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314

암삶 19-신장암 4기 폐전이, 휴식없는 과로와 암, 무얼 위해 하루에 15~16 시간씩 일했나요?(2011년) “혹시 근무환경에 발암 요인으로 짐작되는 게 있나요?” “발암 환경...?” “예. 무슨 특정 금속, 이를테면 배터리나 페인트가 있는 작업환경 같은….” “아니요!” “그럼 다른 카드뮴 함유 물질은?” “제 근무환경이…?” “예 어떤 특정한 물질들은 신장암과 어느 정도 관련 있다는 연구도 있답니다.” “아닙니다. 제 기억엔 없습니다.” 그 수술 코디네이터는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항상 그런지 궁금했다. 난 시종일관 미소 짓는 얼굴이 좋다. 그게 포커페이스 건 뭐건...... 미소는 전연성이 강하다. 마주한 사람의 얼굴에도 미소를 피우게 만든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분을 업시킨다. ‘이 분은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는가 보구나..."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설문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설문지 속의 대.. 2021. 9. 7.
암삶 18-신장암, 신장 전절제수술을 불러왔을 흡연과 음주 (2011년) (술과 담배, 음주와 흡연은 분명히 발암 요소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렇게 말한다. 나도 그럴 거라 믿는다.) 그리고 “환자분, 이리로 오세요.” “예.” “환자분, 여기 설문지가 있으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예.” "흡연은?" "하루에 1갑 반 정도요." "얼마나 오래요?" "고등학교 졸업 후 아마 매일?" "하루도 안 쉬고요?" "아니요." "그럼?" "군대 때는 아마 하루에 반 갑?" "제대 후엔 매일 한 갑 반요?" "아니요. 아마 한 갑 정도요." "그럼…." "스트레스받았을 땐 아마 하루에 두 갑? 그 정도요." "그럼 평균 내면... 하루에 한 갑?" "아마요. 코디네이터님,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몰라요? 아까는 하루 한 갑 반이라 하셨잖아요?" "제가 정신이... 아직도..." "환자분.. 2021. 9. 5.
암삶 17-개복, 배를 연다는 말이 주는 복잡미묘한 감정 (2011년) ‘배를 연다’는 말에 나는 끊기고 잘렸던 장면들이 생각났다, 아주 어릴 때 보았던. 시골에서 아직 전기도 안 들어오고 고샅길이 막 리어카가 다닐 수 있을 만큼 넓혀지기 시작하던 무렵 아끼던 미루나무가 잘리어지고 가죽나무도 잘리고 울타리로 쓰던 탱자나무도 잘리면서...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학교에 갔었는데 돌아와 보니 넓었던 채전 밭이 반은 잘려나가고 상체 잃어 망연자실 앉아 있었던 나무들의 밑동 마저 파헤쳐져 있었다. 이리저리 살피며 발걸음을 옮길 때 또 보았다. 동무와 올랐던 나무에 남아있을 추억이 눕혀지고 숨바꼭질하며 숨었던 둥지가 잘려나가고 삭정 가지 잘라 이것저것 만들며 소꿉놀이할 때면 시원한 그늘을 주던 그 넉넉했던 나무의 밑에 있던 그 그리움들이 다 눕혀진 채로 내가 내딛는 두 발의 발등으로 젖.. 2021. 8. 31.
암삶 16-4기암 절제수술 결정과 병원 복도 풍경 그리고 암 코디네이터와(2011년) ‘배를 연다’는 말에 나는 끊기고 잘렸던 장면들이 생각났다, 아주 어릴 때 보았던. 시골에서, 아직 전기도 안 들어오고 고샅길이 막 리어카가 다닐 수 있을 만큼 넓혀지기 시작하던 무렵, 새마을 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아끼던 미루나무가 잘리어지고, 가죽나무도 잘리고, 울타리로 쓰던 탱자나무도 잘리면서...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학교에 갔었는데, 돌아와 보니 넓었던 채전 밭이 반은 잘려나가고, 상체 잃어 망연자실 앉아 있었던 나무들의 밑 동아리마저 파헤쳐져 있었고. 이리저리 살피며 발걸음을 옮길 때 또 보았지. 동무와 올랐던 나무에 남아있을 추억이 눕혀지고, 숨바꼭질하며 숨었던 둥지가 잘려나가고, 삭정 가지 잘라 이것저것 만들며 소꿉놀이할 때면 시원한 그늘을 주던 그 넉넉했던 나무의 밑에 있던 그 그리움들이 다.. 2021. 8. 22.
