는 어쩌다 한 번이라도 내게 주는 때론 내 편 일 수도 있을 거라고 하지만 이제 깨닫지 이렇게 빛마저 피하는 구석에서 웅크린 채 깨닫지 그저 그건 나만의 꿈 그저 꿈이었을 뿐 그랬었다는 것을 2021. 7. 9.
젖은 마음에 내리는 무지개 별빛 만약 어디에선가 문득 무지개를 본다면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 위 어디 만약 무지개를 본다면 그래서 두 팔 벌려 내가 살아있음에 대한 환희의 가사 그 환희의 속삭임을 무지개 위에 뜅겨 아름다운 노래를 엮는다면 색색 고운 칠선지 위에 환희의 가사를 뜅겨 생을 찬미하는 운율을 엮는다면 쏟아졌던 소낙비에 젖은 그대의 머리칼을 거둬 차가워진 슬픈 두 볼을 보듬어 그대의 시린 마음 위에 색색으로 뿌리련만 울고 있는 그대의 눈물 위에 색색으로 뿌려 기쁨의 눈물로 만드련만 내가 문득 만약 문득 비 갠 밤하늘 위 어디 무지개를 본다면 볼 수 있다면 그 위에 삶의 환희의 낱말을 던져 일곱 가지 별빛에 실어 그대의 슬픈 두 눈에 뿌리련만 색색 무지개 별빛 그대의 시린 마음에 쏟아지게 하련만 2021. 7. 5.
당신 존재의 아름다움 당신이 오늘 날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광장 속 그저 외톨이인 나 길바닥 위 흔하디 흔한 나 그때 당신이 날 보았습니다 날 보며 웃었습니다 나와 눈을 맞췄습니다 내게 눈인사했습니다 비로소 난 의미 있는 특별한 존재가 됐습니다 당신을 특별하게 대하겠다고 난 다짐합니다 당신이 광장 속 인파에 묻혀있어도 당신이 사람에 파묻혀 길을 걸어도 난 당신을 봅니다 당신을 보고 웃습니다 당신에게 다가가 눈을 맞춥니다 당신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당신은 언제나 특별합니다 당신은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당신이 세리라도 당신이 의사라도 당신이 사장이라도 당신이 어느 지방 관리라 해도 광장 속에서 길바닥에서 아무도 당신을 몰라본다 해도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당신이 내게 눈인사를 건넵니다 미소를 전합니다 비로소 당신과 나 특별한 그 누가.. 2021. 7. 4.
바닷가를 떠나며 그 하늘 구름을 떠나며 여름 어느 바닷가, 저 하늘에 뜬 솜털구름아… 내가 널 보는 이 순간이나마 이 순간이나마 미련을 데려가다오… 네가 흩어져 흘러가듯 네가 흘러 흩어지듯 이 미련, 더 머물고자 하는 미련한 이 미련을 데려가다오 나를 내 몸을 내 마음을 네가 가는 곳으로 같이 데려가 다오… 네가 흩어질 때 나의 이 미련도 흩어지게 해다오… 2021. 6. 27.
덤으로 주어진 귀한 삶, 해보고 싶은 것 원 없이 해보고... 얼굴도 팔자?? 대략 5일 전부터 내 사진이 공적인 장소에 상시 게시되고 있다. 난 암 진단 후 잠깐을 제외하고 내 사진을 노출한 적이 없다. 개인정보를 극단적으로 중시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냥 조용히 살고 싶은 이유가 더 컸다. 얼굴을 보여야만 하는 이러저러한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었다. 방송이나 병원의 소식지나 암 환자 대상 투병 모임 등에서. 그리고 몇몇 소규모 단체에서도 참여를 권했었다. 지금도 그렇고. 언젠가 몇 번, 소중한 몇몇 블로그 이웃님 몇분들께서 오프 모임에 초대하신 적도 있고, 내가 치료받는 곳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신 분들은 계셨고, 지금도 계시다. 그러나 다 정중히 사양했었다. 그러다가 이 조그만 공동체, 사실 조그맣다고 하는 건 무리 인지도 모르겠다, 30,000명이 넘는 구성원이 있으니, 이 공동체.. 2021.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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