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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삶 35-폐전이 폐암 수술 1_다른 의사선생님_다른 처방_ 부분적인 폐 수술 제안(2013년) 세 번째 인연을 맺게 될 교수님은 평균 대비 훨씬 크셨다. 진료실 뒷문으로 들어오시는 걸 본 순간, "아, 장신이시다!"란 생각이 들었다. 내 친구 중 캐나다 출신이 있는데, 전직 농구선수다. 대략 2m 10cm. 또 다른 친구, 뉴질랜드 출신, 2m 7cm! 그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교수님?” “제가 자료들을 미리 봤습니다.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고맙습니다, 교수님.” 그 교수님은 먼저 위로의 말을 먼저 건넸다. 그리고서는 내가 바로 전 병원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말씀도 하셨다. “일단 큰 것들 몇 개가 모여 있는... 어디... 어디... 예... 이 오른쪽 3 엽은 수술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수술요? 그런데 교수님, 양쪽 폐에 여기저기 많은 암 덩어리들.. 2021. 9. 22.
암삶 34-통제 불능 암덩어리들 볼륨 그리고 세 번째 병원으로 전원(2013년) 세 번째 병원에 발을 디뎠다. 원발암 진단을 받은 첫 번째 병원에서 즉각적인 수술을 권했고, 일사천리로 입원절차가 끝났었다. 그러나 폐 전이 4 기암이라는 진단에 대한 강한 부정은 확인 진료를 위해 내 몸을 두 번째 병원으로 향하게 했고, 거기에서 운 좋게 급행으로 원발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2년여 년 기간 동안 추적관리의 연속이었고, 엄청난 양의 방사선이 분사되는 영상검사의 연속이었다. 항암제나 그 어떤 대안도 없이 흐른 2년여 시간 동안 암의 개수와 크기는 놀라 자빠질만한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 난 하다못해 같은 병원의 흉부외과 진료를 부탁했고, 그 양쪽 폐에 포진하고 있는다발성 폐전이암 덩어리들의 규모와 분포가 도대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치료는 언감생심에 그.. 2021. 9. 22.
암삶 33-암 수술 후 좌절을 넘어 적극적 '긍정'과 ‘낙관’의 항암제를 먹겠다(2013년) 나는 '긍정' 하기로 했다. 내가 먹을 항암제가 없다는 사실도, 폐 수술도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내 몸에 수도 없이 많은 시한폭탄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도, 그리고 머지않아 서서히 죽게 되리란 사실도. 전원 의뢰서를 받아 나오는 길에 난 그 병원에서의 모든 기록과 영상을 발급받아 나왔다. 초진 기록, 수술기록, 추적검사기록, 약 처방전, 검사결과지 등을. 봉투에 넣으니 두툼해졌고, 영상 자료까지 더하니 가방에 넣어야 할 정도로 많아졌다. 이 병원에서 딱 24개월 동안 진료를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원했던 교수님과도 곧바로 연결됐고, 그 교수님의 배려로 빨리 수술을 받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무지막지한 크기의 암덩어리를 떼어낼 수가 있었고. 그 두 가지는 아주 감사드릴 일이었다. 물론 아주 어처구.. 2021. 9. 22.
암삶 32-암 수술 후 절망과 모욕적 전원의뢰서(2013년) 그 교수님은 이마를 찡그렸다. 얼굴엔 잔뜩 화가 나신 듯 울그락불그락... 그리고 내뱉듯 말했다. "이 선생, 이 사람, " "예, 교수님!" "이 사람 한 장 써줘!" "예?" "전원 의뢰서!" "아 예." 난 모멸감, 모욕감, 화남, 슬픔, 분노, 좌절, 서러움...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내 온몸의 혈관과 신경을 타고 요동치는 듯했다. 난 내 아이 둘, 그들의 두 얼굴로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가슴엔 서러움이 목구멍엔 아우성이 입안엔 가시에 할퀴어진 어휘들이 서로가 뒤엉키고 그 뒤엉킴이 목구멍으로. 그곳에서 아우성과, 그 아우성과 뒤섞인 가시들이 가슴속의 서러움과 버무려져서는 천만 근으로 응축되곤 온몸의 열로 녹아져 서러움과 분함으로 솟구쳐서는 두 눈으로 하염없이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2021. 9. 22.
암삶 31-"남겨두고 떠나기엔 제 아이들이 너무 어립니다." 눈물로 간청한 전원의뢰서(2013년) 해가 바뀌어 2013년이 되었다. 어김없이 그 교수님한테서 진료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 교수님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또한 애걸복걸 끝에 만나 뵀던 흉부외과 교수님도 납득하기 힘든 수술방법을 제시하셨기에 충격이 컸었다. 그분께서 제시한 수술방법을 받아들인 분께서 1년인가 더 사시고 돌아가셨다고 하시니... 내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당시의 교수님께 힘든 부탁을 하기로 맘먹고 그 교수님 진료실에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예! 좀 어떠세요?" "아, 그게 교수님이 저보다 더 잘 아시지 않으신가요?" "무슨 말...?" "1 주일 전의 검사에 대한 결과는 교수님이 저보다 더, 아니 교수님만 아시지 않으신가요? 전날에 이미 검사 결과에 대한 리뷰도 다 하셨.. 2021. 9. 21.
암삶 30-폐 수술 제안 거절과 암 수술 후 절망의 정점(2012년) 나는 고민에 고민을 계속했다. 과연 폐를 그렇게 난도질 수준으로 건드려도 될까? 내시경으로는 아닌 것 같고. 그럼 가슴을 연다는 게 아니겠는가! 아니고서는 양쪽 폐에 각각 10개 이상이나 되는 결절들을 어떻게 다 떼낸다고 할까! 그럼 한쪽 폐를 열어 수술 후 1 주일 입원, 그리고 집에서 2주 휴식, 다시 오른쪽 폐를 같은 방식으로? 폐란 걸 그렇게 대해도 될까!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의사 선생님께서는 나의 상태를 아주 비관적으로 보셨던 게 아닌가 한다. 1. 치료할 방법도 없다시피 하고, 2. 상태도 갈 만큼 갔다, 3. 앞으로 남은 수명도 얼마 안 될 거다. 뭐 그런 시각이지 않으셨을까? 아니라면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내 몸에 적용하실 생각을 하셨을까? 하는. 나는 그 흉부외과 교수님께, ".. 2021. 9. 21.
암과의 동행 29(2012년)-왼쪽 폐 1주일 입원 수술 후 오른쪽 폐 1주일 입원 수술 제의 흉부외과 진료 의뢰 인자하신 인상의 흉부외과 교수님이 웃음으로 인사하셨다. 나이에 비해 머리숱이 적으셨다. 난 속으로, 웃긴 편견이지만, "공부도, 연구도 엄청 하시는 분인가 보구나." 했다. 물론 비뇨기과 교수님께서 이 분을 소개하신 후 의료 경력을 이 병원 홈피에서 찾아봤었다. 각종 신문이나 방송에 노출되신 사유도 찾아봤었고. 특히 아랍 어느 특정 국가에서 아주 유명하신 분이셨다. 수술 잘하시는 걸로. 하지만 직접 뵈니 마치 연구원 같으셨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예. 안녕하세요?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 "고맙습니다, 교수님." "제가 환자분의 기록을 미리 살펴봤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참 많이 해야 하는 케이스입니다." "어떤 의미신가요, 교수님?" "예. 양쪽 폐에 결절들이.. 2021.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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