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삶392 새벽을 가로질러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잠을 깨워 미안하다며 울음을 삼키며 전화했다 미리 말했어야 했다며 더 이상 그리움을 태울 힘조차 없다 했다 그날 새벽 비는 차가웠고 내 마음은 뜨거웠다 폰이 울리고 언제 도착하냐는 가녀린 목소리가 바람결에 날렸다 2시간 후면 널 볼 수 있다고 했다 말하기엔 말할 게 너무 많았다 한없이 수다스러운 침묵을 두 눈에 실어 내게 보냈고 나도 보냈다 간절한 그리움 한가득 두 얼굴 하나가 될 때까지 이마를 비볐다 포개진 두 입술 타오르는 숨결을 훔쳤다 쿵 꽝 거리는 두 개의 가슴 하나가 될 때까지 한없이 느꼈다 이제 출발하면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다 땅거미 지면 톨게이트를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말했다 그날 첫 질문 마지막 대답이 그랬다 그녀의 눈물은 불어오는 바람에 날려 내 볼에 떨어졌고 .. 2021. 9. 14. 달빛이 스러지면 자정을 넘긴 듯했으나 소녀의 두 눈 속엔 아직 달빛이 머물렀다 그 달빛을 쫓아 다가온 소년의 두 눈에 놀라 소녀의 눈은 달만큼 커졌다 몇 잎 남지 않은 벚꽃이 소녀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그녀의 발걸음도 떨어졌다 돌아선 그녀 뒤로 긴 그림자가 깨어났고 그림자는 소년을 휘감아 끌었다 소년은 누웠고 소녀는 문 가에 앉았다 그는 올려다봤고 그녀는 내려다봤다 창호지 창살 사이로 스러지는 달빛은 그 둘을 재촉했다 소녀의 방문 밖 바깥마당엔 라일락 첫 봉우리 수줍은 듯 웃었고 그 향기에 취한 소녀의 얼굴엔 핑크빛 침묵이 흘렀다 침묵으로 요를 깔고 라일락 향기로 소년의 시린 마음을 덮었다 소년은 그때 알았다 침묵의 소리가 그토록 크고 침묵의 여운이 그토록 깊다는 것을 멀어지는 달빛을 기다려 문틈 사이로 은하수 강이 흘.. 2021. 9. 14. 시나몬 라테에 얹힌 하트 어깨를 잠시 스쳤나 봅니다 당신은 잠시 뒤돌아 봤고 나와 당신의 눈은 순간 만났습니다 난 웃었고 당신은 잠시 서있었습니다 난 두 팔을 벌렸고 다가온 당신은 미안합니다는 말로 사랑의 문을 열었습니다 당신은 손을 뻗어 내 폰을 가리켰습니다 하늘색 바탕에 흰색 번호로 새겨진 당신의 암호 폰을 다시 건네며 수화기 아이콘을 가리키고는 당신은 인파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피칸 시나몬 라테 위에 그려진 두 개의 하트 퇴근길 당신이 내게 선물한 메뉴 위에 난 새와 하늘과 구름을 얹었습니다 당신은 생크림 거품 예쁜 캐러멜 마키아토 위에 얹은 사랑과 바람과 창문과 발코니가 생각난다고 말했습니다 두 개의 하트가 없어질 즘 차를 몰아 공항 근처 바닷가를 달렸습니다 길 옆 하얀 건물이 파도에 부서질 때쯤 발코니와 창문과 바람에 날.. 2021. 9. 14. 추억을 위해 두 눈 감으리 어둠이 내리건만 창밖은 불빛으로 다시 환해지고 난 두 눈을 감는다 그해 봄에도 그랬다 어둠이 내리고 그녀의 눈길을 쫓던 내 눈길이 그녀의 눈동자에 닿았을 때 달빛 물든 배꽃은 그녀의 창백했던 두 볼을 복숭아 꽃물로 물들였고 그녀가 던지는 눈길은 식지 않는 별똥별이 되어 내 깊은 곳 어디 식지 않을 불길을 당겼다 붉게 물든 그녀의 입술이 내 이마를 덥힐 때 내 마음 파르르 떨었고 난 두 눈을 감았다 감긴 두 눈 속으로 별빛 된 그녀가 들어왔다 아 눈 뜨면 사라질 사랑이여 눈 감으면 찾아올 추억이여 2021. 9. 14. 동네 유지 모임에 꼽싸리 낀 4기 암 환자-반기 엊그제 회의에서 심각한 반란이 있었다. 임원 한 명이 회의 중에 마른하늘에 번개 치듯 책상을 꽝! 하며 박차고 일어났다. 어찌나 강도가 쌨던지 태풍에, 해일에... 바닷가였었다면 바닷물이 다 뒤집힐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 탁자 위에 놓여있던 컵들이 흔들리며 그 안의 물이 튕겨 올랐다. 내 책상도 들썩들썩했다. 눈들이 다 휘둥그레졌다. "당신 말이야! 어디서 그따위 짓거리들을 배워 처먹은 거야?” “......” 그렇게 말한 분은 60 대 중반, 그 말의 목적지에 해당하는 분은 1년 후면 60. “어디 의자를 모셔다 회장 엉덩이 밑에 받쳐주고 말야. 그 엉덩이가 금딱지야! 그런 짓은 당신 남편한테나 해!’ “......” 어떤 사람은 쥐구멍이 어디냐? 하는 주눅들은 눈길들을, 어떤 이들은 누가누가 큰 눈을.. 2021. 9. 14. 4기암과 11년 살기-딸과 4기암 아빠 1 암 환자가 잘 먹고 잠만 잘 자도 웬만한 항암제 못지않다고 한다. 항암제는 암 환자에게는 마치 구세주나 불로초라도 되는 것처럼 뽐내지만 그와 비례해서 원치도 않는 부작용을 참 많이도 가져온다고 하는데, 내 경우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좋은 먹거리나 충분한 잠은 부작용은커녕 꿀맛이며 단맛뿐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나야 적게 먹는 소식이 스타일이 됐으니 여전히 적게 먹고 있으나, 잠의 경우엔 짧으나 단잠을 잤었는데... 그것도 옛날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여적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게 혹시라도 항암제 덕분이라는 생각이 간혹 간혹 들지만... 항암제를 먹어댈수록 몸이 시도 때도 없이 피곤해지니...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인 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요즘 딸과의 관계까지 더하고 나니 참 난감하고 미묘한 상황에 .. 2021. 9. 14. 희망 없이도 즐겁게 사는 방법을 배우는 2011년 벽두, 4기 암환자 진단받은 것, 희망 없이도... 즐겁게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 내려놓으며... 오늘을 즐겁게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 삶은 스스로는 아름답지 못한 것, 죽음이 있어 비로소 아름다운 것! 진실, 내가 4기 암 환자라는 것 내가 오래 살 거란 것은 거짓!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진실 어제도 내일도 오늘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일! 그래도 오늘이... 가장 덜 아픈 날, 내가 가진 현실적 날, 가장 행복한 날! 2021. 9. 13. 이전 1 ··· 44 45 46 47 48 49 50 ··· 56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