암삶 15 -암 사이즈 15cm “빨리 수술합시다!” 단, “로봇수술은 안됩니다.”(2011년) 이러저러한 말, “당신 암 크기가 15cm야!” “당신 콩팥 암 덩어리가 당신 콩팥보다 더 커!” 그런 말들과 함께 그 교수님의 표정이 변해갔다. 그림자 깊게 드리운 나무 아래 누운 채 어린 새끼들과 헛발질하던 수사자가 쓰러지는 듯 다리 저는 사슴을 본 듯, 앉아있던 도베르만이 주인이 던진 허공에 뜬 공을 본 듯, 눈빛이 분명 해지며 날 쳐다봤다. 짧지만 강렬하게, 그렇게. 그리고... 그 교수님은 고개를 돌려 타이핑 중이던 직원을 향했다. “이 선생!” “예.” “나 다음 주 스케줄?" “다음 주요?” “......” “예. 꽉 찼습니다.” “그래?” “......” '참 내. 뭐 새삼스러울 일도 아닌데...' 그 간호사는 눈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간호사와 그의 대화를 사자 발밑의 숨 끊어지는.. 2021. 8. 21.
암삶 14-“당신 암 덩어리가 당신 콩팥보다 더 커!”(2011년) “전 병원에서 좀 크다고 하긴 했습니다만...” “”좀’ 크다던가요?” “예…” 전 병원에서 분명 '크기'를 들은듯한데... 대략 '5x 뭐'라고 했던 것 같았는데... 그 교수님이 무슨 숫자를 말했던 것 같았는데... 당시엔 하도 정신이 없었던 난 ‘좀 큰가 보다’ 했었다. 사실 그때는 “암입니다"란 말이, 거대한 해머가 되어 내 머리를 사정없이 치고 있었기에, 당시의 나에게 암의 '크기'는 그리 중요하게 들리지 않았었다. 깨진 도자기의 파편을 모으듯 당시의 대화 내용, 특히 그 교수님의 말씀을 복기하려 애썼다, 복잡해진 머릿속에서. 하지만 암 선고 이후 내 머리는 마치 엉켜버린, 너무 엉켜 풀 수 없는, 게다가 풀려하면 더 엉켜 영원히 풀 수 없는 저주의 실타래 와도 같은 상태였었다. ​ ​ 나의 복.. 2021. 8. 20.
암삶 13-신장절제수술2 “당신 암... 넘버 쓰리"(2011년) 난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들락날락하는 환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난 벌써 3시간이 넘게 진료실 앞 복도며, 홀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고개를 푹 떨구고 들어갔다가 어깨를 쫙 펴고 나오는 환자, 근심 어린 표정으로 들어갔다가 활짝 웃고 나오는 환자, 어두운 얼굴로 들어갔다가 더 어두운 얼굴로 나오는 환자, 혼자 온 환자, 온 가족이 몰려온 환자, 조용히 있다가 조용히 들어가서 조용히 나오는 환자, 옆 사람에게 병 자랑하며 정보를 얻으려 애쓰는 환자, 젊은 여자 환자, 80은 훌쩍 넘겼을법한 할아버지, 가족의 부축 없이는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할 듯한 환자, 이 간호사 저 의사 등의 목례를 받는, 누가 봐도, 이 대학병원 의사 같은 환자... 하지만,.. 2021. 8. 18.
728x90
반응형