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삶/늦을 때란 없다68 Live Free or Die Live Free or Die! 내가 20대 초반에 알았던 어느 친구는 이 말에 무척 민감했다. 당시 그 친구는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 놀랍게도 스키 장학생이라 했다. 플로리다-해변-서핑, 그렇게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더운 곳에서 스키라? 첨에 무척 놀랬었다. 하지만 이 친구를 더 잘게 되면서 그게 그리 이해 못 할 바는 아녔다. 자유와 파격이 몸에 밴 친구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 친구는 머리가 무척 길었다. 마치 금발을 자랑이라도 할 것처럼. 그런데 그는 꼭 기타를 메고 다녔다.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여행 왔던 그는 서울거리를 거닐 때도 예의 기타를 메고 다녔다. 그가 귀국 후 자기 사진 몇장을 보내줬다. 그 사진을 보면서 자유가 뼛속가지 배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1. 12. 3.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암 환자 빵 사랑과 길가 풍경 그리고 대배기량 차 오늘 이른 아침, 시내에 나갔다. 서울역 정도에서부터 세상이 격랑의 세월로 빠져드는 듯 보였다. 간만에 광화문을 통과했다. 이어서 삼청동을 거쳐 도심 속 산을 통과해 성북동에 갔다. 거기서 좋아하는 빵집이며 좋아하는 오랜 친구를 만났다. 돌아오는 길은 광화문이 아닌 조계사 앞을 지나 명동을 스치며 남대문을 지나 서울역을 통과했다. 점심때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길마다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늦가을의 막바지이자 겨울의 초입인 11월 중순, 벌써 뭔가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졌다. 서울역에서부터 경찰관들과 경찰차량들이 도로 양쪽에 도열해 있다. 시내는 가로수고 뭐고 보이는 게 없었다. 그 긴 행렬은 끊일 줄 모르고 남대문께까지 여전했다. 그러더니 남대문을 스치면서 차선이 한두 개로 줄어들었고, 특이 차량들을 검문하.. 2021. 11. 13. 너무 늦을 때란 없다-백세주 미국 형 얘기 3, 두 가지 암의 그 여친 바로 그녀의 암이 문제였던가 보다. 갑상선암과 유방암! 하나도 아니고 두 개의 암을 가진 여자. 그런데도 사랑을 찾는 여자. 두 가지 암을 갖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여자와 함께 하고 싶어 태어나고 자란 곳을 떠나, 그것도 4박 5일은 운전을 해야 닿을 수 있는 곳을 향해 길을 떠나려는 남자. 그 두 사람이 한 집에 살며 부대끼며 살고 싶었던가 보다. 그런데 그러면 됐지 뭐가 또 문제였었을까? 그 형이 날 찾아온 것은 아픈 동생을 보고 싶은, 20년이 넘는 동안의 우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1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나와 있었지만, 간혹 간혹 물어보는 말들은 그가 뭔가를 고민하고 있고, 답은 못 내고 있고, 그것에 관해서 나와 얘기하고 싶어 한다는 것를 암시하고 있었다. 드디어 어느 날 내게 물었다.. 2021. 11. 12. 4기 암 환자 지역사회 데뷰-인사동 나들이 1 오늘은 모처럼만에 인사동에 갔다. 사실 모처럼이라고 할 순 없겠다. 10월에 한 번 가고 이번에 갔으니 두 번째라 해야겠다. 오늘은 몹시 췄다. 마치 겨울 예행연습 같은 분위기였다. 존경하는 두 분과 점심을 같이 하고 귀한 얘기를 들었다. 인사동은 내 20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정말 많이도 갔었다. 혼자서도 갔었고, 친구와도 갔었다. 때론 외국 손님들과도 갔었다. 20대 어느 한 토막, 대략 5년 여를 국제 NGO 서울 코디네이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외국에서 온 손님들한테 전통과 상업이 어우러진 장소로 그만한 데가 없다는 생각에 소개해주곤 했었다. 그 NGO는 시도 때도 없이 세계여행을 즐길 만한 재력이 있는 부자들의 클럽이었는데, 빈털터리였던 내가 어떻게 그 그룹에 꼽사리 꼈었는지 모르.. 2021. 11. 11. 너무 늦을 때란 없다-백세주 미국 형 얘기 2, 여친의 건강문제 내가 필라델피아 프랭크형 집을 갔다 온 2010년 경 이후, 그 형은 한국에 2번을 더 왔었다. 그러니까 내가 4기 암 진단을 받은 후에 그렇다는 말이다. 마지막에 왔을 때 내가 다니는 병원을 같이 간 적이 있다. 그때 그가 물었었다. “4기 암 환자로서 어때?” “뭘?” “4기 암이라 해도 금방 죽는 건 아니지?” “그럼. 형이 지금 보고 있잖아?” “그렇지?” “그런데... 왜 물어?” 그는 잠시 뜸 들인 후 말을 이어갔다. 저간의 사정은 이랬다. 그는 그의 마지막 결혼생활을 마감한 후 오랫동안 싱글로 있었다. 내가 동부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도 싱글이었다. 하지만 그와 소식을 주고받는 여자분이 계시다는 말을 했다. 문제는 그 여자분이 그 형과 정반대의 지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 지도를 반.. 2021. 11. 7. 너무 늦을 때란 없다-백세주 미국 형 얘기 1 2019년 10월 내가 오리건을 떠난 날, 그날을 기념해 백세주 드시는 그 프랭크란 형님은 나보다 대략 20~30살은 더 드신 양반이다. 이때리 혈통이라서 성도 전형적인 이딸리안이다. D’로 시작하는 걸 보니 말이다. 할아버지 때 대가족이 아메리칸드림을 좇아왔다 했다. 이 형의 아버님이나 어머님은 그러나 아메리칸은 됐어도, 아메리칸드림을 이루신 것 같지는 않다. 이 형 말을 들어보면 말이 아메리칸드림이지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던가 보다. 이 형의 아버님 대신 삼촌은 나름 아메리칸드림을 이루신 듯 들린다. 한 가지를 빼놓으면 말이다. 이딸리안들은 전통적으로 대가족을 선호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형 삼촌네는 전혀 대가족이 아니었다 한다. 어쨌든 나름 아메리칸드림을 이뤘으니 이 형을 대학까지 가리키실 수.. 2021. 11. 4.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이유 한동안 정신없이 바빴다. 첫째로 다른 포털에 포스팅했던 블로그에서 핵심적인 것들을 옮겼다. 둘째는 병원 진료가 몇 건 있어서 꽤 빈번하게 집과 병원을 오갔다. 셋째로는 참여하고 있는 주민단체에서 책임을 맡고 있는 교육강좌를 집행 중이다. 또 밥벌이로 하고 있는 일에도 신경이 곤두섰었다. 그러더니 그 바쁨의 정점으로 식구 중 한 명이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데 까지 이르렀다….. 먼저 2011년 부터 2021년 까지 내 몸에 일어났었던 일들에 대해서 3년 전부터 어느 포털에서 포스팅해오던 블로그가 있었다. 그걸 시작하게 된 건 정리를 위해서였다. 그걸 소중한 딸 샛별이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내 몸에 생긴 사단은 샛별이 너무 어렸을 때 생긴 일이었다. 그 아이가 2학년일 때 생긴 일이었으니, 아빠의 몸.. 2021. 10. 4. 이전 1 ··· 6 7 8 9 10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